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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안 Aug 08. 2018

상담을 또 받았습니다

더이상의 상담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일 년 만에 학생상담센터를 다시 찾았다. 해석상담을 신청한 건 이번이 세 번째였다.

이번에야말로 해석상담을 하고 깔끔하게 종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 심리검사 작성은 이전보다 훨씬 산뜻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어쨌든 나아지긴 했나보다 싶었다. "자, 당신은 이제 괜찮으니 하산하시오!"라는 인증을 받고 싶었다.


해석 결과를 받아들었다. 뜻 모를 약어 위에 그려진 꺾은선 그래프는 어떤 지점에서 평균치보다 높게 솟아있었다. 우울감이었다.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상담을 신청한 이유를 설명했다. 말하면서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정리하는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시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부담스러워하는 내가 슬펐다.


우울감이 여전히 남아 있고, 기쁨에 둔감한 경향이 있었다. 지쳐 있는 상태라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도 둔감하고 주변을 잘 신경쓰진 않는 걸로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별로 사교적이진 않은 것처럼 보여요." 

선생님께 내가 지난 2주간 누구들을 만나왔는지 캘린더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온몸으로 부정할 수록 내가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임을 증명하는 기분이라 그만 뒀다. 실제로 내가 외향적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은 없었으니까.


검사결과는,

정확히 내가 되고싶지 않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왔다.


안정 지향, 위험 회피, 생각이 많고,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지 않고,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선생님은 내가 내 감정조차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해주셨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걸 회피하고 있다 생각했다. 내 감정을 정리하는 것조차 버거워 뒤로 미뤄두곤 했었다.

언제부터 그랬냐는 질문에 두세 달 전이라 대답했다. 교환학생 생활이 어땠냐는 질문에는 눈물이 나왔다. 나도 당황했다. 울 줄 몰랐으니까. 분명 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왜 다시 울고 있지? 혼란스러웠다.


정기 상담을 받으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하셨다. 혼란스러워졌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상태는 메롱한 것 같았고, 내가 지쳤는지 아닌지 자기 파악도 제대로 안 되는 상태에서 나를 설명하는 게 이전보다 막막하다고 느꼈다. 해석 상담 시간만 놓고 보자면 완벽하게 역행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왜 아직까지도 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이전보다 복잡해진 마음으로 상담실을 나섰다. 학교 오는 길에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읽으며 와서 그랬는지 보이는 모든 것에 남탓을 하고 싶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사회가 5할일텐데, 책임은 누가 지나? 기성세대가 져주나? 좆같은 자기계발 시대는 왜 자꾸 공고해지는 걸까? 어쩌다 나는 그 프레임에 공고히 부역하는 사람이 되었나? 

이렇게 되어버린 나는 누구를 탓해야 하나?


집에 돌아와 타이레놀을 먹었다.

두통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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