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좀 선선한 어느 밤의 너에게
잠이 안 오는 이 밤, 나는 너를 생각해.
하루하루가 달콤하게 흘러가는 요즘 나는 입버릇처럼 행복하다고 말하고 다녀. 딱히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야.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학교를 가고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부서지는 한강을 멍하니 구경해. 별다를 것 없는 날들이야.
오늘은 네 이어폰으로 내 재생목록을 같이 듣는데 행복하더라구. 한참을 흘러가다가 메신저 프로필에 올려놓을 만큼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서 나 이 노래 진짜 좋아한다고, 수천수만 번은 들은 것 같다고 얘기하니까 네가 웃으면서 그랬잖아. 집 컴퓨터 재생목록에 딱 다섯 곡이 있는데 그중 한 곡이라고. 엄청 유명한 곡도 아닌데 네가 그 노래를 어디서 알게 됐을까 가만 생각해보니 설레더라.
시험 기간 대학생들이 행복할 일이 뭐가 있겠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 있지. 마주 앉아 공부하다가 문득 바라본 네가 골똘한 표정으로 책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좋고, 풀리지 않는 내 과제에 네가 여기저기 물어가면서까지 더 욕심 내며 도와주는 게 고맙고, 자기 힘으로 끝낸 일인데도 내가 옆에 있어서 할 수 있었다고 얘기해주는 게 사랑스러워. 정작 그 날 내가 한 건 내 시험공부 밖에 없었는데.
눈만 마주쳐도 예쁘다는 너에게 나는 한없이 사랑받고 싶어.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너랑 내가 하는 연애는 다르다고 착각하고 싶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네가 특별하다고 하는 나랑 내가 특별하다고 하는 네가 하는 연애잖아.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요즘은 몇 년이나 다닌 학교 구석구석에 의미가 생기고 혼자 돌아가던 밤의 골목길이 다르게 느껴지는 일상을 살고 있어. 네 덕분에.
연애하기 전 간질거렸던 날들도 좋았지만 매일 내가 알게 된 네 모습들에 익숙하고 또 새롭게 발견해가는 날들도 괜찮은 것 같아. 네가 찾아주는 내가 몰랐던 부분들도 좋아.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퍼즐을 맞추게 될까. 두근대면서 한 조각씩 성심성의껏 맞추기로 해. 완성하고 나면 어떤 그림이 될지 궁금하지 않아?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은데 적당한 표현을 못 찾겠다는 내게 기다릴 테니 천천히 생각해보라는 너는 항상 충분히 예쁜 말들을 해. 나는 아무리 고민해도 딱 맞는 표현을 못 찾겠는데 너는 어떻게 저런 말들을 할까 신기하기까지 해서 분명 고르고 골랐겠지 싶었어. 근데 네가 그러더라. 말을 예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닌데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말하다 보니 예뻐진다고.
네 말이 맞아. 어쩌면 세상의 온갖 연애 조언이며 칼럼은 필요 없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이제 애써 적절한 말들을 찾지 않으려고 해. 담백하게, 그치만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서 전하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네가 그런 날 알아줄 거라 믿어. 내가 많이 좋아한다는 말이 문자가 아닌 따뜻한 마음으로 너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어.
네 전화에 기분 좋게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학교를 가서 함께 공부하고 한강을 건너 버스를 내릴 때쯤이면 집까지 걷는 그 잠깐에 위험하다고 늘 너에게 전화가 오는 별다른 날들을 지내고 있어. 시험 기간의 감정들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었구나 싶어. 나한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줘서 고마워. 사실 하나부터 열까지 빠짐없이 고마운 것뿐이지만.
밤바람이 참 선선한 오늘 밤, 나는 너를 생각해.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