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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안 Jan 23. 2020

집중력이 짧아 슬픈 동물

200123

학교 시험이나 리포트 쓸 때, 토익 공부할 때, 혹은 지금처럼 자기소개서를 쓰나 면접 준비를 할 때마다 수능 공부할 적을 떠올린다. 살면서 그렇게 한 목표를 위해 맹목적으로 달리고 몰입했던 적이 없어서 그런지 수능 공부가 항상 비교군이 되는 것이다.


내가 수능 공부를 했을 적에는 눈 뜨는 순간부터 잠에 드는 때까지 1초도 빠짐없이 공부에 투자하고 싶었고, 걸어 다니면서도 단어를 외웠고, 스톱워치 써가면서 하루 공부시간 측정도 하는 아주 열렬한 학생이었다. 물론 공부하다가 멍 때리면서 시간을 죽이기도 하고 졸려서 잠들었다가 눈 뜨니 해가 져있던 적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때는 한 시간 공부하는 게 그다지 긴 시간이라고 느끼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적어도 지금처럼 3분 이상 집중하지 못했던 적은 없었다는 소리다. 원체 생각이 많고 그 생각이 빠르게 잘 퍼져나가는 편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뽀모도로 기법도 자주 썼다. '내가 진짜 25분도 집중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있었던 많은 시간관리 방법 중에 제일 잘 먹히고 부담 없었던 방법이었다. 과거에는. 과거에는.


오늘도 여전히 면접 준비를 했다. 계획과는 좀 달랐다. 근로장학 근무를 하는 동안 면접 준비를 좀 하고, 쉬었다가 원래 잡아두었던 뮤지컬 공연을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저께부터 이어진 2일간의 음주에 심신이 지치고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공연 관람을 취소하고 그 시간에 면접 준비를 더 하자는 생각이었다. 사람 마음이 웃긴 게, 오후 스케줄이 사라지자 오전이 갑자기 여유로워졌다. 마치 밤새기로 한 뒤에 더 놀아버리듯이.


결국, 근로장학 근무하는 동안 신나게 웹서핑하면서 놀았다! 심지어 마음 편하게. 차라리 놀 거였으면 마음이라도 편한 쪽이 낫다는 생각이 그나마 든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1주일가량 버려둔 우리 집을 적당히 치웠다. 저녁을 먹었고, 공간이 바뀌면 조금이라도 집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근처 카페에 갔다. 마침 가져간 아이패드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서 마감에 쫓기는 만화가의 심정을 느낀다면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개뿔이나.


카페에서 시킨 음료는 너무 달았고-이디야 브라우니 쇼콜라 목메게 달다. 단 음료인 거 알면서 시키긴 했는데 정말 달았다.-그래서 기분이 나쁘다는 핑계로 카톡을 열심히 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 맞다. 오가는 소셜 활동 속에서 피어나는 만족과 충만함이라니요. 결국 워드 한 줄 당 카톡 5분 수준으로 거의 소멸하다시피 한 집중력을 붙들고 시간만 죽이다 온 기분이었다. 아냐, 그래도 어제는 질문만 있었다면 이번엔 질문에 무려 대답이 달렸다고. 정제되지 않은 날것이라 그렇지.


그리고 집에 와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 보고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또 SNS를 켰다. 아이고. 만악의 근원이다. 하지만 워드 창을 켜는 순간 회피하고 싶은 걸요. 질문과 대답은 정해져 있고 내 경험을 근거 삼아서 덧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너무 어렵다니까? 


이쯤 되니 집중력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 긴 시간 동안 나는 치열하게 회피해 왔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내 지난날을 마주하기 힘들고, 기억이 안 난다는 핑계로 미루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듯하다. 하지만 어쩌겠어, 나는 경험으로 상대를 설득시켜야 하는데. 결국 내일 더 손 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미뤄버렸다. 지금은 너무 피곤하고 잠이 온다. 배가 부르고... 집중할 수가 없어요...


나는 이 순간을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 자기소개서 작성을 너무 오래 끌어서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던 것처럼. 하지만 오늘을 되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나는 한 번에 집중해서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진도를 빼기에는 체력도 집중력도 너무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 살짝살짝 오래 하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기 합리화인가?


어쨌든 내일은 진짜 제대로 준비한다.... 진짜 1차 답변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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