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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Sep 28. 2020

피해자를 변호하다

#6. 소중한 너희들의 몸

#6. 소중한 너희들의 몸 


서울 00 경찰서, 여 청수사 3팀. 신발을 벗고 영상녹화실로 들어갔다. 경찰이 앉아 있는 책상, 그리고 맞은편엔 앳된 얼굴의 피해자. 나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피해자 옆에 놓여 있는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작은 창문으로 경찰서의 낯익은 풍경이 보였다. 소녀는 피해자였지만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또 한 명의 소녀를 만났다.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이 아이도 채팅앱에서 남자를 만났다. 늘 그렇듯 주변엔 가출을 일삼는 친구가 하나 있었고, 그 친구를 통해서 채팅앱을 알게 된다. 채팅앱은 수없이 많다. 아이들이 글을 올리면 위치 기반으로 주변에 있는 남자들이 답을 한다. 아이들이 구하는 것은 다양하다. 잠잘 곳, 돈, 술, 심지어는 담배. 소녀들은 겨우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성을 팔고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부모와 다투고 나와 당장 잘 곳이 없는 아이들이 자신의 성을 팔아 잠잘 곳을 구하고 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성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다. 피해자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도 없다. 그러나 어른들은 여전히 가해자이다. 단돈 만원으로, 담배와 술로 아이들을 꾀여 내어 성을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이런 앱을 만든 사람들 그리고 이런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무관심한 어른들 모두, 우리는 가해자이다. 


오늘도 아빠와 다투었다. 아빠는 소영이와 놀지 말라는 소리만 늘어놨고, 술을 먹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잔소리가 늘 큰소리로 변했고 결국 마지막은 아빠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린 엄마에 대한 비난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빠가 한참 설교를 하고 엄마 욕을 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서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오늘은 꼭 나가야지'. 드디어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기 시작했고 나는 소영에게 페메를 보냈다. "어디야?" 소영은 역시 밖이었다. "응 00동 박스 안 할리스에 있어. 너도 나와." 나는 소영의 페메를 받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내 방 창문을 열어 집을 나왔다. 아빠가 폰을 끊어버려서 전화도 되지 않았고, 와이파이가 있는 곳을 찾기 전까지는 소영과 다시 페메를 할 수도 없었다. 소영이를 만나니 오늘따라 더 들떠 보였다. 재워줄 사람을 찾았다는 것이다. 소영이는 늘 집을 나가 있는 상태랑 다름없었다. 가끔씩 엄마가 일나 가고 없는 낮 시간을 틈타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서 다시 나오곤 했다. 학교까지 그만둬버리고 소영이는 길에 더욱 익숙해졌다. 나는 그런 자유로운 소영이가 부러웠다. 소영이에게 오늘 어디서 자는 거냐고 물었더니, 채팅앱에서 한 아저씨를 만났고 그 아저씨가 재워주기로 했으니 걱정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돈 한 푼 없이 맨몸으로 나온 나는 소영이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특별히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집이 아닌 곳에서 잘 수 있다는 것이 좋았을 뿐.


할리스 앞에서 아저씨를 만난 것은 저녁 8시쯤이었다. 아저씨는 당연히 소영이 혼자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있으니 뭔가 걸리적거린다는 투로 말했다. "얜 누구야? 얘도 같이 있는 거야?". 소영이는 말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젤 친한 친구예요." 아저씨는 이내 별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배고프다는 소영이의 말에 우리를 떡볶이 집으로 데리고 갔다.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나와 소영이는 떡볶이와 순대 라면까지 시켜 아저씨가 옆에 없는 것처럼 수다를 떨며 배부르게 먹었다. "그럼 갈까?" 아저씨는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산다고 했고 맥주 몇 캔과 담배를 사서 나왔다. 아저씨가 소영이를, 정확히는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모텔이었다. "여러 명이 숙박하면 안 되니까 내가 먼저 방을 잡아 둘 테니 너희들은 10분쯤 있다가 내가 앱으로 방 번호 알려주면 그때 들어와"라고 말하고 들어갔고, 소영이는 익숙한 듯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막상 모텔로 들어가려 하니 나는 걱정이 되었다. "소영아 괜찮을까?" 소영이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걱정 마. 별거 아니야. 넌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자는 척 해" 나는 모텔 방으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런 곳은 처음이었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대수롭지 않은 듯 평상시처럼 이야기하는 소영이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소영이가 말했다. "너는 그냥 바닥에서 자는 척하고 있으면 돼. 아저씨가 가면 오늘 편하게 잘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우리는 그렇게 모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맥주 캔 하나를 따서 마시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맥주를 권했지만 나는 너무 떨려서 그냥 너무 졸려서 먼저 자겠다고 했다. 침대 위에 있던 이불을 바닥에 깔고 침대를 등지고 누웠다. 눈을 꼭 감고 자는 척을 시작했다. 침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모르고 싶었다. 그렇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불을 돌돌 말아 침낭처럼 만들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아저씨와 소영이는 침대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간은 정말 천천히 흘렀고 나는 잠든 척했다. 그렇게 몇십 분이 지났을 때 아저씨가 화장실로 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영이는 말했다. "이제 됐어. 일어나도 돼. 다 끝났어" 아저씨는 옷을 입은 채 욕실에서 나왔다. "맥주 남은 거 너희들이 마셔도 돼. 담배도 두고 간다."라고 하면서 내게 말했다. "오늘 너 여기 없었던 거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네, 고맙습니다." 


