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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Nov 09. 2022

누가, 어느 청으로 가야할까?

   인사 시즌이 슬슬 다가오고 있다. 한번 더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나는 그런 시간이 올 것이다. 이번에는 승진을 하게 될 것 같다. 막상 3년이나 있던 청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느낌이 다르다. 처음 통영에서 1년을 보내고 나왔을 때는 무언가 먹먹하고 고향을 떠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인사에서 느끼는 감정은 조금 정제된 감정이다. 처음엔 시원섭섭함이었다가 지금은 뭐랄까, 할 일을 다 마치고 지난 3년을 뒤돌아보며 내가 여기서 뭘 했나 곱씹으며 고요하게 ‘다음’ 일어날 일을 기다리는, 수도승의 느낌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잠깐만, 다음? 생각해보니 초임 때는 그 ‘다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유라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서툴고, 서툴러서 늘 조금씩 삐그덕거리는 것이 어쩔 수 없었던 그때는 이런 거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가? 처음으로 나의 다음을 생각해보니 막상 어디서부터 고민을 해야 할지 시작점을 못 찾았다. 다음이라는 거를 생각할 때 뭐부터 생각을 해야 하지? 옆자리 신입직원과 후배의 대화가 들렸다. ‘선배님, 정발(정식발령) 3개 희망청 쓰라고 할 때, 그러면 어디를 써야 좋아요?’ 이거네, 지금 내가 생각해야 할 것.

     

   사실 저 대화를 들으면서, 내가 저 질문을 들었으면 어떻게 대화를 나눴을까 생각했다. 처음 묻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수사관님은 어떤 사람이에요? 음... 쉽게 생각하면 뭐가 가장 중요해요? 집에서 독립하여 멀리 떨어지는거? 출근소요시간? 빠른 승진? 업무 강도?’ 이게 가볍게 말하면 성향으로 정리가 되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직업에 대한 나 자신과 직장에 대한 ‘가치관’과도 연관이 되기에 한번 정도는 나도 정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본진은 어디인가, 내가 어디에 있을 때 편하고, 나로 존재할 수 있는가? (내적)

    나는 그래도 나름 동네를 많이 옮겨다닌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태어난 것은 부천이고 이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잠시 안산에도 살았으며, 대학은 인천에서 나왔다. 그리고 부모님의 귀농으로 사실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에는 강원도에서 살았다. 첫 발령지인 통영도 나름 정을 붙여가며 살았다. 서울, 강원, 부천, 인천, 안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영까지. 살아보지 못한 곳은 국내에서 충청, 전라, 제주 정도일 것 같다. 이렇게 돌아다닌 곳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에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늘 흥미가 있다는 것은 내가 국가직을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이고 나의 강점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의외로 수도권 사람들 중에는 지방으로 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 꽤나 된다는 것이다.) 익숙한 환경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주는 자극은 짜릿하다.


    다만, 이제는 '너 언제까지 그렇게 싸다닐래? 너도 내년이면 35이야.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서울도 좋지만, 이제는 슬슬 내가 뿌리를 내릴 곳이 어딘지를 정할 때인 듯도 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1차 가안이 나왔다. (사실 더 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편의상 서울 고등검찰청 산하로만 추려보았다.)

- 서울 동부(현재 주거지 기준으로 가장 가깝다. 업무량도 지금 있는 곳보다 적을 거다.)

- 부천 (고향. 이 두 글자면 많은 것이 설명된다.)

- 원주(집이 가깝다. 사람도 적다. 서울보다 살기도 솔직히 좋다. 근처에 산도 있고 하니 좋을 거 같다.)

- 강릉(원주와 같은 이유, 심지어 거리를 계산해보니 우리집은 원주지청과 강릉지청 딱 가운데에 있다. )

- 인천(여기는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다. 아무래도 부천-인천에서 학교를 다 나오다 보니 대부분의 친구들이 여기에 있다.)  


   아마, 이렇게 희망지가 한 지역에 몰려있지 않고 중구난방인 사람이 많지 않을 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 어느 정도 못 살 곳은 아니었는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나름 괜찮은 비율 3:2(서울 사람이 들으면 부천/인천은 수도권 아니라는 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로 나눠봤다. 아마 6개를 써보라고 하면 강원도에서 하나를 더 고르거나, 남양주 등 비수도권으로 하나를 더 쓰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주변에 의견을 물어보면 다들 그런 질문을 한다. '중앙인데 서울에 붙어있지 굳이 왜 나가려고 하냐?' 통영과 서울이라는 분위기 상으로 양 극단의 도시에서 근무해본 결과, 서울에 남느냐 아니면 지방으로 가느냐를 판단할 때, 세가지가 가장 생각을 많이 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주변을 봐도 세가지가 수도권에 있느냐 떠나느냐를 굉장히 크게 가른다.

 

  1. 나는 문화생활, 공연/전시 등을 즐기는 편인가? (=도시의 인프라가 중요한가?)

  2. 나는 외부와의 단절을 즐기는 편인가? 못 견디는 편인가?

  3.(이건... 나는 아니고 가정이 있으신 분들 한정) 아이들의 학교와 학원 등 아이들을 케어 가능한 환경 유무


   3번은 현재는 고려사항이 아니니 제쳐두고, 1번부터 생각을 해보자. 나는 도시의 축제/공연 등을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문화적 인프라가 그렇게까지 필요한 사람은 아니다. 이게 없다고 막 스트레스가 올라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서울에 있으면서 봤던 공연/전시의 수와 통영 음악당이나 여타 다른 곳을 돌면서 봤던 공연/전시의 수 등은 당연히 서울이 많았지만, 그렇게까지 많은 차이가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서울은 공연과 전시의 종류가 매우 매우 다양하여 새로운 자극이라는 측면에선 압도적으로 즐길거리가 많았다. 이걸 아마 서울 밖으로 나가면 볼 수 없으리라는 아쉬움이 있다. 대신 교환조건으로 멋있는 자연풍경을 얻게 된다. 굳이 지방을 가야 한다면 그래서 난 아예 바닷가나 산으로 가고자 한다.   


