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버텼다. 이번 3일간 정말 미칠듯한 더위가 이어지는 중에도 (강원도가 이러면 다른 데는 말 다했네), 벌레가 방충망에 헤딩을 하는 와중에도 '평소처럼' 앉아 있으려고 애를 많이 썼다. 글을 쓰는 지금도 물론 방충망을 뚫을 듯이 나방들이 달려들고 있다. 만화 '벅스 라이프' 촬영지가 있다면 여기가 거기다. 오늘만큼은 이 지긋지긋한 벌레들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슬럼프 끝자락인 2017.7.22 일기 中-
한눈에 봐도 저 일기는 제정신에 쓴 일기는 아니죠? 그렇습니다. 보통 슬럼프를 넘기는 그 순간에 여러분은 제정신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무척이나 힘들고,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감이 오지 않죠. 다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설령 슬럼프라도 공부의 끈을 놓치지 않고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만 해도 어느 정도 슬럼프를 극복하는 키를 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번 주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겪는 슬럼프의 원인에 대해서 다뤘고, 오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해결책에 대해서 한번 써 보려고 합니다. 말은 거창하게 슬럼프 해결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공부의 끈을 잡고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하시든, 혹은 본인이 더 좋은 방법을 개발하시든지 해서 그 끈을 꼭 놓지 말아 주세요.
가장 안전한 슬럼프 극복 방법이죠, 책상에서 멍을 때리더라도. 스톱워치 들고 일단 앉으세요. 멍한 상태에 있는 걸 과소평가하시는 분들 있는데, 뇌과학적으로는 굉장히 이것도 중요한 과정이라고 하네요. (참고자료 : https://player.vimeo.com/video/226606266) 저도 이 방법을 썼을 때 '일단 10시간 앉아 있자. 10시간 중에 앉아만 있어도 5시간은 하겠지.'라는 마인드로 했고, 실제로 슬럼프 때는 평소 퍼포먼스의 60~70퍼센트 정도만 공부해도 성공적이라고들 합니다. 그렇게 앉아서 순공시간을 스톱워치로 재면서 천천히 늘려갑니다. 하루에 30분이든 1시간이든 상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더 낫다고 느껴질 정도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첨언을 하면, '최대한 전기를 쓰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지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 생각을 하시면 일단 스탠드, 스톱워치.....는 필요하니까 내버려두고, 스마트폰, 노트북, 전자사전 등등 여타 딴짓을 할 거의 모든 것들을 치우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공부환경이 조성되지요.
그렇게 앉아도 영 진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인강을 수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도 이 방법을 꽤나 쏠쏠하게 썼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뭔가 내가 능동적으로 해야 하는 공부와 수동적으로 일단 듣기만 하는 공부는 필요로 하는 에너지와 집중력 정도가 다릅니다. 여러분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 수업 7교시 + 보충수업 + 학원 콤보를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그것만 해도 10시간은 거뜬히 넘는 시간인데? 일방적으로 '수업을 듣는' 입장이어서 그랬던 것 아니었을까요?
같은 장소에 오래 있고, 같은 짓을 매일 하다 보면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죠. 이럴 때 새로운 공부 장소를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시험날짜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면 도서관이든 학원이든 걸을 수 있는 거리면 최대한 걷는 것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걸으면 오고 가는 길의 풍경이나, 사람들, 장소가 바뀌니 이 또한 즐거운 일입니다. 또한 장소가 바뀌면 저같이 집에서 공무원 시험을 하던 사람들의 경우, 그 바뀐 장소에 나와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며, 묘한 긴장감도 생깁니다. 그 긴장감은 단순히 저 옆에 있는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그런 부정적이고 경쟁에 찌든 긴장감은 아닙니다. 삶에 건강한 긴장감? 뭐라 구체적으로 쓰기는 힘든 그런 묘한 동지애?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면서 잠시 제가 슬럼프라는 것을 잊게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하긴, 그럴 법도 한 게 집에서 공부하면 사람보다는 동물(진돗개, 지나가는 고라니와 멧돼지)을 많이 보니, 가끔 보는 사람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소만으로도 부족하다면 공부 패턴이나 공부 내용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오답 문풀 끝내기 주', '한자 1달치 정리하기 주', '국사 ~~ 시대 all 정리 day' 네이밍이 좀 유치하긴 한데, 실제로 제가 슬럼프 극복하려고 노력하던 때에 제 일기에 쓰여있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한자 1달치 정리하기 주' 같은 경우, 가방에 아메리카노 한병 들고 룰루랄라 소풍 가는 마음으로, 중간에 김밥천국 들러서 김밥 두 줄 사고, 도서관에 들어갔습니다. 점심시간은 도서관 옆이 바로 산림욕장 입구라 한 손에는 김밥, 한 손에는 '선재국어 오랜 방황의 끝'(한자책입니다. 가장 수험서 같이 생기지 않은 책이라 들고 다녀도 이상한 눈으로 보시지 않죠.)을 들고 올라갔습니다. 거기로 들어가서 적당한 벤치에 앉아서 책 대충 훑어보면서 김밥 까먹었습니다. 머리에 쥐가 나면 산림욕장 코스 중에 가장 짧은 거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와서 책 보고 다시 돌고... 해질 무렵에는 미련 없이 짐 싸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땀도 적당히 흐르는 상태에서 샤워를 하고 일찍 잠들면, 양은 적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했다는 마음에 약간은 안심하며 잘 수 있습니다. 다음날에는 일찍 잤기 때문에 개운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서야 한 가지 깨달음이 옵니다. 아.... 내가 슬럼프 자체를 걱정하는 바람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나를 돌보지 못했구나.
