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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안 May 23. 2018

두고 온 것에 대하여

귀국 일정을 당기려는 자의 변명 (4)

일찍 돌아가겠다고 말했을 때 주변에서 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대답은 거의 항상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이 곳에서 더 이상 할 게 없고,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


똑같이 좆같을 거면 말이라도 통해야지

원래도 탈조선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크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이민 갈 나라를 마음 속으로 정해놓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 지옥같은 반도를 구원하기 위해 불구덩이에서 힘쓸 선인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쪽에 가깝다. 그리고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봤을 땐 한국이 그나마 내가 가장 기득권일 수 있는 곳이다(...)


그런 내가 유럽에 온 건 정말 막연한 로망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유럽은 장기여행으로 가보고 싶은데 그러면 해외 취업을 하거나 교환학생을 가는 게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게 시발점이다. 역시 막연함이 문제일까, 낭만으로 가득찬 환상의 도시따위 없음을 알아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브뤼셀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소매치기를 당했다. 책가방 문 활짝 열어놓고 다녀도 아무도 건들지 않았던 서울 촌놈이 당황한 첫 번째 사건. 그 뒤로 여행다닐 땐 과도할 정도로 보안에 신경쓰고 평소에도 가방의 귀중품을 점검하는 게 버릇이 됐다.

이외에도 체계 없고 느린 행정 처리, 도시의 무질서함, 길 가며 음악 스트리밍을 할 수 있는 작은 여유도 허용하지 않는 높은 통신비를 마주해야 했다. 사소한 부분에서 한국의 일상이 생각났다.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따위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어디서든 외국인 및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면 그나마 말이라도 통하는 한국으로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영어권에서 지냈다면 불편함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브뤼셀은 네덜란드와 프랑스어가 공용어고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불어로 말을 건넸다. 50프로의 확률로 사람들은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아. 곱창 먹고 싶다.

우스울 수 있지만 브뤼셀에 도착하자마자 곱창이 먹고 싶었다. 구워먹는 비싼 소곱창(...)

먹을 것에 민감하다. 가려 먹는 음식이 없어 더욱 식단의 다양성을 추구한다. 자취할 적엔 점심에 볶아먹는 요리 하면 저녁엔 프라이팬을 안 쓰는 요리를 해야 만족스러울 때도 있었다. 육류보다 해산물을 좋아한다.


그런 저에게 유럽 식문화 너무 하드코어 미션입니다. 생선이라고는 청어와 연어와 스테이크 용 흰 살 생선이 전부인 마트 앞에서 나는 번번이 바지락을 그리워하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새삼 한국이 삼 면이 바다인 반도이며 동해는 조경수역을 형성하는 한편 서해안이 세계적인 갯벌이라는 걸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 깨달았다.


한인 마트가 버젓이 있고 웬만한 식재료들은 여기저기서 다 구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번번이 <맛있는 녀석들>에서 버섯전골을 무한리필해 먹는다거나 남산에 있는 왕돈가스를 먹는 장면을 보다 보면 나도 꼭 저 곳에서 저 맛을 느껴야겠다는 열망에 휩싸이곤 했다. 그 장소 그 분위기가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감각이 그리웠다. 내찜닭에서 넓적당면을 들어올리는 일이라거나, 광어회를 앞에 두고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는 일 따위의 것들.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 보니

교환학생 초기 생각보다 적응이 어려웠다. 친구는 내게 의식적으로 한국 생각을 멀리 하면 조금 나아진다 말했다. 휴학 경험이 있는 스물 넷의 재수생은 한국에서 위태로운 존재였다. 한 학기 한 학기가 아까운 시점에서 나는 무슨 성과든 내어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브뤼셀에서 할 일이 없을 땐 자연스레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작게는 다음 학기 계획부터 크게는 미래 진로 고민까지. 모든 생각이 한국에 돌아갔을 때를 상정하고 있었다.


몸은 브뤼셀에, 정신은 서울에 있다 보니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더 소극적이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그냥 넘어가고, 내가 아는 범위에서만 돌아다녔다. 정말 생활자로 완벽하게 적응하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정을 붙일 만한 일들이 많지 않았을까?그냥 시간이 지난다고 모두가 생활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내 노력이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필요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 곳에 잠시 머무는 사람이며 내가 돌아갈 곳은 한국이라는 점을 너무 잘 알았던 게 패착이었을 수도 있다. 떠날 사람이라고 마음을 먹어서 적응 속도가 느리고 계속 한국을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이 콩밭에 있는 거나 다름 없었다. 이걸 자각하고 나서 의식적으로라도 생각을 바꿔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을 시점엔 이미 별 일을 다 겪어서 정이 있는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친구가, 가족이 보고 싶어서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학기를 보내다 보면 남는 건 시간밖에 없는데, 문득문득 주변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가끔씩 연락을 하고 근황을 묻다 보면 마지막 말은 "한국 가서 밥 같이 먹자."


브뤼셀에서 딱히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았다 보니 더욱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남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곳에서 필사적으로 사람들과 친해지려 노력했을 것 같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렇게 적극적으로 비협조적으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루뭉술한 대화를 하고 나면 항상 기억을 되돌려본다. 한국에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지냈지? 근황 얘기를 하더라도 이렇게 부자연스럽고 어색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빠랑 종로 어느 술집에서 시덥잖은 얘기 하며 술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서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나의 연인이 보고 싶었다. 이젠 얼굴 보는 게 더 신기한 대학 동기들도 보고 싶고 동아리 후배들 연습에도 슬그머니 얼굴 비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도 이사했으니 중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밤 새워가며 떠들어도 재미있을텐데. 한국에 두고 온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은 돈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야."

내가 돈이 많진 않다. 그래도 유럽보다 대한민국을 살기 좋은 나라라고 느끼는 것 보면 나도 어느 정도 한국에서 먹고 살만한 위치였나보다.

이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사회인이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내가 가진 능력을 한국에 남은 다른 이들을 위해 쓸 수 있길 바란다. 어쩌면 이게 유럽 생활에서 얻은 소명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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