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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 Nov 02. 2017

오사카 먹킷로드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교토 편 보러 가기





    앞서 교토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오사카에 대한 기대치가 별로 없었다. 맛있는 거 실컷 먹고 덕심(...)을 채우기 위한 쇼핑이나 열심히 하자는 주의였다. 구글 독스가 터져나갈 정도로 빽빽하게 만들었던 교토 일정과 달리 오사카는 별다른 일정도 없었다. 점심 먹고 다이마루 백화점 포켓몬 센터, 저녁 먹고 디즈니 스토어 하는 식이었다. 휴가랍시고 왔는데 깊게 생각하거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싫었다. 우리에게 오사카는 휴식 그 자체여야 했다.



    일본까지 가는데 정말 괜찮은 스시가 먹고 싶어서 한국에서부터 예약해뒀던 스시 치하루를 제외하면, 어딜 가서 뭘 먹을지 구체적으로 정하고 움직였던 교토 때완 달리 오사카에서는 먹고 싶은 메뉴만 생각해놓았다. 그리고 그때그때 어딜 갈지 찾아냈다. 대신 조금 멀어도 되고, 조금 비싸도 상관없으니 하나를 먹어도 진짜 맛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까다롭게 골랐다. 덕분에 이치란 라멘도, 하루코마 스시도 없는 나만의 오사카 맛집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도 한국인들을 잘 볼 수 없기도 했다.




나니와 소바

스다치 소바 1,166엔, 튀김 자루소바 1,188엔 (모두 세금 포함)

https://goo.gl/maps/5hbApNYUi3Q2



    교토에서의 고된 일정을 마치고 오사카로 이동해 숙소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10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히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놀다 새벽에 잠들었다.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나 뭘 먹고 싶냐는 내 질문에 친구는 무겁지 않은 게 먹고 싶다고 했고, 나는 우리가 쇼핑을 위해 방문할 신사이바시 근처 맛집을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는 친구의 취향을 200% 저격했다.



    나니와 소바는 신사이바시 역 근처에 위치한 메밀 소바 전문점이다. 오사카의 옛 이름이라는 '나니와'를 딴 가게는 신사이바시 역 다이마루 백화점을 지나 위치해 있다. 신사이바시는 어딜 가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쇼핑 스팟인데도 조용하게 식사할 수 있어 더 좋았던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네기야 헤이키치와 더불어 가장 일본풍이라는 느낌을 주는 식당이었다. 유사한 이름의 나니와 오키나는 미슐랭 원스타에 빛나는 유명한 소바 전문점이라고 하는데, 다음에 오사카에 또 갈 일이 생긴다면 나니와 오키나에 가서 니싱소바를 먹어보고 싶다.





    다국적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신사이바시에 위치해 있어 그런지 일본어는 기본이고 영어, 한국어, 중국어(간체/번체)까지 지원되는 태블릿 메뉴판이 있다. 덕분에 일본어를 할 줄 몰라도 어렵지 않게 주문할 수 있다. 친구는 오사카의 더위를 식혀줄 스다치 소바, 나는 무난한 튀김 자루소바를 주문했다. 수타로 면을 뽑는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내가 기대했던 건강한 맛을 그대로 간직한 면을 먹을 수 있었다. 쫄깃하면서도 거친 메밀 본연의 성질을 잘 살린 면이었다.





    교토에서 토로로메시로 내게 이미 1차 음식 문화충격을 선사했던 친구는 나니와소바에서 스다치 소바를 주문함으로써 2차 문화충격을 선사했다. 대중적으로 알려져 한국에서도 많이 먹는 음식을 제외하고 일식에 전혀 문외한인 나에게 이것저것 다양하게 먹여준(...) 친구 덕분에 이런 맛도 있다는 걸 경험할 수 있었는데 스다치 소바는 라임처럼 청량한 스다치(초귤)를 동동 띄워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여름 별미였다. 소바를 먹고 나면 입에 남는 쯔유의 뒷맛을 스다치가 개운하게 잡아준다. 신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입에도 새콤하게 잘 맞았으니 색다른 음식에 도전해보고 싶은 분들은 꼭 드셔 보시길!




