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삭을 또 받았습니다 2

왜 실패했을까?

by 에이안

오늘 받은 자소서의 총평은 "역량이 드러나지 않는다"였음. 여기서 내가 취했던 전략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 내가 자기소개서를 구성하는 방식은 평소와는 달랐다. 자격요건과 담당업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실제 K사에서 발행한 콘텐츠의 성격을 확인해 그 업무 어시스턴트로 들어가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대략 파악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에 맞춰 자기소개서 내용을 구성했다.


예를 들어 자격요건에 '치킨을 먹어 본 사람', '치킨무의 차이를 아는 사람', '치킨집 알바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고 되어있으면 나는 1500자 남짓한 공간을 셋으로 나눠 1. 치킨 먹어본 경험

2. 치킨무 차이를 가늠한 경험

3. 치킨집 알바 해 본 경험

이렇게 적어 그 경험을 나열했다. 제품 설명서 같은 느낌이 들도록 일부러 의도하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그렇게 접근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자기소개서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줘야 하는 거라 단순히 이런 경험을 했다고 서술하는 정도를 넘어서 그를 통한 내 역량을 보여줘야 한단다. 여기서 숨이 막혔다. 나는 그냥 내가 한 일만 적어두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내 경험을 보여주면 그걸 두고 사람들이 알아서 적부 판단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기를 제일 잘 아는 건 자기 자신이잖아요?

라고 말씀하시더라. 모든 답을 내가 알 수 있을 거란 듯이.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나는 아직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데 익숙하고 자아상을 왜곡해서 보는 편이라 내 눈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더 신뢰한다. 그런데 내 스스로 나를 정의 내리라니.


"본인을 어떤 사람으로 보여주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생각해본 적 없어, 그런 거. 그냥 거기서 하는 일을 내가 잘 해낼 것 같으니까 쓴 거지 내가 그 사람들한테 어떤 이미지로 보이길 바란다는 상상조차 나한테 사치였다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럴 수 있는데요.


자기소개서로 표현하고 싶은 나를 정하는 일에는 두 가지 어려움을 느낀다. 하나, 내가 제시하는 나의 모습이 허풍일까 두렵다. 둘, 내가 제시한 내 성격이 상대가 원하는 사람과 다를까 봐 두렵다.

사실 그래서 상담 중에 "그럼 제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랑 그쪽에서 원하는 모습이랑 다르면 어떡해요?"라고 물어봤는데 묻는 나도 바보 같은 질문인 걸 알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현직자를 그렇게 찾아다니는 거지. 현직자 어떻게 찾아. 스트레스다 이것도...


그래서 오늘의 상담은 대실패였다. 첨삭 진도를 뺄 수 있는 핵심 퍼즐을 아예 손에 쥐고 있지도 않으니 주변만 뱅뱅 도는 이상한 질문이나 하고 앉아 있었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내가 다음 상담에는 무슨 준비를 해 와야 하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


나를 어떤 사람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냥 대충 글 첨삭받고 내일 중으로 지원서 마무리짓고 싶었는데 본질적인 문제를 마주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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