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어 Oct 27. 2017

교토 먹킷로드

먹는 게 남는 거랬어


오사카 편 보러 가기





    나에게 일본은 늘 후순위의 여행지였다. 다시 말하면 서울에서의 삶이 적당히 지겨워졌을 때 항상 다른 여행지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가까우니까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지금은 조금 더 멀리 가보고 싶어서? 역사적 반감 때문에? 다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은 백만 개쯤 되는 이유로 늘 내 여행 리스트 맨 끝에 위치했다.



    그렇게 수많은 도시들을 여행한 뒤 이번 여름, 드디어 일본에 한 번 가볼 기회가 생겼다. 사실 티켓팅은 5월에 일찌감치 했다. 여름 즈음의 일정이 확실하지 않았던 터라 멀리 가는 게 부담스러웠던 나와 친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달까. 너 오사카 가봤어? 아니, 너는?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결국 간사이 공항으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결제하고 나서야 마무리됐다. 우리는 전자항공권까지 받아본 뒤 비로소 대학생들이 제일 만만하게 떠날 수 있는 여행지 1순위를 이제야 가보게 되다니,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둘 다 사람이 많은 게 싫었고, 오사카에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인터넷 상에 범람하는 수많은 오사카 여행기 덕분에 이미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회사에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오사카 상품을 들여다볼 일이 생겨서 그랬을까. 이유야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교토에서 2박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처음 찾아본 호텔에 홀린 듯이 꽂혀서 항공권을 사자마자 예약했다. 낙장불입이었다.



    그렇게 떠난 오사카 & 교토에서 우리는 정말 잘 먹고 다녔다. 여름에 일본을 여행하면 더워서 입맛도 없다던데 우리는 왜.. 입맛 까다로운 친구가 여행 내내 잘 먹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배를 빵빵 두드렸다. 일본 여행은 원래 식도락 여행이라고 하던데 그 말을 무진장 잘 실천한 셈이다.




사쿠라 테라스 더 갤러리 레스토랑

조식 2,300엔, 레스토랑 디너 300엔부터 (세금 포함)

https://goo.gl/maps/QiEDUYBZXg62


하루에 3끼만 먹는 게 너무 슬퍼.



    여행에서 뭘 먹을지 찾아보던 내가 친구에게 한 말이었다. 교토는 넓고 먹고 싶은 음식은 많은데 교토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조식을 제외하고 딱 4끼뿐이었다. 그렇게 말해놓고 교토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음식은 호텔 스테이크였으니 아이러니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원래는 가고 싶은 야끼토리 집이 있었는데, 간사이 공항에 내려서 교토 호텔까지 낑낑 대고 찾아오자 교토 역은 왜 이리 넓고 복잡한지,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사진을 협찬해준 친구 H에게 감사♥



    사실 매일 호텔 레스토랑에서 웰컴 드링크를 무료로 한 잔씩 제공한다는 말에 와인이라도 한 잔 마실까 싶어 내려간 길이었는데 레스토랑의 메뉴에 눈을 뺏긴 셈이었다. 와규도 어차피 먹어보고 싶긴 하잖아? 그렇게 합리화하며 주문한 와규 스테이크는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다. 같이 시켰던 시저 샐러드는 약간 짰지만 스테이크만큼은 기대 이상이었다. 일본인들은 고기가 입에서 녹는 걸 미덕으로 생각한다던데, 이런 게 그 말이구나.



    와규 스테이크가 제법 괜찮았던 덕분에 기대하며 조식 쿠폰을 샀는데, 비싸긴 해도 조식 역시 맛있었다. 여느 호텔들과는 다르게 일식부터 양식까지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고 오픈 키친에서 바로바로 조리해서 신선하게 먹을 수 있었다. 제일 맛있었던 건 말차 크로와상. 아침을 잘 먹지 않는 편이라 일찍 식사를 마쳤는데 친구가 배불러도 이건 꼭 먹어보라길래 가져왔더니, 웬걸. 세상에 마상에 이런 맛이 다 있었다.




