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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안 May 19. 2018

단지 나의 정답이 이 곳이 아닐 뿐

귀국 일정을 당기려는 자의 변명 (3)

다른 교환학생들은 그 나라 가서 잘 적응하고 재미있게 잘 지내던데, 나는 왜 그렇지 못하냐며 고민하던 날들이 있었다. 이렇게 나는 실패한 교환학생을 보내고 오는 걸까 두렵기도 했었다.

지금도 나는 다른 교환학생들에 비해 썩 잘 지내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내 정답이 이 곳이 아니고, 여기 없을 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나는 당신들에게 관심이 없다

교환학생 지원서를 쓸 때 분명 나는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며 문화를 체득하고 소통하고 싶다고 썼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아직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자기 이해가 중요한데.

그 당시에는 정말 내가 활발하게 외국인들과 교류할 줄 알았다.


도착한 뒤 알았다. 요즘 대세인 '글로벌 마인드'에 정확하게 역행하는 사실이지만 나는 외국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교환학생 초기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름과 국적을 교환하고 너희 나라는 어떻고 우리나라는 어떤데-하는 대화를 2주일 넘게 했다. 그중 내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이 몇 개나 됐을까? 적당한 대화법을 위해 의례적으로 꺼냈던 질문일 뿐 대부분의 정보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중요도였다.


새로 맺는 인간관계에 피로도가 쌓이기도 했다. 문화가 다르다는 건 그만큼 설명해야 하는 배경 지식이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굳이 그 정도의 노력을 들여서만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안타깝게도 없었다. 운 나쁘게 내가 이 곳에서 마음 맞는 친구를 못 만나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직 덜 친해진 사람들이 할 수밖에 없는 얕은 주제로 대화를 끝마치고 나면 항상 허무함을 느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술잔 기울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던 나날들이 생각났다. 내가 여기서 계속 살았다면 시간을 들여 친해졌겠지만 나는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본래가 친목을 위한 친목을 버거워하는 사람이다. 억지로 친해지자며 시간을 갖는 것보다 생산성을 전제로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편을 선호한다. 누구네 방에서 밥 만들어 먹는다더라, 누구들이 모여서 술집에 놀러 간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집순이는 그 시간에 이불 덮고 영화 보는 게 더 행복했다.


영원한 이방인의 한계

내가 북유럽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벨기에 거주민. 처음엔 인종차별 많은 나라라는 소문에 겁도 먹었지만 이내 생각만큼 무서운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은 존재한다. 그것도 사람 봐 가며 저열한 방식으로.


지금은 활동 반경이 그다지 넓지 않아 인종차별적 언행을 들을 일도 그다지 많지 않다만, 초기 열심히 밖을 쏘다닐 땐 불쾌한 경험을 꽤나 했었다. 술집에서 내가 지나가면 희롱하듯 '니하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중 몇은 칭챙총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쓸 데 없이 나한테 말 거는 사람들도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이러한 경험들 때문일까? 학교 캠퍼스를 나설 때는 얼마간 '불쾌한 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영원히 외부인이자 이방인일 것이라고. 만약 길에서 시비가 붙는다면, 공권력은 나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고 보호할까? 이들에게 내가 가진 여권과 외국인 등록증보다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 시점에서 나는 이 곳이 나의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브뤼셀 생활 3달 차, 핸드폰을 보며 시내를 걷다가 어떤 중년 남성에게서 "그렇게 핸드폰 보이게 길거리를 다니면 소매치기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조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시안이기 때문에 더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으리라. 이 곳에서 내가 지낸다는 것은, 내가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무슨 문제에든 취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안고 산다는 말과 같다. 내가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매 순간 자각하면서까지 이 곳에 남아있어야 할 유인은 없었다. 


'이 곳'은 브뤼셀이면서 유럽 전체다. 인종차별이 어디 브뤼셀 사람들만 갖고 있는 특별 능력이겠는가.

한국에서 살기 싫다는 말을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말보다 더 많이 듣는 게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지금이다. 그래서 나도 내 가능성을 해외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해외가 둘도 없는 대안이며 탈출구이겠지. 그런 이들에게 굳이 한국이 더 좋다고 영업하려 드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경우는 이렇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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