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시간이 남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갔다. 평소처럼 트레드밀에 올라 걷고 있었는데, 옆에서 한 대여섯 살쯤 어리지 않을까 싶은 어린 여성분이 트레드밀에 오르더니 찰랑찰랑 머리를 휘날리기 시작했다. 딱 봐도 헬스장 고수의 느낌이 드는 자세가 심상치 않았다. 안돼, 그거 아니야. 너 내일도 농구 뛰어야 해. 정신 차려 인마. 나는 재빨리 나를 내리눌렀다. 이놈에 승부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끓어오른다.
남자들은 아무데서나 대책 없는 경쟁심을 드러내곤 한다. 나는 자중하며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집중했다. 10분쯤 지났을까, 나는 레벨 4에서 5로 한 단계 속도를 올렸다. 그런데 옆에 그녀도 레벨을 한 단계 더 올리고는 경쾌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어? 이것 봐라? 우연이지? 그치?' 나는 슬쩍 6으로 레벨을 올려봤다. 그러자마자 그녀도 레벨을 올리는 거였다. '한번 해보자는 건가?' 질세라 나도 7로 올리고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슬슬 레벨을 하나하나 올리더니, 바람을 가르는 것이 느껴지는 속도까지 우리는 달렸다.
이 헬스장을 다닌 지 오래됐으니 혹시 아는 사람인가? 나는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본 사람이 맞았다. 왜 이 사람이 나를 자극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옆 트레드밀에 스탑버튼을 누르고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하고 묻고 싶었으나, 트레드밀은 나에게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슬슬 스텝이 꼬이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릎이 슬슬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이 이상한 유산소 운동을 했을까? 1분만 더하면 진짜 죽지 않을까? 싶은 순간에 옆에서 세상 반가운 스탑버튼 누르는 소리가 들렀다. 버텼다는 뿌듯함은 10초도 가지 않았다. 쉬지도 않고 바로 다음 운동으로 넘어가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1달만... 1달만 뒤에 보자. 반드시 이긴다. 의욕과다는 무리한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날의 무리한 운동으로 나는 며칠 동안 근육통을 앓았다. 트레이너는 도대체 운동을 뭘 어떻게 했길래 하루이틀 사이에 몸이 이렇게 되냐고 물었다. 몸이 수분이 다 빠진 오징어 마냥 뻣뻣해서 PT 한 번을 몸을 푸는데 날렸다. 아, 그리고 뒤에 알게 됐던 그녀의 정체는 새로 온 트레이너였다. 내가 미쳤지. 그녀는 오늘도 또 어느 모지리를 골라 참담한 굴욕을 안겨주고 있지 않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경쟁심은 열등감을 부르고 비교하는 습관은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해친다.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그날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았다면 나 혼자 너무 수치스러워서 그분을 피하며 다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날이 첫날이라고 하셨으니 어쩌면 오히려 더 친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PT 하루를 재활에 버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것을 놓쳐버렸다. 그 누구와 비교하거나 겨루지 않는 것. 단순하지만 행복의 1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