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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Sep 02. 2020

피해자를 변호하다.

#3. 사과라는 이름의 폭력 

사과에는 전제가 없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사과의 기본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성범죄 가해자들은 합의를 전제로 사과를 한다. 그리고 그 사과는 또 다른 폭력이 되고 만다. 


그 사람은 직장에서 나와 제일 친한 언니였던 소희 언니의 전 남자 친구였고 나와 부서는 달랐지만 같은 직장의 상급자였다. 소희 언니는 종종 그 사람과의 술자리나 식사자리에 나를 부르곤 했고, 때로는 그 사람의 친구가 동석하여 소개팅과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었다. 친한 언니의 남자 친구. 딱 그 정도의 관계였고, 회사에서는 부서가 달라 이야기할 기회도 별로 없었더랬다. 소희 언니는 그와 1년 8개월 정도 교제를 했고, 자세한 이유를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남자 친구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면서 내게 그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얼굴을 볼 때마다 괴롭다는 이야기도 자주 했었다. 


그렇게 소희 언니와 그 사람이 헤어진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서 카톡이 왔다. '민영아, 소희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게 있는데, 이따가 퇴근 후에 잠시 볼 수 있을까? 내가 주기는 불편해서 네가 전해주었으면 하는데, 우리 자주 저녁 먹었던 고깃집에서 7시에 보자." 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람이 언니 물건을 전해줄 게 있다면서 보자고 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언니는 너만 불편하지 않으면 받아다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날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늘 소희 언니와 함께 가던 그 식당에 갔을 때 그는 이미 도착해있었다. 내가 왔을 때 따라져 있던 물을 마신 것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일어났을 때, 나는 그의 집에 있었다. 큰일을 당했다는 것을 직감했고,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곳을 뛰쳐나왔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다급하게 검색을 했다. '성폭행당했을 때 대처', '강간 신고' 등의 단어를 넣어 검색을 하고 있던 그 순간에도 나는 정신이 멀쩡하지 못했다. 


검색 끝에 나는 근처 '해바라기센터'라는 곳에 도착했고, 그것은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었다. 해바라기센터에 도착해 벨을 눌렀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나는 아무 기억이 안 나는데'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절감했다. 상담사가 나를 먼저 만났다. 나는 어제의 일을 말했고,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강간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해바라기센터에서는 '응급키트'라는 것으로 내 몸에 누군가의 정액이나 DNA가 있지 않는지 검사를 했고, 물을 마신 이후로부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고 하자 혈액검사도 함께 했다. 그날의 정황에 대해 해바라기센터에 상주해 있던 경찰에게 조사를 받았고 난 집으로 돌아갔다. 밤새 어디 있었냐고 묻는 부모님에게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소희 언니네서 잤다고 둘러대자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지만,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입고 있던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를 했다. 그렇게 세 번 정도 샤워를 해도 내 몸은 깨끗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웠다. 온몸이 아픈 고통에 마음은 잠식당했고, 피로가 밀물처럼 밀려왔지만 밤 새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그로부터 3주 정도 지났을 때, 경찰로 부터 연락이 왔다. 그 사람이 피의자 신분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고 했다. 그날 해바라기센터에서 한 검사에서 피의자의 정액이 검출되었고, 혈액 검사에서는 졸피뎀이 성분이 있었다고 하면서 평소에 내가 졸피뎀을 복용한 적이 있었는지 물었다. 나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 그 사람은 그 물 잔에 수면제를 타고 나를 강간하기로 계획했던 것이었다. 이후 재판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경찰이 압수한 피고인의 핸드폰에는 나를 강간하는 장면까지 촬영되어 있었으므로 피고인이 돼버린 그 사람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이제 그 사람이 법대로 처벌받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구속되어 있었으니 당연히 내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재판이 열린 다음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그 당시 회사에서 피고인에 대한 징계건으로 인사부에서 자주 전화가 왔었기 때문에 혹시나 싶어 전화를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내게 전화를 건 사람은 피고인의 엄마라는 악마였다. 


