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를 선택해
헤어지자는 나를 울음으로 붙잡던 그는,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던 걸까.
경제적으로 아무것도 없던 대학생이던 그에게 나는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었다.
그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등록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인지보다, 그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그것을 내주었다. 그게 우리가 함께 가는 길이라고 믿었다.
밥을 사고, 선물을 사고, 옷을 사주고, 계산대 앞에 서 있는 건 늘 나였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졸업 이후에도 취업이 되지 않던 그는 점점 밤과 낮이 뒤바뀌었고,
세상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의 전공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니었다.
아마 어렴풋이 느낌이란게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같은 곳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한 번 건넨 것들은 다시 거둘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미 마이너스가 된 통장을 끌어안은 채,
그의 미래를 위해 내 미래를 건넸다.
그때 이미,
나는 나를 잃는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의 자존감은 자라났고, 내 자존감은 바닥을 지나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쌓였다.
한 해, 또 한 해.
먼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그는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 시간은 흐른 것이 아니라, 나를 조금씩 닳게 하고 있었다.
스물아홉이 되던 해,
우리 집에서는 결혼을 서둘렀다.
이제 막 취업을 한 그가, 결국은 나를 떠날 사람이라는
가족들의 불안이, 늘 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했다.
마지막 통화에서 나는 물었다.
“왜 나와 결혼했어?”
이미 오래전부터 그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내가 어렸잖아.”
그 말은,
어떤 변명보다 정확하게 나를 무너뜨렸다.
어쩌면, 진작 끝났어야 했다.
차라리 그때, 정말로 떠나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직장도 잃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마지막 증거까지.
나는,
버리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신혼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했던 시간에,
그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혼한 사실조차 말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안다.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사랑이 아니어도
사랑이라고 불러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 마음으로
내 청춘을 다 써버렸다.
청춘을 써버린 너에게
누구나 소중한 건 잃고 나서야 알게 된다고 하잖아.
청춘을 다 써버린 너도, 다른 선택 앞에서 이미 지나버린 시간 앞에 서 있는 거겠지.
그래도 기억해.
한 친구가 너에게 말했잖아.
너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그 말,
지금의 너를 붙잡아주고 있을 거야.
그러니 이제, 그 마음은 글 속에 내려놓고,
오늘은,
너를 위해 살아보는 거야. 너의 그 시간, 그냥 사라진 건 아니야.
언젠가,
이 이야기가 너처럼 너를 놓치고 있던 사람에게
아주 조용히 닿게 될 거야.
그러니까,
이제는
너를 남겨두는 쪽이 아니라,
너를 선택해.
이 글은 한 개인의 경험이지만, 어쩌면 낯설지 않은 관계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하지 않아도 될 무게까지 스스로 떠안는다.
그것을 선택이라고 믿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다.
그 선택이 나를 지키는 방향이 아니었다는 것을.
관계는 함께 흘러가야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한 사람만 앞으로 나아가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자리에 남아 자신을 조금씩 덜어내며 버티고 있기도 하다.
그 과정이 반복될수록 사랑과 희생의 경계는 흐려지고, 무너지는 것은 관계보다 먼저
그 안에 있던 ‘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누군가를 향한 고백이라기보다,
비슷한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사랑이라 부르고,
어디서부터 나를 지켜야 하는가.
#청춘을써버렸다 #나는지금나를용서하는중입니다 #자기존중 #자기회복 #건강한관계
#감정회복 #관계성찰 #에세이추천 #lunahan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