   2번은 우리 가족이 귀농을 하고 한 2~3년 정도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다. 어느 사회든 외부인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손님'으로 환대하지만, 막상 자기들의 일원이 되고자 할 때는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쉬운 말로 '텃세'다. 이게 내가 통영을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한 몇 년의 버팀이 있어야 그제야 이 친구가 뜨내기가 아닌 진지하게 여기에 자리를 잡고 살 의지가 있음을 인정해준다. 즉, 지방에 가면 새로운 인맥을 찾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멀리 있는 내 인맥을 만날 수도 없는 애매한 붕 뜬 상태를 견뎌야 한다. 심지어 통영에 있을 때는 차도 없었으니, 그 단절감과 답답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차가 있는 지금도 이에 대한 부담이 조금은 있는데, 그때는 정말 어떻게 버텼나 싶다.


   이 단절감을 해결하기 위해 일단 사람이 있는 곳으로 좀 나가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선택한 서울살이 3년. 처음에는 좋았다. 새로운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느끼는 안정감. 살다 만나는 공무원들이 아닌 다른 직업의 다양한 사람들. 적어도 밖에 나와서 처음 보는 풍경이 아무도 없는 바닷가가 아니라는 점 등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바뀐 환경에 조금씩 적응하였다. 재미있었다. 나의 단절감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라 굳게 믿었다.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되었다. 나의 이 단절감/외로움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사람이 많고 적음에 있지 않음을 간과했다는 것을. 서울은 사람이 워낙 많아 사실 개인에게 친절한 도시가 아니다. 물적으로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도시다. 동시에 너무나도 바쁘고 부산스러운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한 바쁨은 사람들의 시야를 좁힌다. 개개인은 서로 인스타로 '연결'되어있으나 '연대'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이제야 과거의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되는 사회로 바뀌었다고 환영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과도한' 사생활이 보장이 한 사람 한 사람을 고립시킨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재미는 있었지만 돌고 돌아 제자리. 지방에는 진짜 사람이 없어서 사람이 고팠다면, 여기서는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같은 고독함과 외로움을 겪어야 한다면, 서울을 내가 고집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하물며, 고향도, 현재 거주지가 아닌 이곳에서 나는 나로 있을 수 있을까?


 내가 회사에 원하는 바는 무엇인가? (외적)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일단 내적 요인만 놓고 보면 서울보다는 지방이 완승이라는 생각으로 정리된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글로 정리하면서까지 서울을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통영에서의 경험이 만들어낸 괴물이 있다. 물론 지청의 입장에서는 내가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이 너의 편견이라고, 억울하다 말할 수도 있겠다. 그곳의 구성원들은 너의 경험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본 지청은 치명적인 단점이 세가지 있다.


1. 사람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 소수의 사람들(보통 토박이) 위주로 청이 돌아가면서 텃새를 비롯한 사람들 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 그 지역의 대표 학교 출신들까지 있다면, 더더욱 문제가 된다.


2. 업무가 단순하고 적다, 얼핏 들으면 장점이긴 하지만, 한 업무를 1년 동안 하면서 변화할 일이 없다는 것은 금방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고, 성장이 멈추게 하고, 결국은 사람을 망친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 나오는 유명한 너트 조이는 장면처럼 하루하루 똑같이 살다 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싶다.


3. 안타깝게도, 안 그래도 보수적인 조직문화가 지청으로 가는 순간 정도가 배는 올라간다. 앞서 말한 1번과 콜라보가 되면서 과한 회식, 낙인찍기, 이게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드는 업무분장 등 안 좋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1~3이 큰 청이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나마 규모가 있는 청들은 이 세가지가 많이 개선되어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특히 1번은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사실상 많이 희석이 되어버린 면이 많다.


  나에게 가장 마음속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2번이다. 사실 1과 3은 다행히 어지간히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해서 그런지 저 모습이 익숙하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해를 한다는 거지, 저게 옳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도 어느 정도 있다. 나름 저 안에서 살아남아도 봤고, 저 안에 잘 녹아들어 적응을 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한없이 생활이 편해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제일 문제는 2번이다. 이게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끝까지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을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한없이 편해지려면 사실 다 때려치우고 강원도로 가버리는 것이 가장 좋다. 다만 '저것이 옳은가? 나는 결국 그럼 도망가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매우 어렵다.


  이외에도 사실 글이 늘어질까 싶어서 언급을 못했지만 당직의 빈도 문제(작은 청일 수록, 당직 전담반이 존재하지 않아  달에 4~5번씩 당직을 서는 .  작으면 일명 '퐁당당'이라고 부르는 3일에 한번 당직 등이 있다.), 교통편, 관사 상태  부수적으로 외적 요인을 고려할 것이 많다. 다행히,  다섯 곳은 그런 면에서는 당직을 제외하고는  차이가 없다. 그리고 어차피 인사라는 것이 내가 가고 싶다고  보내주는 것도 아닌데 김칫국을  사발 거하게 마신  아닌가 싶어 허무하기도 하다. 마음이 언제 바껴서 생뚱맞게 저 5개 청이 뒤집힐 수도 있다. 그래도 나름 이렇게 줄글로 남겨놓지 않을 때보다 생각이 선명해졌다. 잡생각을 사라지게 했다는 것에서 이미 이 글의 의미는 찾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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