처음에는 '자식을 잘못 키워 죄송하다. 자식 대신 사과하겠다.'로 시작했다. 나는 사과를 받을 생각도 없고 합의할 의사도 전혀 없다고 다시는 전화하지 마시라고 분명히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엄마'라는 이름의 괴물은 자신의 아들이 내게 저지른 파렴치한 죄의 무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내게 2차 가해를 퍼붓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해서 전화를 받지 않자, 그 여자는 내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이 그런 사람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착한 아이였다. 여자 친구와 헤어져서 너무 속상해서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 못한 것 같다'.라고 하면서 '나도 어렸을 때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잊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피해자 너를 위해서도 합의를 해주고 빨리 잊는 것이 너의 인생에 좋을 것이다.'라는 충고도 서슴지 않았다. 그 문자에 대응하기도 귀찮아진 나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합의하지 않습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라는 문자를 보내고 그 아줌마의 전화번호를 수신 차단했다. 나는 이제 그 아줌마의 사과라는 이름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여자는 내가 자신의 아들과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회사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회사의 특성상 문서가 반입될 때 인사부서를 거치도록 되어 있었고, 나는 혹여 이 사실이 전 회사에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로 밤잠을 설쳐야만 했다. 그 여자는 편지를 보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퇴근을 하려고 회사 정문 앞을 나서는 데, 모르는 얼굴의 중년 여자가 나를 쫓아왔다. 나는 그 여자가 피고인의 엄마라는 사실을 직감했고, 그 여자는 내가 다니는 회사 앞에서, 나의 일터 앞에서 내가 자신의 아들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에 대해서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 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게 될까 두려운 마음에 나는 근처에 있던 커피숍으로 그 아줌마를 데리고 들어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그 사건에 대해 더 이상 떠올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아줌마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더 이상 피고인의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라는 나의 합의문이었다. 닿을 수 없는 평행선 같은 대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내 마음에는 상처가 났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라고 하면서 합의를 종용하는 그 아줌마의 이야기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내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아니, 본인도 성범죄의 피해자였던 적이 있다면서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할 수 있을까. 그 인간이 원래는 착한 사람인 걸 피해자 분도 알지 않냐고 어떻게 내가 물을 수 있을까. 용서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헛소리를 어떻게 내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당신 아들은, 나를 강간하기 위해서 졸피뎀을 부정 처방받아서, 나를 만나자고 거짓말로 유인한 다음 내 물 잔에 수면제를 먹이고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 나를 강간하고 심지어 그 강간한 장면을 촬영한 인간 말종 중에 말종이고 갱생이 불가능한 쓰레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아줌마의 장황한 말들이 그 커피숍의 공기를 떠돌며 악취를 풍기는 것 같았다. 다른 무엇이 악마인가? 지금 자신의 아들이 강간한 피해자 앞에서, 용서를 강요하며 위선을 떨며 내 직장 앞까지 찾아와 내게 합의를 받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 여자가, 자신의 범죄자 아들을 옹호하기 위해서 나를 더욱 큰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저 여자의 말들이 악이 아니면 무엇이 악일 수 있을까. 나는 재차 합의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봐야 소용없을 것이란 걸 알았다. 이 아줌마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합의를 하겠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말했다. "전 이 사건 합의는 합의금 1억 이하로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제 회사로 편지를 보내시거나, 저를 또 찾아오신다면 절대로 합의를 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피고인의 엄마는 갑자기 표정이 경직되었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을 걱정해 준다더니, 1억이라는 금액을 말하자 '이 사건으로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었구나'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회사 앞으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전화 수신 제한을 풀어드릴 테니, 합의 관련해서 입장이 정해지면 연락 주세요."라고 말하고 커피숍을 도망치듯 나왔다. 


나는 1억을 받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내 기준에서 엄청 큰 금액을 제시하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내게 사과의 문장을 한 협박을 멈출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라는 존재는 아들의 위기 상황에서는 나의 계산을 뛰어넘는 지략을 가지게 되기라도 하는 걸까.  


