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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Nov 28. 2021

21년 지기 친구의 결혼

결혼식 때 하지 못한 그 말들

    "지민아, 이번 달 셋째 주에 주말에 시간됨?" 6월 태양빛이 아주 뜨거운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아스팔트가 초콜릿마냥 녹는다고 해도 믿을 법한 더위였다. 뭔가 이상했다. 우리가 메시지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때가 솔직히 그다지 많지가 않다. 이쯤 오래된 이 친구 정도면 약속을 잡을 때, 그냥 "ㅇㅇ일 간만에 한 잔 ㄱㄱ?" 이거나 심지어는 더 짧게 "oo일 ㄱㄱ?" 이렇게 보낼 때가 대부분이다.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왜 이렇게 메시지가 느끼하지?


    뒤로 나오는 메시지는 더 충격이었다. 예전에 만난 소개팅 상대랑 잘돼서 결혼을 하겠단다. '너 oo씨랑 1월에 만났잖아. 근데 벌써?' 이 녀석답게 긴 말 않고. '어, 아무래도 너한테는 보여줘야 할 거 같아서.' 허허... 누군가가 토르의 묠니르로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때린 느낌이었다. 그렇게나 사람보는 눈이 까다로워서 연애 할 때마다 힘들어하던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이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얼굴이 창백하다 싶은 정도로 하얬고(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워낙 피부가 약해서 햇빛에 오래 있으면 다음날 피부가 뒤집어지는 체질이라 밖에 잘 안 돌아다녔다고, 지금도 여전히 그 하얀 얼굴 그대로다), 부모님이 교사였던 탓에 초등학교 5학년생이 보기에도 이미 어른스러웠다. 어울리는 단어를 꼽아보자면 '스탠다드' '모범' '선함'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당시에 나는... 안타깝지만 선함, 모범, 규칙보다는 자유를 원하고, 적당히 감수성이 있고, 적당히 놀러다니는 전형적인 '중2병'을 향해 달려나가는 초5학년 이었다. 나 역시도 부모님의 영향을, 특히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스티비 원더, 퀸, 마이클 잭슨, 여행스케치,김동률부터 그때 당시에 요즘 노래였던 god 노래까지 무슨 cd가게 마냥 cd를 사다놓은 아버지 덕에 속내용은 없이  '겉멋'에 잔뜩 취해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훗날 mp3라는 혁명적인 기계가 나오면서 많이 처분을 하시기는 했는데,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이렇게 성격상 매우 다른 두 사람이 만나면 둘 중에 하나다. 정말 안 맞거나, 서로를 보완하거나. 다행히 우리는 후자였고 그렇게 21년을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며 살았다. 가끔 난 내가 길을 잃을 때 이 녀석을 봤다. 적어도 이 녀석이 가는 길은 남들이 말하는 '보편적이고 안전한' 길이었으니, 늘 애매하면 이 녀석이 뭘 하는지 보고 있으면 답이 나오곤 했다. 간혹, 21년 지난 이 친구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냐 묻는다면 난 이 친구를 '베이스캠프'같은 친구라고 말을 했다. 생이란 산을 오르다가 막히면 일단 돌아갈 수 있는 친구.  


    반대로 이 친구는 나한테서 '자유함, 유연성'을 보았나보다. 이 친구는 일단 앞서 말했듯 정말 모범적인 생활을 했기에, 이런 것들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 어렸을 때 얘기를 할 때 이 친구가 늘 이야기하는 장면이 우리집에 와서 mp3파일로 노래를 받았던 장면이다. 하기사, 이 친구네서 나는 처음으로 오페라 음악들을 들었고, 이 친구 아버지의 차에 나오던 음악 중에 매일 듣던 노래는 사라 브라이트만과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Time to say goodbye'였으니 아마 각종 가요(하필이면 이때가 아마 드렁큰 타이거에 푹 빠져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와 메탈리카, 본조비가 들어있던 내 mp3가 이 친구한테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안정감을 부러워하던 나는 안정감만큼은 끝판왕인 공무원이 되었고, 나의 자유함을 부러워하던 이 녀석은 자기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면서 개발자의 길에 뛰어들었다.     


     우리의 21년을 아주 짧게 요약을 하였는데, 다시 결혼식 얘기로 돌아가보자. 이 철저한 원칙주의 깐깐한 친구놈이 결혼을 과연 누구랑 하려고 할까? 이제까지 어떤 여자친구도 나한테 보여주기 전에 다 헤어졌던, 1년이상 연애를 한 적이 없던 녀석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걸까? 여러가지 호기심과 너무 갑작스런 소식 때문에 생긴 이상한 불안감을 안고, 이제는 친구 와이프라고 불러야 할 oo씨를 처음 본 순간, 왜 어렸을적 이 녀석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정말 무난한 성격과 보편, 원칙, 스탠다드함. 이 친구의 여자버전이 있다면 이 사람일 거 같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거기에 적당한 털털함과 상냥함까지. oo씨는 아마 내가 자기한테 '이 친구와 행복하게 사실 수 있으신 분 같아요' 라고 한 이 말이 내가 그 분한테 할 수 있는 말 중에 가장 큰 칭찬이라는 것을 아마 모를 것이다. 아마 나중에 좀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21. 10. 23. 친구는 결혼을 했고, 나는 사회를 봤다. 오랜만에 보는 사회라 떨려서 발음은 조금 씹었지만(그래서 미안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친구를 보냈다. 마지막  사람의 행진 때쯤에서야 대본에서 눈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친구는 본인의 아내가  사람과, 본인이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친 사람 사이에  있었다. 마지막 신랑/신부의 행진이 결혼식의 마지막 장면이지만, 새로운 시작을 향한 첫걸음에 축복을 담았다. 신랑/신부의 앞날에 행복만 있기를 바란다는 말은 식상했다. 삶에 행복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다만, 나의 오랜 벗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녀석의 앞날에 행복만 있지는 않다면, 오늘처럼 서로를 부여잡고 있을  손이,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오늘 축하해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손들이 그들과 함께하기를 조용히 소망하였다. 그렇게, 나의 21 지기 친구를 보내는 10월의 마지막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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