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부가 된 세비야

폭우와 태풍 속에서, 도착하지 못한 여행들에 대하여

by luna Han 윤영

세비야에 태풍이 오다니...

2026년 1월과 2월,
세비야에는 비가 아니라
쏟아지는 물이었다.

며칠씩 멈추지 않고 내리는 비와
그 위에 얹힌 바람 때문에
도시는 멈췄다.

기차가 멈췄고,
비행기가 취소됐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길이 끊겼다.

흙이 쓸려 내려가고,
도로가 갈라지고,
익숙하던 길들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지도 위에서는 이어져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닿을 수 없는 곳들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오지 못했다.

세비야로 오기로 했던 사람들이
출발지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비행기가 취소됐어요.”
“열차가 운행 중단됐습니다.”

짧은 메시지들이 계속 도착했다.

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안전이 먼저라고.

그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겨우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원래의 여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라나다로 가는 길이 막히고,
알함브라 궁전이 닫혔다.

그곳을 보기 위해
이 여행을 계획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가는 길이 있어도 갈 수 없고,
눈앞에 있어도 들어갈 수 없는 순간.

그 소식을
현장에서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불평도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얼굴.

그게 더 오래 남았다.

그 와중에도
끝내 세비야까지 온 사람들이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도,
일정을 바꾸면서도,
어떻게든 도착한 사람들.

그날,
우리는 비를 맞으며 만났다.

우산을 같이 쓰고 걷다가
한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비가… 저를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남았다.

웃으면서 했지만
그 말은
웃고 있는 말이 아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지,
얼마나 기대했을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세비야가 내 일부가 된 듯,
내가 이 사람의 여행을
망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날씨를 바꿀 수 없고,
기차를 움직일 수도 없고,
끊어진 길을 이어 붙일 수도 없고,
닫힌 문을 열 수도 없다.

그래서 그때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하나였다.

망가진 여행을
조금 덜 망가지게 만드는 것.

그날의 시간을
조금 덜 아쉽게 만드는 것.

그리고 3월이 됐다.

비가 그쳤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열리고,
빛이 돌아왔다.

흙탕물로 흐르던 길 위에
다시 사람들이 걸었고,
끊겼던 시간들 위로
다시 일상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나오고,
도시는 금방
원래 모습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는 안다.

그 겨울에
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고,
도착했지만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고,
비를 맞으며
여행을 다시 써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그래서 이 밝은 날씨가
그냥 날씨처럼 보이지 않는다.

길은 다시 이어졌고,
사람들은 다시 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준비한다.

이번에는,
여행이 설렘으로 시작해
추억으로 가득 채워지는 시간이 되기를.

그리고 그 시간이
끝까지 이어지는
온전한 여행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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