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한식당에 몰려온 K-열풍, 이번엔 차은우 팬들

by luna Han 윤영

문이 열리자 환한 모자와 굿즈가 먼저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여성들의 얼굴에는 이미 들뜬 빛이 가득했다.


“ASTRO!”

외침이 터지는 순간, 식당 공기는 단숨에 달라졌다.


단체 예약이 잡힌 날이면 전날부터 긴장이 된다. 이번 손님은 12명. 모두 내 또래의 스페인 여성들이었다. 굿즈가 테이블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식당은 작은 공연장처럼 변해갔다.


나는 아이돌에 밝지 않다. 그래서 늘 재빨리 검색부터 한다. 다행히 이번엔 익숙한 얼굴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본 차은우였다.

“정말 멋있죠?” 내가 먼저 말을 건네자,

“¡Sí!”라는 환호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회원 중 한 명이 생일을 맞아 식당을 찾은 것이다. 나는 홀 음악을 멈추고 ASTRO의 댄스곡을 틀어주었다.

리듬에 맞춰 박수 소리가 울렸고, “¡Qué guapo!”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졌다. 김이 오른 찌개의 냄새와 웃음소리가 뒤섞이며,

그 순간 식당은 서울의 한 복판처럼 달아올랐다.

대화는 자연스레 한국 여행 이야기로 이어졌다.

“2년 뒤 한국에 갈 거예요.”

“왜 하필 2년 뒤예요?”

“차은우가 군대에 있거든요.”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낯선 나라의 언어 장벽을 단숨에 허물어버렸다.


팬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얼마 전, 마드리드 백화점에 걸린 차은우 브로마이드를 보기 위해 고속열차로 세 시간을 달려갔다고 했다.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곧 세비야에도 같은 브로마이드가 전시된다고, 나에게 꼭 가보라며 몇 번이고 당부했다. 휴대폰 화면 속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눈빛은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 열정이 내 마음까지 덮쳤다.


“가을에 회원 45명이 단체로 식당을 빌려, 멤버 사진으로 장식해도 될까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지요. 내가 도와드릴게요.”


그리고 마침내, 케이크 위 촛불이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왔다.

작은 불빛들이 합쳐져, 식당은 어느새 콘서트장이 되었다.


그 열기 속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ASTRO를 안다면, 이날의 장면을 꼭 전하고 싶을 만큼.

이렇게 먼 세비야에서도, 그들을 향한 마음들이 하나로 모여 있다는 사실을.


세비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다 보면, K-열풍을 매일같이 체감한다.

K-POP, K-FOOD, K-CULTURE… 한국은 더 이상 멀리 있는 나라가 아니다.


팬들은 인스타그램 속 발자취를 좇아 ‘성지 순례’하듯 여행을 계획한다. 그 열정이 식당 안으로 들어올 때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진다.


9년 전, 남편의 가족에게 인사하러 처음 세비야를 찾았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변화였다.

지금은 손님들이 한국 뉴스를 먼저 꺼내 묻곤 한다.

“전직 대통령이 왜 구속되었나요?”

그럴 때면 한국이 이들에게 얼마나 가까운 나라가 되었는지 실감한다.


불이 꺼진 홀에 케이크 초의 잔향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한국에서 시작된 파장이 세비야까지 닿아, 내 마음을 흔들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국의 노래와 문화를 함께 빛내준 그들에게.

또 그 열정으로 뜨겁게 호응해주는 이곳의 팬들에게.


세비야의 밤마저 한국처럼 반짝이게 해준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오늘도 제 글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마음 덕분에, 계속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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