네기야 헤이키치

텐동 1,550엔 / 토로로메시 1,000엔

https://goo.gl/maps/2bms6EgyMfF2





    다음 날 본격적으로 시작된 먹방 여행의 첫 타자는 원나잇 푸드트립 교토 편에도 등장했던 맛집인 네기야 헤이키치. 파(네기)가 중심인 일본 가정식 전문점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테이블에도 별도로 파를 놓아뒀던 기억이 난다. 주문 즉시 조리하는 데다 내부 공간도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라 회전율이 좋은 식당은 아니다. 우리는 2시쯤 도착해서 한 시간 조금 넘게 기다렸고 - 부엌 환풍구 앞에서 기다릴 땐 5초 정도 웨이팅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우리 뒤로 2팀 정도 더 받은 뒤 런치가 마감된 것 같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선 식당 내부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교토의 분위기를 꼭 닮아있었다. 여름날 시원한 선풍기 바람 아래 아른아른 잠들던 시골 할머니 댁 마루 같은 느낌이랄까. 생수 대신 오랜 기다림의 갈증을 한 번에 씻어주는 보리차가 나와서 좋았고, 서빙되어 나온 음식이 정갈해서 더 좋았다. 물론 양은 전혀 정갈하지 않았다. 단언컨대 소식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붕장어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 내오는 텐동은 밥보다 튀김이 더 많다. 어마어마한 비주얼도 비주얼인데, 살짝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튀김이 일품. 깨끗한 기름으로 정성 들여 튀겨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려 9종류의 튀김 중 이름값에 걸맞게 파를 얇게 벗겨내서 튀긴 것도 있었는데 별맛 안 나겠지 싶었던 기대보다 훨씬 맛있었다. 약간 기름지다 싶을 때마다 곁들여 나온 반찬을 먹으면 입 안이 다시 개운해지는 것 같아 좋았다. 밥 양이 꽤 많아서 결국 남겼다.



    친구는 토로로메시(마 밥)를 주문했다. 내겐 정말 생소한 요리였지만 먹어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밥을 먼저 내오시고 마를 따로 들고 와서 부어주시는데, 잔뜩 얹어주는 마가 촉촉하고 시원하게 넘어갔다. 40도에 육박하는 교토의 더위를 식혀줄 만한 음식이랄까. 함께 나온 계란 노른자랑 파를 곁들여 먹으니 간도 적당히 맞고 맛있었다. 다만 느끼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에는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면 물릴 것 같았다.




이네

사가 정식 1980엔, 아라시야마 정식 2180엔

https://goo.gl/maps/PuyRupGVJ2o



    이네는 교토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아라시야마에 위치해 있다. 스테이크동이 유명한 오츠카(Otsuka)와 두부 맛집인 이네를 두고 고민하다가 아라시야마는 두부가 유명하다고 해서 이네로 결정했다. 결론적으로는 이네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고기는 첫날 저녁에도 먹었을 뿐 아니라 오사카에서 먹었던 규카츠도 너무 맛있었어서! 대신 이네는 딱 아라시야마에서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맛이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에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두부 향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사진을 왜 치우치게 찍었을까.. 먹을 생각에 급했던 게 틀림없음



    친구는 맑게 끓여낸 두부를 먹을 수 있는 사가 정식, 나는 독특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아라시야마 정식을 주문했다. 두부로 밥이 되냐던 걱정이 무색하게 이네의 두부 정식은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이것저것 조금씩 먹을 수 있게 차렸다고 생각했는데 다 먹고 나니 든든하게 배가 불렀달까. 게다가 원체 싱겁게 먹는 탓에 일본에서의 음식이 다 조금씩 짰던 내게 딱 맞는 건강한 맛이었다. 두부 본연의 깨끗하고 담백한 풍미가 잘 살아나는 한 상이었다. 친구는 약간 심심하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친구가 표준 입맛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조금 싱거울 것 같긴 하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유바'. 두유를 끓일 때 형성되는 막으로 만드는 음식이라고 하는데, 치즈 같기도 하고 푸딩 같기도 한 담백하고 신기한 맛이었다. 건져 먹을 수 있도록 따로 내주는 유바는 유자로 만든 소스에 찍어 먹는데 유바의 부드러운 식감과 상큼한 소스가 신기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무엇보다 이게 밥반찬이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된다. 심지어 엄청 맛있다. 아라시야마 정식을 주문하면 유바를 따로 내줄 뿐 아니라 밥에 녹말을 풀어 만든 것 같은 소스(내지는 젤리 같은 국물)와 유바를 얹어 내준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면 살짝 느끼해지긴 하지만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덮밥인 것 같기도 하고, 밥에 무언가 곁들여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가 주문한 사가 정식 중에는 맑게 끓여 따뜻하게 내주는 두부가 제일 좋았다. 대만에서 살다와서 나름 다양한 두부 요리를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입에서 부드럽게 뭉개지는 두부의 식감은 또 새로운 맛이었다. 교토에서 먹었던 것 중 다시 먹고 싶은 걸 하나만 골라보라고 한다면 이네의 두부 정식을 꼽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시원한 차도 개운하고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동양정

