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꽃'이라는 순 우리말이 있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전에 한두 방울씩 후드득 꽃송이처럼 떨어진다고 해서 비꽃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이 말을 쓰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말은 처음 내는 길을 의미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비꽃이 먼저 길을 내야 퍼붓는 호우든 가랑비든 소나기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니.
어제는 장마를 연상케 할 정도로 비가 한동안 안 오더니 아주 시원하게 내렸다. 밤늦게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번호가 핸드폰에 떴다. 공직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다니던 회사에 아직도 다니고 있는 후배다. 혀가 약간 꼬인 제법 취한 목소리에 뒤쪽이 시끌한 것을 보니, 한창 술자리가 진행중인 모양이다.
"선배임 접니다... (딸꾹) 밤늦게 죄송함돠. 예전 팀 사람들이랑 술 한잔 하고 있는데 선배님 생각나서 많이 망설이다가 감히 전화를 드렸습니다."
참 오래되었고, 그렇기에 소중한 인연이다. 내 나름대로는 격의 없고 친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엄밀히 말하면 퇴사자인 나를 여전히 '선배'라고 부르며 '망설이다가 감히'라는 말을 하는 이 친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또구나. 얘가 이러면 다른 애들은 오죽할까. 늘 그랬다. 나는 아무리 친한 친구와 있을 때도 일정한 거리감을 무의식적으로 둔다. 남 앞에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늘 어떤 사회에 들어가도 완전히 섞이지 못했다. 이 거리감은 그러니까 내가 만든 거리감이다. 모든 곳에서 나의 이미지는 '예의는 바르지만 막상 친해지기는 어려운 타입' 이었다.
나는 태어나기를, 고요하고 단정한 것에 끌리는 성정으로 태어났나보다. 물고기였다면 아마도 맑고 서늘한 물에서나 산다는 산천어 같은 녀석이 아닐까 싶다. 그런 나를 후배들이 친밀하게 대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자신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내보여도 좋을만큼 막역하고 도량 넓은 선배는 내 역할이 아니었다. 그런 역할은 소위 '인싸' 선배들의 몫이지 내 몫은 아니었다. 꼿꼿한 선비나 험준한 산 속에 사는 지고한 스님들은 후세 사람들에게나 멋지지 동시대에 사람들에게는 얼마가 꼬장하고 사회 부적응자로 보였을까?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누군가 나를 타박하는 소리 같아서 마음이 아렸다. 아주 매운 마늘과 고추를 한 입에 삼킨 것 같았다.
사실 그 친구를 처음에 뽑은 것은 나였다. 작은 회사였고, 너랑 같이 손발을 맞출 사람은 네가 봐야겠지 않냐는 윗선의 지시로 들어간 면접 자리에서 그를 처음 봤다. 그 이후의 시간은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피드백은 치열했고 모진 말도 서로에게 많이 했지만, 뒤돌아서면 서로 뒤끝이 없어 시간이 지나고 보니 죽이 잘 맞는 동생 하나 얻은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 친구의 비꽃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잠시 들었다.
비꽃은 오늘처럼 비가 퍼붓는 날에는 흔적도 없이 잊힌다.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고 삶의 눅눅한 단면이다. 내가 자처한 외로움을, 내 밑바닥을 안다는듯 가끔 이렇게 전화를 해주는 후배들을 보면 고마운 마음이다. 처음 그 때를 나는 잊지 않았다고, 내게 말하는 그들이 있어서 그나마 그 모든 노력과 수고가 헛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내 밑바닥에 깊게 새겨진 상처는 그럴때마다 뭉클하게 뜨거워졌다. 비꽃을 기억해 준 것만도 고마워 나는 살짝 창을 열어 빗소리를 들으며, 선물로 받았으나 먹지 못하고 있던 냉장고 속 막걸리를 꺼내 대충대충 부침가루랑 남은 야채들을 버무려 전을 부쳐 함께 먹었다. 살짝 열어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빗소리를 들이고 먹는 하얗고 뽀얀 막걸리는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도 맛이 좋았다. 다음날 아침 후배에게는 숙취해소제 기프티콘을 찾아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단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