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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Sep 22. 2024

9. 서피랑에서 만난 '좋은 글'과 '잘 쓴 글'

   맛집에 낚이는 경험은 이제 우리 세대에서는 흔한 일이다. 블로그/인스타에 나온 화려한 사진에 혹하여 들어갔다가 실패한 경험. 맛집이라더니 서비스도 위생도 불량하고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가게, 개운치 않은 찝찝함과 씁쓸함, 심하면 화를 얻고 돌아갔던 기억.


    글에도 자주 낚시를 당한다. 제목이 흥미로워서 클릭했는데, 내용이랄 것이 별로 없다. 매번 농락당하면서도 본능이란 것이 참 거스르기가 어려워서 자극적인 제목만 보면 파블로프의 개마냥 반사적으로 클릭하게 된다. 얄팍한 제목 낚시와 부실한 내용으로 인기를 끌어보려는 기사나 sns글을 보면 세상이 왜 이렇게 가볍고 하찮은 곳으로 변해가는지 슬프고 가여운 마음이 든다. 심지어 이런 말을 하여 꼰대같다는 소리를 들으면, 오랜만에 진하디 진한 빨간 뚜껑 진로를 한손에 들고 병나발을 불며 집으로 들어가는 상상도 한다.


    글이나 영상이 조회수를 얼마나 올렸는지, 구독자 수를 얼마나 확보했는지로 요즘은 글의 가치를 평가 받는다. 구독자 수나 조회수가 많은 '핫한' 글들이 메인 화면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메인 화면에 노출이 되면 다시 조회수가 급격하게 늘게된다. 이런 이유로 요즘 숨고나 클래스 101에서 블로그 글쓰기를 강의 하는 사람들의 메인 주제는 사실 조회수를 늘리는 팁이라든지, 속되게 말해 '어그로가 잘 끌리는 글을 쓰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듯하다. 자칫 이런 성급한 인정 욕구와 얄팍한 테크닉에 매달리는 글이 우리를 얕은 인간들로 만들까 고민하게 된다. 정말 본질적인 글쓰는 능력은 오히려 퇴화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결국 오래지 않아 문을 닫게 될 낚시성 맛집 신세를 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글이 읽히기를 바라는 것, 잘 쓴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 것,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욕망이고 이걸 탓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주말을 바쳐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 근본적으로는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라는 욕구에서 시작될 것이다. 문제는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어떤 욕망은 추악하고, 어떤 욕망은 아름답다. 그 바람과 욕망에 투자한 시간과 열정, 그 욕망을 구체화해가는 과정이 아마 추악함과 아름다움을 가르는 차이가 아닐까 싶다.


     이런 비슷한 얘기를 할 때면 늘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통영에는 여러 관광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관광지로 동피랑/서피랑이 있다. (비교적 요즘 생긴 디피랑은 안 가봤으므로, 일단 전통의 강호 두 곳만 놓겠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서피랑을 좋아한다. 지자체에서 할아버지/할머님들 대상으로 한글교육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서피랑 입구에는 아주 아름다운 박경리 선생님의 시와 소설에서 발췌한 문장들이 있지만, 막상 내 머리속에 남는 것은 서피랑 안쪽에 조그맣게 쓴 어떤 할머님께서 쓰신 시였다.


내 기분

이웃집 할맹구가
가방 들고 학교 간다고 놀린다
지는 이름도 못 쓰면서
나는 이름도 쓸 줄 알고
버스도 안 물어 보고탄다
이기분 니는 모르제


    이 시는 '잘 쓴 글' 이라고 보긴 좀 그렇다. 맞춤법도 이상한 곳이 보이고, 인생의 깨달음을 담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막상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서피랑에 있던 많은 글들 중에서 이 글만 기억한다. 꾸밈도 기교도 없지만, 베시시 미소가 지어지는 글이다. 할머님이 느끼셨을 배움에 대한 순수한 기쁨이 여기에 있다. 반듯하고 미끈한 문장이 아니어도 진심이 담긴 이 시에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간다.


     요즘은 자기 PR의 시대라고 한다.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에게 전혀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난 이 두 단어가 주는 어감이 '그것이 비록 속은 알차지 않더라도, 일단 얼굴에 철판깔고 겉에만 좀 잘 꾸며봐'라는 말로 들려서 여전히 불편하다. 특히나 글을 그렇게 하면 할수록 비루해지는듯하다.


   진심은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읽힌다고 여전히 순진하게 믿는다. 자신이 아끼는 것을 내놓을 때 사람들은 반응한다.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닐지라도 누군가가 시간과 정성을 쏟아서 만든 결과물임을 느낀다면, 그것을 가치 있다고 여긴다. 그런 가치나 의미가 보일 때 읽는 사람들은 '좋은 글'이란 말로 뭉뚱그려서 인정한다. 좋은 글의 힘은 본문에서 나온다. 본문의 알맹이가 진짜 실력이다. 본문은 테크닉의 영역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이다. 삶에 내용이 없으면 본문은 채워지지 않는다.


   소중한 것을 내놓아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내놓을 것이 마땅치 않다면, 내놓을 만해질 때까지 준비하며 기다리면 될 일이다. 모든 작가들은 글을 자기 자식같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 내놓는 것은 글이 아니라 내가 준비하고 가꿔온 인생 하나인 것이다. 그 인생의 경과를 진정성이라고 하고, 진정성은 자성이 있어서 사람을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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