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은 체력이고, 배려는 지능이다.

by MinChive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정함'과 '배려'라는 단어는 언뜻 구름처럼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햇살처럼 따스한 덕목처럼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길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 짧은 삶에서 마주한 거센 풍파를 몇 번 맞다 보니 깨닫게 되는 서늘한 진실이 하나 있다. 누군가에게 끝까지 다정한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성품이 고운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다정함은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니다. 다정함은 오히려 매일 조금씩 차오르고 동시에 매 순간 소모되는 에너지에 가깝다. 쉼 없이 이어지는 야근 끝에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던 밤, 주머니 속에서 울리던 부모님의 전화벨 소리는 위로가 아니라 무거운 짐이 하나 더 얹어지는 느낌이다.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다정한 물음에 응답할 한마디의 여유조차 내게는 남지 않았기에, 그게 설령 내 가족일지라도 그들의 마음을 받아낼 심리적인 평수가 단 한 뼘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그리도 짜증섞인 말을 뱉었다. 결국 다정함이란, 내가 나를 온전히 지탱하고 남은 여분의 에너지를 기꺼이 내어주는 행위다.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억지로 쥐어짜는 다정함은 결국 옅은 짜증이나 서운함으로 보통 변질되기 마련이었다.


배려 또한 마음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정교한 조각같다. 우리는 흔히 '좋은 마음으로 그랬다'는 말로 서툰 호의를 정당화하곤 하지만, 때때로 무지한 호의는 폭력보다 아플 때가 있다. 특히나 이제는 좀 사회 초년생 티를 좀 벗은 나이에 이제는 어느 정도 가운데 위치에 선 나는 요즘 이 배려에 대해서 참 고민이 많다. 나는 나대로 나름 배려를 해준다고 하는게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 날의 이야기를 후배들의 관점으로 풀었을 때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지극히 '내 중심적인' 판단은 가끔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점심식사 자리를, 어떤 누군가에게는 의도치 않은 열심을 내게 하기도 한다. 진정한 배려는 상대의 침묵 속에서 갈증을 읽어내고, 그가 정녕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고도의 지적 활동이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는 상상력과 그 상상을 바탕으로 가장 적절한 행동으로 가는 능력, 굉장히 머리를 써야 하는 '지능'의 영역이다. 지능이 결여된 배려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실없는 호의에 불과하다.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은, 내 몸의 근육을 단단히 키워 다정함을 지켜낼 에너지를 비축하는 일이며, 동시에 상대의 마음이라는 지도를 정밀하게 읽어내는 지혜를 닦는 일이다. 지치지 않는 몸으로 곁을 지키고, 명민한 눈으로 상대의 그늘을 살피는 것. 그렇게 체력으로 버티고 지능으로 헤아리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타인에게 건낼 수 있는 가장 성숙한 형태의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퇴근길에 오른다. 나의 다정함은 안녕한가? 오늘 나의 배려는 어디 불시착하지 않고 제대로 상대의 마음 속에 안착했나? 오늘도 소망한다.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다정함이라는 귀한 연료가 떨어지지 않기를, 배려라는 정교한 도구가 무뎌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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