아저씨가 나가고 소영이는 내게 말했다. "오늘 이제 잘 곳이 생겼다. 그렇지. 우리 맥주 마시자"라고 하면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나는 왠지 소영이가 대단해 보이면서도 소영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내 우리에게 잘 곳과 맥주 몇 캔과 과자 그리고 담배, 잘 터지는 와이파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들떴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 밤 같이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가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함께 잠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날 일은 내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다. 


소영이는 내게 그 어플을 가르쳐 주었다. 집에서 갑자기 나왔을 때 유용할 것이라고 했다. 돈이 필요할 때 용돈도 생긴다고 했다. 나는 소영이가 그 날 아무렇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고 나 또한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플을 가입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필요할 때 써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단 가입은 해 두었다. 그 뒤로도 나는 소영이를 베프로 생각했고 우리는 자주 어울려 놀았다.


여름 방학 때였다. 아빠는 아직까지 핸드폰 요금을 내주지 않고 있었고 심지어 집안에 인터넷까지 끊어 버리셨다. 내가 소위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아빠가 학원을 가라고 준 돈으로 학원을 가지 않고 옷을 사고 소영이와 노래방을 갔던 것이 아빠에게 들켰기 때문이었다. 나는 집안에 갇혀 친구들과 연락 조차 할 수 없어서 너무나도 답답했다.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와이파이가 되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집을 나서서 교회로 갔다. 교회 앞에서는 역시 와이파이가 터졌다. 소영에게 페메를 보냈지만 소영이는 읽지 않았다. 페이스북으로 전화도 걸어보았는데, 전화 역시 받지 않았다. 연락을 안 한 지 며칠이 지나서 일까. 나는 갑자기 혼자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해졌다. 


그때 소영이가 가르쳐 준 그 채팅앱이 떠올랐다. 어플에 글을 올렸다. "용돈 주실 분 구합니다" 1분도 되지 않아서 답이 왔다. 답장을 한 남자는 나의 위치를 물었고 교회 앞으로 데리러 와야 한다고 말했다. 10분쯤 지났을 때 하얀색 차가 내 앞에 섰다. 그 남자의 얼굴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남자의 옆자리에 탔고 그 남자는 내게 배가 고픈지 물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고 나는 모르는 남자와 밥을 먹고 싶지는 않아서 배고프지 않다고 했다. 그 남자는 알았다면서 차를 몰고 어디론가 갔다. 우리 동네에 공사 중이던 공터 근처에,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데이터 남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흔쾌히 내게 데이터를 주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내가 앉아 있던 조수석의 의자를 뒤로 젖혔고 내 앞으로 와서 내 옷 속으로 손을 넣기 시작했다. 나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 남자가 무슨 행동을 하던지 내버려 두었고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나는 그 남자가 내 몸을 만지고 더 한 행동을 할 때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소영이와 드디어 연락이 되었다. 소영이는 내게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공터 부근 차 안이라고 답하고 30분 뒤에 만나자고 답을 했다. 그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다 끝낸 듯했다. 나는 그제야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 느껴졌다. 내 몸에서는 피가 나왔고, 나는 당황했다. 아저씨도 놀란 듯했다. "너 처음이야?" 아저씨는 차 안에 있던 휴지를 건네주며 피를 닦으라고 했고, 내가 처음이라고 하자마자 자상한 말투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 다시 한번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고, "이제 어디 갈까? "라고 묻길래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하고 데려다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알겠다고 하면서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다. 내릴 때쯤 남자는 내게 2만 원을 주면서 친구와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고 했다. 담배도 필요하냐고 묻더니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거의 새 담배를 건네주었다. 돈을 받아야 하나 몇 초간 고민했지만 용돈도 끊긴 처지에 고민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 그 돈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소영이와 저녁을 먹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의 일이 내 첫 성경험이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남자 친구가 있었던 적도 없었다. 나는 그날 그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친구들과 페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것에 그렇게 큰 일인 줄은 나중에 경찰서에 가서야 할게 되었다. 그날, 아빠는 평소보다 일찍 들어와 있었다. 술을 마신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밥을 먹었다고 하자 어디서 누구와 먹었는지 추궁했고 소영이와 먹었다고 했지만 아빠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내 핸드폰을 가져간 아빠는 손쉽게 어플을 찾아냈다. 아빠가 그렇게 화가 난 모습은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에 처음 봤다. 아빠는 화를 내면서도 내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날 밤에는 핸드폰을 압수당한 채 조용히 지나가는 듯했다. 