2번에서 살짝 힌트가 나왔지만, 슬럼프 극복의 대표적인 방법은 운동입니다. 이건 비단 공시생들만이 아니라 일반 직장인 분들도 많이 쓰시는 방법이죠. 운동하면 엔도르핀이 생성되어 슬럼프로 인한 우울감을 극복하기가 수월해진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공시생들은 경찰 준비하시는 분들 아니고서야 필연적으로 저질 체력이 될 수밖에 없긴 합니다. 몸을 움직이는 걸 정말 싫어하게 되고, 전형적인 '이불 밖은 위험해' 스타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저도 물론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고, 지금도 조금 그렇습니다. 처음 도서관에서 공부가 안돼서 운동하고 왔다고 한 그 날, 부모님은 표정과 분위기 등 온몸으로 '네가?'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 당연한 얘기지만 본인에게 맞는 수준으로 운동하시라는 겁니다. 합격후기가 하루 1시간 뛰었다고 본인도 아무 생각 없이 1시간 뛰시면 뒤에 공부할 힘이 없어집니다. 이것만 조심해서 본인에게 맞는 양과 수준으로 운동하시면 이것도 좋은 방법인 것은 확실합니다. 일단 밥맛이 돌고 밤에 잠도 잘 옵니다. 자연스럽게 다시 규칙적인 생활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참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심신이 오래 지쳐있을 때는 '공무원 공부'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공부'라는 큰 범위에서는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저는 중간에 토익이 만료돼서 토익도 보고, 한국사 검정시험도 봤습니다. 물론 정말 마지막에 가서 가장 큰 3개 시험(국가, 지방, 서울)이 떨어졌을 때 군무원 시험이라도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던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감 회복'이었습니다. 나는 결국에는 공무원이 될 것이라는 믿음의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똑같은 국사와 영어 공부 아니냐 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사 검정시험, 토익의 RC파트 둘 다 공무원 시험보다는 난도가 쉽습니다. 특히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고급은 공무원 시험을 보실 분들이라면 고급 90점 정도는 가볍게 따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뭔가 새로운 활력이 생깁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단기적으로 시급이 센 아르바이트를 했던 합격생도 있습니다. 일당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내가 불합격하면 다시 이런 아르바이트생의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는 긴장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일단 합격자 말이니까 일단 참고하실 분들은 참고하셔도 될 듯합니다.
