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삭이 끝나고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가 어려웠다. 특히 나를 향한 분노가 많이 컸다.
도대체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이런 지원서의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뭐 하면서 산 거지? 이런 상태면서 지금까지 내가 뭐 지원을 많이 하고 실패밖에 없었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나 하고 다닌 건가? 내가 지금까지 한 활동들이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던 게 문제인가? 어디 지원해서 합격하고 단체에 소속돼서 활동한 게 아니고, 내가 내 단체를 만들어 활동한 게 오히려 독이었을까? 이런 선발 기회를 경험하지 못하고 시간을 날려버린 꼴이었을까?
자조도 많이 들었다.
'X발, 어떻게 하든 좋은 결과물 안 나올 것 같은데 그냥 이대로 서류 제출해서 평범한 실패담에 "결국 떨어졌어요~~~"하고 한 페이즈 마무리 해 버릴까.'
'실패담 제목으로 달더니 닉값하는 게시물 하나 나오겠네.'
'그냥 내 인생을 종결하는 게 적자생존 원칙에 부합하는 일 아닐까?'
'이렇게 마음 약해서 사회생활 못 한다고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그냥 사회생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인데요!'
그냥, 지치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 지원서를 붙들고 있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도 있었고. 원래 계획대로였으면 어제 이미 지원을 마쳤어야 했다. 상시 모집이라 언제 지원 공고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점도 스트레스였다. 염두에 두고 있었던 또 다른 지원서는 1월 20일 마감이었는데, 그 회사 지원서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원서 준비하는 초반에는 그저 즐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준비만 하고 남은 시간에는 취미생활을 즐기며 체력을 회복했다. 이제는 그렇게 빈 시간이 생겨도 불안하다. 조금이라도 더 진도를 빼놔야 할 것 같아서. 실제로 최대한 빠르게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기도 했고.
여러모로 마음을 안 따라주는 상황에 부정적인 감정만 넘실거렸던 하루였다. 감정에 압도되다 보니 상담 다녀온 이후로 모든 통제력을 잃다시피 했고.
실시간 멘탈 갈림의 현장.jpg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만 했다.
어쩌겠어요, 지금 하기 싫다고 주저앉을 수가 없었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해... 그리고 3월 봄 캠퍼스가 시작되기 전에, 새내기가 이 동네를 점령하기 전에 이 대학가를 떠야 해....(눈물)
터널 안에 들어와서 생기는 짜증 나는 답답함을 해소하려면 어떻게든 터널 밖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지라 당장 답답하더라도 걸어 나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스스로를 조금씩 달랬다.
나를 어떻게 정의할지 모르겠으면 지금부터 만들면 되지. 내가 여러 사람들을 대하며 보여주는 내 모습이 조금씩 다르듯, 그 면접관들에게 보여주는 내 모습이 실제 나와 조금 달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이도 저도 자신이 없다 싶으면 그냥 내가 만들어 낸 모습이 나라고 믿어버리면 그만이지. Fake it till make it. 예전에 친구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오늘은 이만큼 힘이 되는 문장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달랬다.
자기소개서 쓰면서도 느꼈지만 내가 한 일이 적어서 문제는 아니었잖아.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문제였지. 그러니 나는 지금 충분히 잘 해왔고, 설령 객관적으로 대단한 성과가 아니더라도- 소박한 이벤트도 잘 살려내는 게 관건일 것이다. 오늘 상담에서도 소재를 바꿀 필요는 없다고 했으니까 괜찮다고 믿어야지.
어차피 언젠가는 마주할 일이었다. 지금 기분이 안 좋다고 해도, 이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으니 다음 기회에는 이런 실수 반복하지 않겠지, 좀 더 좋은 시작을 할 수 있겠지.
그러니 내일, 다시 3차 원고를 적기 시작합니다. 목표는 목요일에 최종 첨삭 거치고 지원서 등록 버튼을 누르는 것. 이제는 잘 되든 아니든 얼른 결과가 마무리돼서 여기 후기를 적으러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