그다음 날 아침 아빠는 나를 차에 태우고 집 근처 경찰서로 갔다. 내가 경찰에 갈 만큼 무언가를 잘 못했는지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아빠가 아무리 내가 미워도 딸을 경찰에 신고할 줄은 몰랐다. 생전 처음 가본 경찰서는 너무 무서웠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빠는 경찰에게 내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나는 경찰서 한 구석에 의자에 앉아서 물을 마셨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아빠는 소영이 이야기도 하는 것 같았다. 나 때문에 소영이가 곤란해져 나랑 놀아주지 않게 될까 봐 무서웠다. 그날은 그냥 아빠와 경찰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집에 돌아왔다. 그날부터 당연히 핸드폰은 압수였다. 아빠는 내게 더 이상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집을 나가거나 소영이와 어떻게든 연락을 하게 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냥 집에 있는 수밖에 없었다. 방학이라 시간은 더더욱 더디게 지나갔다. 


며칠 뒤 아빠는 나를 태우고 다시 그 경찰서로 갔다. 이번에는 여자 경찰이 나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를 도와주는 변호사도 와 있다고 했다. 나는 이제 소년원이라도 가게 되는 게 아닌가 너무 무서웠는데, 그 경찰 언니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나와 차 안에서 만났던 그 남자를 처벌하기 위해서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경찰서 안쪽에 조사실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여자 경찰 언니는 편하게 말하라고 하면서 이미 와 있던 변호사가 조사에 같이 있을 건데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고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다. 경찰서라는 곳은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은 곳이었다. 경찰은 내게 그 어플을 알게 된 경위와 그 날 일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그리고 그 아저씨가 타고 있던 차에 대해서도 기억나는 대로 다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내 기억의 한계 내에서 모두 사실대로 말했다. 경찰은 특정 부분에서 놀란 듯이 여러 번 물었다. "그래서 너는 차 안에서 그 남자가  너와 성관계를 할 때 계속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는 거야? " 나는 왜 이 대목이 문제인 지 알 수 없었다. 여러 차례 묻기에 여러 번 같은 대답을 해 주었다. "네. 집에서도 인터넷이 안돼서 꼭 친구와 연락을 해야 했어요". 차 안에서의 일에 대해서 자세히 물을 때마다 나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소영이와 페메를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고, 아프다는 느낌이 났을 뿐 그 남자가 구체적으로 내게 무슨 행동을 했고, 어느 손으로 어디를 만졌고 하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해달라는 경찰의 계속된 질문에 잘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 조사를 받고 나왔다. 같이 앉아 있던 변호사는 내편이라고 하길래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저도 처벌을 받게 되나요?" 


