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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2 in Taipei

일상이 된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일

by 디어




2016년 2월 21일, 오후 1시 50분 인천발 타이페이행 아시아나.


난생처음 혼자 비행기를 타봤다. 자리는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누군가와 함께 비행기를 탔는데 처음으로 혼자 출국 수속을 하고 이륙을 기다렸다. 기분이 어땠었는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성격상 혼자 어딜 간다고 겁먹거나 했을 것 같진 않고 백팩에 기내용 캐리어에 이미 짐이 많았던 탓에 이민 가방까지 끌고 호스텔을 어떻게 찾아가지 그런 걱정을 했던 것 같다. 노트북에 아이패드까지 든 백팩이 정말 정말 무거웠거든.


집을 구하기 전 호스텔에서 머무는 동안은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기보다는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대만에 와있음에도 대만 생활의 티저 같다는 생각. 집을 구해 이사를 하고 도와주러 오셨던 분이 떠나셨을 때 비로소 모든 게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들었던 '이젠 진짜 혼자구나' 하는 생각. 호스텔에서야 매일 누군가가 오고 가니 몰랐는데 처음으로 시작하는 자취에 낯선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시간이 흘러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지고 내가 사는 동네를 꽤나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느낌이 선명해 그런지 아직도 그 집을 생각하면 기억이 흑백 처리 된 것만 같다.




장기 여행자

banner_holiday.jpg 이제는 서울집 역 만큼 친근해진 台電大樓역


모든 게 서툴렀던 처음과 달리 이제는 단골 가게들도 생기고 적당히 원하는 걸 얘기할 줄도 알게 됐지만 날이 갈수록 처음 타이페이에 내렸을 때의 낯섬은 점점 희미해졌다. 돌이켜보면 요 몇 달 동안은 자취 첫 날 만큼 선명하게 와 닿는 기억이 없다. 어딘가 블러 처리를 한 듯한 희끄무레한 기억들은 내가 이곳에 놀랍도록 잘 적응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별다를 것 없는 타이페이의 일상 속으로 묻히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정신없이 치열했던 서울에서의 삶에 비하면 여유가 넘치는 덕택에 서울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내 모습을 수없이 발견하곤 했지만 매일의 삶이 다를 바 없기에 오는 무료함이 있었다.


중반까지는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환기하는 역할을 맡아줬다. 고맙게도 지금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러 대만에 와줬는데 아무래도 다들 성격도 일정도 다르다 보니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멀리까지 나갈 일이 잘 없을뿐더러 평소에 가는 것과 한국에서 온 손님을 데리고 가는 것은 전혀 느낌이 달랐기 때문에 꽤 기분 전환이 되곤 했다.


그치만 손님이 돌아가고 나면 똑같았다. 오히려 24시간 가까이 붙어 있던 사람이 떠나니 허전하기도 했고 다시 일상이 반복되곤 했다. 그럴 때면 혼자 카메라 혹은 일기장을 들고 집을 나섰다. 어떤 날은 단수이에 가서 멍하니 일몰을 구경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혼자 맛집을 탐방하기도 했다. 중산역 현대미술관부터 중정기념당을 거쳐 정처 없이 발 닿는 곳까지 10km가 넘게 걸은 날도 있었다. 어떻게든 타이페이가 나의 일상 속에 함몰되지 않기를 바랐다. 매번 새로웠으면 좋겠고 매일 특별하기를 소망했다. 내가 사랑하는 타이페이가 내가 도망쳐온 서울과 같아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사실 문제는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안녕


한국으로 돌아가는 표를 산 뒤 나는 줄곧 방황했다. 귀국한 후의 내 생활을 너무나 잘 알 것 같았기에 학교도 가기 싫었고 (이러려고 휴학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딱히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집순이답지 않게 매일 어디든 나가겠다는 정착 초기의 다짐은 꼬박꼬박 지켰지만 친구들이 '루나는 요즘 도대체 뭐하고 지내?' 하고 물을 정도로 그림자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아무 의욕이 없었다. 먼저 사서 걱정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덜컥 겁이 났다. 또 똑같은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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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에 함께 회장단을 했던 절친한 선배가 타이페이에 왔다. 일요일 아침에 어느 공항으로 가는 표가 좀 저렴하냔 카톡을 받았는데 점심을 먹을 때쯤 전자항공권 캡처본이 날아왔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싶어 창을 열었다 닫았다 몇 번을 확인했는데 수요일 도착이 맞았다. 그 날부터 시간 단위로 세며 수많은 손님맞이 중 처음으로 오면 어디 데려가고 뭘 하러 가야지 계획을 세우고 기다렸다. 둘 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시기에 만나 돌아갈 때까지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넋두리도 하고 별 것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북돋아주며,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지금이 틀림없이 가장 빛나는 우리의 청춘일 거라고. 근데 좀 덜 아파도 될 것 같지 않냐며 실없지만 뼈 있는 말을 던지며 오빠는 웃었다.


그렇게 내내 수다를 떨면서 오빠는 단 한 번도 내게 남은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8월 말 잠깐 한국에 들어갔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다 오라는 이야기만 해주었다. 2월에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공항버스에 선배를 태워 보내고 터미널에 한참을 혼자 앉아있었다. 허전함과 동시에 지금부터는 뭔가 달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시간은 타이페이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의 바람처럼 나 자신을 채우며, 긍정적으로, 행복하게 보내야지. 하루하루 이곳에서의 시간이 줄어든다고 초조하게 슬퍼하며 보낼 게 아니라 예쁘게 이별하는 법을 배우며 나의 소중한 도시를 새로운 기억으로 담으며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2년 전 기억을 되살려 고궁박물관에 다녀왔고 그동안 저장만 해놓은 채 가지 못했던 맛집들을 탐방했고 새로운 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언젠가 그리워하게 될 모든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들고 나왔을 때는 카메라로 아니면 핸드폰으로. 나중에 정성 들여 보정을 하든 안 하든 찍고 싶은 모든 것을 찍었다. 못 찍은 사진이라도 분명 언젠가는 추억을 불러일으켜주길 바라면서.


코코가 20주년을 맞아 패키지가 바뀌었다 (:

이제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나 자신과 제2의 고향을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지내려고 한다. 아무리 몸부림 쳐봐도 이 도시가 또 다른 일상이 되는 걸 막을 수 없다면 작은 것이라도 새로 발견해가며 덧칠하면 될 일이다. 스케치하듯 그려 놓았던 타이페이에 색을 입히고 음영을 넣어야지. 오고 싶을 때 언제든 다시 올 수 있게 너무 완벽하게는 칠하지 않으려고 한다. 세상은 넓고 맛집은 많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덧붙여 돌아가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시 숨막히게 바쁜 삶을 살게 되더라도 타이페이에서 보고 배운 것이 있으니 내 태도는 같지 않기를 바랄거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면 될 일이다. 이제 내게 중요한 것은 내가 이곳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들을 한국에 가서도 잊지 않는 것이다. 그게 스물두살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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