함박스테이크 1,280엔 / 토마토 샐러드 380엔

https://goo.gl/maps/Dob7e8D1dqK2



    오사카, 교토 쪽에 경양식을 잘하는 레스토랑들이 많다고 해서 한 번쯤은 먹어보고 싶었는데 나는 사실 경양식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친구가 먹고 싶다는 집을 골랐다. 친구의 선택은 1897년에 문을 연 함박스테이크 전문점인 동양정이었다. 다양한 곳에 지점이 있지만 우리는 교토에서 오사카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교토 역 킨테츠 선 쪽에 위치한 지점을 방문했다.





    사실 함박스테이크 자체는 엄청나게 특별할 게 없는 맛이었다. 함박스테이크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했던 건 그 이름부터 영롱한 나마비루.. 바로 생맥주였다. 덥기로 소문난 나라에서 살다온 두 사람이 같이 여행하면 웬만한 날씨에는 오늘 좀 덥긴 하다고 넘어가게 되는데, 그 날은 하루 종일 불편한 유카타를 입고 40도에 가까운 더위를 견뎠던 탓에 저녁을 먹으러 갈 때쯤 둘 다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유카타를 반납하고 짐을 찾아 교토 역 끝자락에 위치한 동양정에 겨우 앉아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딱 들이켰을 때의 그 기분이란. 세상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 둘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함박스테이크보다 380엔에 추가한 토마토 샐러드가 더 맛있었다. (그렇다고 함박스테이크가 맛없다는 건 아니다. 비주얼도 훌륭하고 촉촉하게 구워진 것도 좋았지만 굳이 일본에서 먹어야 할 맛인지 약간 의문이 들었을 뿐..) 껍질을 벗긴 토마토가 통째로 나오는데 케첩과 마요네즈를 섞은 듯한 소스를 얹어서 나온다. 함박스테이크를 먹기 전 시원하게 입가심을 하기에 이만한 애피타이저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입 크기로 잘라서 소스를 잔뜩 묻혀 먹으면 일본 경양식에 기대했던 바로 그 맛이다. 달고, 몽글하고, 아기자기한 그런 맛. 샐러드가 서빙되어 나오는 접시마저 토마토라 일본답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에서 먹는 건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사람이 꼬박꼬박 하루 3끼씩 먹도록 만들어져서 그렇기도 하고, 음식이 여행자가 경험할 수 있는 문화의 최전선에 서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토에서 이틀 반의 일정을 꽉 채우고 이동한 오사카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었지만 교토만큼 강렬한 인상이 남진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왜 그랬을까 곰곰 생각을 해봤는데, 교토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신기하리만치 교토를 닮아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휴가를 시작하는 여유로움을 곁들였던 사쿠라 테라스 더 갤러리의 와규 스테이크, 조용한 분위기에서 정갈하게 식사할 수 있었던 네기야 헤이키치, 고즈넉한 아라시야마의 분위기를 그대로 내온 듯한 이네의 두부 정식, 마지막으로 번잡한 역 안에 위치해 있었음에도 친절함 그 자체로 응대해주던 동양정의 함박스테이크까지 어느 하나 교토를 닮지 않은 음식이 없었다.



    간사이를 붉게 물들일 단풍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단풍 시즌을 맞아 교토에 방문하게 된다면 아름다운 청수사의 풍경뿐 아니라 교토를 꼭 닮은 음식들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천 년 고도'라는 그 별칭답게 그 역사를 담고 있는 소박하지만 정성 어린 음식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4박 5일 베트남 다낭, 호이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