 변호사는 말했다. "민지 씨는 미성년자라서 처벌을 받지는 않아요. 그런데 차 안에서 일어난 일은 피해자 분 인생에서 정말 큰 일이에요. 지금은 아무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살면서 피해자 분은 크게 후회할 수도 있고 인생에 큰 상처로 남을 수 있어요. 피해자 분은 소중한 존재인데 겨우 2만 원과 와이파이를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아무 남자와 만나 아무렇게나 민지 씨 몸을 허락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채팅어플에는 나쁜 어른들이 가득해요. 민지 씨는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면 이게 얼마나 나쁜 일이었는지 알게 될 거고, 나중에 정말 후회할 수 있어요.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정말 이제 그런 채팅어플은 다 지우고 사용하지 마세요. 민지 씨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 소영이라는 친구분과는 당분간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아빠가 싫겠지만 그래도 민지 씨를 정말 생각하는 건 아빠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리고 언제든지 사건에 대해서 궁금하거나 물어볼 게 있으면 제 핸드폰으로 꼭 연락 주세요. 절대 가출하지 말고요. 나중에 정말 후회해요." 그 변호사는 정말로 친동생을 보는 듯한 걱정스러운 얼굴로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말했다. 


나는 그때는 그 변호사의 말을 귀담아들을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또다시 이런 일로 경찰서에 오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어플로 남자를 만나 돈을 받거나 하는 일은 안 하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경찰은 소영이가 어디 있는지 아냐고 물었고, 나는 소영이에게 페메를 보내서 알려주겠다고 하고, 길었던 경찰서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 안에서 아빠는 소리를 지르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아빠는 옆에 앉아 있는 나를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집에 들어가기 전 아빠는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고 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순대국밥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내가 핸드폰을 보고 있던 그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아빠는 울지 말고 얼른 밥을 먹으라고 했다. 한번 터진 눈물은 잘 참아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눈물과 순대국밥을 함께 말아먹고는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했다. 아무리 샤워를 해도, 그 남자의 차 안에서 나던, 그 냄새가 나에게 나는 것 같아서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까 경찰서에서 내게 절실한 눈빛으로 다정히 말해 주었던 변호사의 명함을 만지작 거려 보았다. 어쩌면 그 변호사에게 도와달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를 도울 수는 있는 걸까?


오늘도 수많은 아이들이  돈이 필요해서, 잠잘 곳이 필요해서 자신의 성을 채팅 앱을 통해 손쉽게 팔고 있다. 아이들은 그런 식의 성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그 순간에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행동 패턴이 습관이 될 때 청소년들은 가출을 결심한다. 자신의 행위가 미성년자 성매수 행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인지는 당연히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직감적으로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소녀들 둘셋이 모이고, 이 소녀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 둘셋이 모이면 소위 말하는 가출팸을 결성하게 된다. 거기서 미성년자의 성매매행위는 보다 조직적이고 착취적이며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조직적인 미성년자 성매수가 있을때 소녀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소위 미성년자 성매수자를 구해오는 쪽에서 빈번하게 성폭력을 자행한다.  아이들은 미성년자 성매매의 피해자이자, 강간 등의 피해자가 된다. 그러한 성폭력으로 인하여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더욱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나쁜 순환은 반복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채팅 어플을 가입하는 것은 매우 쉽고, 아이들을 현혹하는 채팅어플은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어플을 제재하는 조치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우선 아이들에게 쉽게 성을 팔 수 있도록 조장하는 이러한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법적 제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의 몸과 나아가서 자신의 성에 대한 향유가 돈 몇만 원과 모텔에서의 숙박, 혹은 담배 몇 갑으로 치환될 만큼 가볍고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진지한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어플을 이용하는 어른들의 심리에 대하여 아이들에게 구제척이고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하며 이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형법상 범죄 행위임에 대하여 충분히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같은 아이들의 마음과 자신의 성적 결정권에 대하여 올바로 고민하고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미숙한 미성년자들을 채팅으로 꾀어내어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충족하는 데에 이용하는 범죄자들에 대한 보다 철저한 처벌과 재발방지가 필요할 것이다. 


겨우 아이 티를 벗은 중학생 1, 2학년들. 아이들은 자라나는 나무 같아서, 한번 방향이 잘못되어 버리면 올곧게 자랄 수 없게 되어 버리기 쉽다. 후에 어른이 되어 자신이 돈 몇 푼에 판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지나버린 후여서, 어쩌면 평생 고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지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스스로 그런 길을 택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어두운 골목에서 자신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고만 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법적으로 미성년자 성매매의 당사자인 미성년자들은 성범죄 피해자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없게 되었지만, 어쩌면 그 아이들에게도 정말 법과 사회와 어른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희들은 소중하고, 너희의 몸은 귀중하고, 너희들의 성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알려주어야 한다. 

더 이상 채팅앱에서 처음 본 아저씨에게 데이터를 받고, 친구와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첫 성경험을 하는 '민지'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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