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것이라 비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by luna Han 윤영

처음부터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비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결핍은 늘 부족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없는 자리, 비어 있는 감정, 채워지지 않은 시간.

나는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 하나도 없는 채로 자랐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어야 할 사람이,
내 기억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왔다.

스무 살이 되던 해,
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가까이에서 겪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은 그렇게, 아무 예고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자리는, 끝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미,
당연히 있어야 할 어떤 것들이 없는 상태로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오래 살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비어 있음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어떤 순간에 멈추지 못하는지,
무엇을 스스로 괜찮다고 말해버리는지를
조용히 결정하고 있었다.

나는,
비어진 채로
그저 채워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만남은, 시작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미 비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첫마디는 단순했다.

“윤영아, 가자.”

그 말 하나로,
나는 멈춰야 한다는 생각을 잊었다.

그는 2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도,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이중적인 삶을
‘친구’라는 말로 눌러두면서.

그만하자는 말은 내가 먼저 꺼냈다.
그런데도,
울면서 매달리는 그를 끝내 밀어내지 못했다.

그 순간의 나는,
그 선택이 낯설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지만,
어딘가 익숙한 감각.

멈춰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방식.

그때의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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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이미 비어 있는 내가

늘 같은 방식으로 선택하는 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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