장기간의 수험기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여가생활이 필수적입니다. 공부만 하겠다고 씨름하다가 지쳐서 시험 막판에 손을 놔버리는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아니 많이 있습니다. 그동안 여가생활을 너무 간과했기 때문이죠. 어렵더라도 최소한의 여가시간을 확보해 지친 마음을 달래주어야 합니다. 여러 여가 생활 중에서 건전한 종교 활동도 있고, 저처럼 일기(정확히는 1주에 한 번이니까 주기라고 해야겠지만)로 자신의 심정을 정리해서 표현하는 것은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는 데 좋습니다. 그 외 드라마 몰아보기, 게임도 과하지 않다면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삶의 활력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과도히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다가 오히려 기분이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슬럼프가 심한 경우에는 일정을 정해 여행을 가거나 노는 시간을 만드는 것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잠시 미루고 다른 일에 열중하거나, 생각을 비우게 되면 자연스레 공부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듯, '아, 이번에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은 자연스럽습니다. 저도 1달에 1번은 이 불안함이 불쑥불쑥 예고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특히 자려고 누울 때 잠을 설치게 하는 일등 공신이었고요. 주변에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라는데, 그게 뭐 말처럼 쉽나요? 현실적이지 않은 조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서 만들지는 않았고, 다들 가끔씩 '시험 끝나고 뭘 할까?', '합격하고 뭐할까?' 같은 행복한 상상을 한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걸 써보는 거는 어떨까요? 버킷 리스트가 별건가요? 뭐 거창하게 세계일주 뭐 그런 것만이 버킷리스트일까요? 그냥 그렇게 그때그때 써 놓은 것이 버킷리스트입니다. 그것들을 불안감에 대한 백신이라 생각하고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거의 최고의 백신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볼 때마다 동기부여가 확실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써 놓은 것들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기에, 실제로 합격을 하면 연수원 들어가기 전까지 그거 다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브런치도 제 버킷리스트 중에 있습니다. 11번. 부족한 글 솜씨지만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쓰기. 지금 이루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해서 위의 여섯 가지 방법으로 어지간한 슬럼프는 어느 정도 극복이 됩니다. 하지만, 앞에 원인편 3번, 성적 하락에 의한 슬럼프에 대한 답은 제가 경험을 해 보지 못했고(왜냐? 성적이 떨어져도 비교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노량진 출신 합격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라 명쾌한 해답지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쓸 때 취재한 노량진 합격자들 4명 중에서 한 명이라도 이 얘기를 안 꺼냈으면, 분명히 전 슬럼프 원인 리스트에서 3번(생활편 4-1. 참고)을 뺐을 겁니다. 반대로 얘기해서, 학원가의 거의 모든 합격자들은 이 슬럼프를 한 번쯤은 겪었다는 소리겠죠? 비교 대상이 많은 노량진에서는 그만큼 저 스트레스는 저의 상상 이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대답과 저의 생각 중 겹치는 부분만 떼어내 보니까 결국 7번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푸는 시험은 '모의'시험이죠. 그리고 대부분의 모의고사는 실제 시험보다 조금 더 어렵습니다. 절대로 '모의'고사로 당신의 현실인 '합격'을 점치지 마세요. 문제지 받고 나서 100분 동안 푼 문제가 당신의 합격을 결정합니다. 당신 손에 들린 그 문제지가 아니라. 실제로 모의고사 결과에 본인이 취한 나머지 본 게임에서 망하는 경우도 숱하게 봐왔습니다.
+Tip! 모의고사의 2가지 기능+
1. 실제 시험장에서 쓸 문제 풀이 순서를 포함한 여러 전략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
2. 본인의 약점을 파악. 그리고 보완.
오답 : 합격에 대한 바로미터
가장 극단적인 방법입니다. 효과도 가장 좋지만, 가장 위험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표본 같은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요? 솔직히 본인이 예상하지 못하는 사건 사고는 공시 생활 중에 없을 수가 없고, 그 수가 많이 터지면 본인 멘탈이 터질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일단 다 신경 끄고 자기 자신을 먼저 지켜야 합니다. 여행을 가셔도 좋고, 술이 필요하시다면 술도 하루 이틀 정도야 괜찮겠죠. 기왕 쉴 거면 배짱 있게 지르셔야 후회가 안 남습니다. 단, 이틀을 넘기시면 안 됩니다. 돌아오시는 데에 어마어마한 정신적인 피로가 올 겁니다.
+Tip! 나가면서 드리는 말씀: 국어 지문 중에 정약용 선생님이 쓰신 '수오재'라는 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시를 할 때 가장 많이 곱씹었던 글입니다. 짧아서 다 읽는데 10분이 안 걸릴 겁니다. 守吾齋, '나를 지키는 집'이라는 뜻인데, 제가 흔들릴 때마다 보던 글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위에서 말한 '공부의 끈을 놓지 말라'는 이야기와 '나를 지키라'는 이야기가 공시생에게는, 아니 어쩌면 공부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같은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합니다. 추천합니다. 혹시 압니까? 어느 날 갑자기 문제로 나올지.
+Tip! 군무원에 대하여: 2017년부터 군무원 국사 과목을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토익 대체는 그전부터 시행되고 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