키소지

스키야키 정식(ordinary japanese beef) 3,700엔 (세금 포함 3,996엔)

https://goo.gl/maps/X2JQKPQLdtn





    간사이를 여행하며 느낀 것 중 하나는 물가가 비싸다곤 하는데 의외로 외식비가 엄청 비싸게 느껴지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음식이 대체적으로 저렴하다기보다는 가격 값을 한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비싼 돈을 지불한다면 내가 지불한 만큼에 상응하는 음식과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걸 제대로 느낀 곳 중 한 곳이 바로 키소지였다. 종업원이 처음 한 번만 구워주고 그다음부터는 직접 해서 먹어야 하지만 우리가 외국인이라 서툴어 보였는지 종종 와서 잘 먹고 있나 도와주곤 했다.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과한(?) 친절이 가식 같아서 불편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어쨌거나 저런 사소한 친절들이 일본을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키소지 신사이바시 점은 지나치기 쉬운 곳에 위치해있다. 난바 역에서 신사이바시 역으로 걷다 보면 애플스토어가 있는데 그 옆 미쓰비시은행 건물 지하에 있기 때문이다. 도톤보리 강 너머로 노을이 물들어가는 모습을 구경해가며 도착한 키소지는 저녁 시간대임에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샤브샤브 & 스키야키 전문점이다 보니 회전율이 빠른 음식은 아닌데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이 꽤 널찍해 가능한 듯 보였다. 영어 메뉴도 있고, 어설프지만 조각 한국어도 있으니 주문이 어렵지는 않다.





    처음에는 기모노를 차려입은 종업원이 와서 직접 고기를 익혀주는데, 계란에 찍어 입으로 직행한 맛은 할렐루야였다. 맛집 탐방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자주 하던, 음식으로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교토 편에서 일본인들은 고기가 입에서 녹는 걸 미덕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언급한 적 있었는데 스키야키가 정말 그랬다. 한 입 넣자마자 '이건 좋은 고기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부드러움과 적절한 간(계속 먹다 보면 다소 짜게 될 수밖에 없다. 소스 조절이 중요한 듯!), 계란까지, 그야말로 고기가 입 안에서 녹아내렸다. 평소에도 워낙 육식파라 좋은 고기를 많이 먹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인생 소(牛)가 여기 있었다.



    채소와 버섯도 싱싱하고 좋은 재료를 쓴다. 자작한 소스에 재료가 익으면 계란에 찍어 먹으면 된다. 다 먹어갈 때쯤엔 납작한 우동면(키시멘)도 주는데, 스키야키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불러서 결국 다 못 먹고 남겼다. 동양정에서 먹은 것과 비슷한 토마토 샐러드는 호불호가 갈릴 만한 맛이지만 내 입맛에는 새큼하게 맛있었다. 후식 아이스크림은 여러 맛 중 선택할 수 있는데 나와 친구 모두 말차를 선택했고, 일본에서의 말차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타케루

1인 1메뉴 주문 필수, 규카츠 정식 1,100엔

https://goo.gl/maps/vuEX3Qb3AFo





    교토 & 오사카에서 방문한 모든 가게 중 가장 한국인을 많이 만났던 곳이다. 닛폰바시(정확히 말하면 덴덴타운 쪽)에 위치해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한국인이 많이 오는지 어설프지만 의미는 충분히 통할 정도의 한국어 안내도 있었다. 가게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꽤 알려진 곳이라 그런지 웨이팅이 있다. 우리는 1시쯤 가서 30분 정도 기다린 탓에(?) 생맥주를 주문했다. 고기에는 역시 맥주, 더위에도 역시 맥주다. 아사히 드래프트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생각보다 훌륭해서 놀랐다.





    여러 종류의 소스가 나오는데 자리마다 친절하게 규카츠 먹는 법이 안내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표면만 살짝 구워서 와사비를 얹어 먹는 걸 제일 좋아하지만 다른 소스들도 꽤 맛있었다. 소스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규카츠 자체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감칠맛을 더해주는 정도여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규카츠 전문점인데 밥이 정말 맛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에서 먹었던 모든 쌀밥 중에 (심지어 다음에 소개할 스시 치하루보다도) 제일 맛있는 밥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그냥 내 취향에 맞았던 것 같기도 하고. 밥과 양배추 샐러드는 리필되니 양껏 먹어도 된다.