며칠 뒤 엄마는 집에 돌아온 나에게 " 너 혹시 '강현민'이라는 사람아 니?"라고 물었다. 나는 부모님에게만은 끝까지 딸이 이런 일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터라 그 피고인의 이름이 엄마 입에서 나오자 가슴이 철렁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엄마에게 왜 묻냐고 되물었다. "아니 택배가 왔는데, 완도에서 살아있는 전복을 엄청 좋은 걸 보냈더라고, 근데 받는 사람 이름은 없고, 보낸 사람은 강현민, 완도 수산에서 보냈나 봐. 나한테는 전복을 보낼 사람이 없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너 아는 사람이니?"라고 엄마가 말했다. 피고인의 엄마라는 여자가 그날 나를 미행했구나. 그래서 우리 집에 전복을 보냈구나. 우리 집에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인 건가. 하는 마음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그 아줌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저희 집에 전복 보내셨어요?" 그 여자에게서 답이 왔다. "네 보냈어요. 민영 씨 건강 좀 회복하라고 보냈는데 잘 받으셨나 보네요" 나는 전복을 되돌려 보내겠다고 집주소를 물었지만 피고인의 엄마는 끝내 주소를 보내지 않았고, 내게 전복을 먹고 힘을 내고 마음을 잘 추슬러서 민영 씨의 미래를 위해서 용서를 하라는 헛소리로 주소를 대신했다. 결국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전복이 출발한 완도 수산에 내 돈을 들여 전복을 다시 되돌려 보냈고 전복을 되돌려 보냈고, 나를 미행하고 내 집 주소를 알아내 우리 집에 그런 물건을 보낸 것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도무지 어떤 방법도 통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절박해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경찰 수사 중에 나라에서 나에게 피해자 변호사를 선정해주었다는 것이 기억났고, 몇 차례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었지만 내가 받지 않고 문자에 답장을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피해자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피해자 변호사는 그동안 내 대신 재판에 나가고 있었다고 했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계속해서 피고인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와 원만하게 합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판사님께 말했다고 했다. 나는 그간의 일을 피해자 변호사에게 말했고, 피해자 변호사는 피고인의 엄마의 그간의 행태는 명백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재판 중인 법원에 그와 관련한 내용을 피해자 변호사의 의견서로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피고인이 가중 처벌받게 된다고 했고, 나는 피해자 변호사에게 판사님께 그간의 2차 피해에 대해 꼭 말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피해자 변호사는 재판 절차를 통해서,  피고인의 엄마로 인한 나의 추가 피해와 나의 피고인에 대한 강한 처벌의 의사를 대신 전달해주었고, 판사는 그러한 점을 모두 고려해서 그에게 나에 대한 준강간 및 카메라 등 이용촬영,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의 죄명으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는 이제 꼼짝없이 7년을 교도소에서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피고인 엄마의 길었던 괴롭힘은 피고인의 항소가 기각되고 판결이 확정되면서 끝이 났다.


"미안하다"라는 말로도 용서가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평생 나에게 그 날의 치욕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내가 졸피뎀을 먹고 그날 밤의 자세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로 나는 지금까지도 단, 한 순간도 1초도 그 상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상처에서 진물이 흐르고 있는 내게 합의문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 사과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것을 '나를 위한' 것으로 둔갑시킨 가증스러운 말들로 뒤덮인 사과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인해 내 인생은 더더욱 너덜너덜해졌다. 그것은 피해자에게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다. 피고인의 엄마가 내게 한 행위는 폭행 협박이 없어서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여자가 내게 한 것이 폭력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폭력이 될 수 있을까.


성범죄 가해자의 가족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합의를 목적으로 한 사과는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일 뿐이다. '한 순간의 실수'라고 항변하는 그 범죄 행위로 인해 피해자는 평생 동안 고통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한 순간만으로라도 진심으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면, 조악한 말들로 합의를 전제로 한 사과를 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뼈에 사무치게 후회하고 뉘우치더라도 피해자는 쉽사리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는 법이다. 함부로 용서 하기에는 상처가 너무나도 깊고, 피해자가 떠안고 가야 하는 고통스러운 기억의 편린들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소망한다. 내가 진심으로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가해자가 진심으로 교도소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기를. 그래서 내가 이 모든 상처를 딛고 내일로 나아가는 용서의 한 걸음을 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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