    한창 바쁜 점심 시간대에 갔음에도 깨끗한 기름에 튀겨낸 게 좋았고, 너무 작지 않게 적당한 크기로 나와서 좋았다. 한국에서 규카츠를 먹으러 가면 더 비싼 가격에 더 작은 고기를 먹게 되는데 타케루는 정식을 다 먹고 나면 딱 좋을 정도의 양이었다. 고기를 추가해 1,700엔짜리 정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1,100엔짜리 정식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저녁으로는 좀 아쉬울 것 같고 점심은 규카츠 정식(기본)+생맥주 한 잔이면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그렇게 모자라지도 않고 괜찮을 것 같다. 친구는 이 날 규카츠를 생전 처음 먹어봤는데 이런 맛이 있다고 신기해했다.




스시 치하루 (鮨 千陽)

런치 2,500엔, 디너 3,500엔 (1층) / 7,000엔 (2층)

https://goo.gl/maps/tCvAFCm31sw



    전체 교토 & 오사카 여행 일정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부터 예약을 하고 갔던 레스토랑이다. 가난한 대학생 기준 다소 가격대가 있더라도 제대로 된 스시를 즐길 수 있는 오마카세를 여러 군데 골라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스시 치하루는 눈 앞에 정성 들여 한 점 한 점 만들어주는 스시를 코스로 먹을 수 있는 곳이며, 전체 코스에는 1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1층의 경우 자리가 협소하고 쇼쿠닌(스시 치하루는 인쇼쿠진 대학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교육받은 견습생이 1층을 담당한다.)이 직접 설명하며 스시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한 타임에 예약받는 사람 수가 정해져 있다. 우리는 9시에 예약했는데도 7명이 꽉 찬 상태에서 식사했다.





    스시 치하루는 견습생들이 꾸려나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곳이라고 한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쇼쿠닌이 해주는 설명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눈 앞에서 직접 생선을 손질하고, 굽고, 모양까지 내서 내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가 됐다. 당연히 맛도 있었지만, 스시 한두 점에 저렇게 큰 그릇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무겁고 화려한 그릇에 정갈하게 장식해서 내주는 스시를 단순히 맛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사진 출처: 스시 치하루 공식



    총 9종류의 스시가 나오고 앵콜 스시를 요청할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맛있었던 건 유데에비(삶은 새우). 절대 내가 새우 악개여서 그런 건 아니고 보통 저 정도로 큰 새우가 나오면 비린 맛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그런 게 하나도 없이 고소하고 달기만 했다. 아, 그리고 불에 살짝 구워서 내주는 관자도 정말 맛있었다. 한국에서 먹는 스시와 다른 점을 꼽아보라면 밥이 약간 더 무거운 식감이었다는 점? 일본에서 스시 치하루를 제외하고 다른 스시 전문점을 가보지 않아서 원래 일본 스시들이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여러모로 식재료에 대해서는 아직 한참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라서.



    스시를 다 먹고 나면 미소시루와 녹차를 내준다. 처음에는 왜 미소시루를 다 먹고 난 마지막에 내주나 싶었는데 오히려 깔끔하게 입가심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우리가 나올 때 스시를 만들어준 쇼쿠닌이 골목까지 따라 나와 한국에서 왔냐며, 즐거운 여행이 됐으면 좋겠다고 친절하게 인사해줘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오사카는 '먹으러 간다'는 목적이 가장 분명한 여행지 중 하나다. 여행지로서의 오사카를 설명해보라고 하면 오사카 성, 유니버셜 스튜디오, 그리고 식도락이라는 키워드가 단번에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알아보고 간 게 아니라 그때그때 먹고 싶은 걸 골랐음에도 꽤 훌륭한 맛집 투어에 성공했으니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닌 것 같다.



    사실 오사카에서의 여행 기억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어딜 가도 지나치게 북적이는 인파, 은근한 혐오의 시선, 게다가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 또 다른 대도시 여행은 그렇게 감흥이 없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사카에서 매 끼니를 먹는 시간만큼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워낙 싱겁게 먹는 편이라 일본 음식이 다 짜다고 해서 걱정도 많이 했는데 그게 다 기우였을 정도로. 세상은 넓고 맛집은 많다는 명언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게 해 준 오사카 여행이었달까. 아무래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더위에 지쳐 못 먹고 온 라멘이 문득 먹고 싶어질 때 훅 떠날 수 있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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