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시 시작해야지
올해 초, 행복하기만 해도 모자란 시기였는데
갑자기 가족 중 한 명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
후폭풍은 나머지가 다 맞아야 하니 너무 황당하고
화도 났다. 그리고 원망스러웠다.
속 깊은 남편과 동생 부부 덕분에,
그리고 1학년 학부모로 정신없이 지내는 일상 덕에
그럭저럭 잘 버틸 수 있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어서
속이 어떻든 그냥 버텨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최근에 기억력이 심각하게 안 좋아졌다.
단기 기억력이 심하게 나빠지니 나 자신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더 나빠질까 무섭기도 하다.
뇌가 생존 모드가 되면 중요한 정보 처리보다
감정 조절에 에너지를 쓴다던데…
그래서 이렇게 된 건가 싶다.
이런 와중에 또 나쁜 일이 생겼다.
이것 역시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누군가 탓할 사람이 생기면 조금 편해질까?
그런 생각도 잠깐 했지만,
그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현실적인 돈 문제가 닥치니 내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가족의 즐거움과 모든 선택의 범위를
터무니없이 좁게 만들어버린 이 상황이
거짓말이었으면 싶다.
여기에 내 잘못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생각하니
억울함이 치밀어 오르고, 우리는 너무 억울하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상실, 좌절, 절망, 걱정, 불안, 스트레스, 압박감,
박탈감… 이런 감정들이 한 번에 몰려오니까
숨이 턱턱 막혔다. 감정 과부하가 왔다. 힘들다.
몇 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그땐 이런 걸 처음 겪어서 정말 힘들었다.
그때 난,
내가 내 마음조차 몰라서 힘든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걱정, 긴장, 불안, 불편함이 방어할 틈 없이
한꺼번에 덮쳐 내가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은 기분.
그게 너무 생생하다.
상대방의 행동이 예측이 안 돼서,
작은 말 한마디가 문제로 번질까 봐
몸이 자동으로 긴장되는 느낌.
혹시 갈등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돼서
또 불안해지고,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말투, 표정, 분위기를 계속 살피고, 나에게 튀어올지도 모르는
화살을 계속 피하려고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피로감과 공포감.
그때 상황은 트리거가 되어 나를 괴롭힌다.
일상 중에 문득문득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걱정하며 눈물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 숨 쉬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면서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아닐까 싶어 나를 자책하는
또 다른 스트레스도 얻는다.
물론 올해 생긴 일들은 어떤 상황이 아니라
벌어진 일이어서 트리거가 생기진 않겠지만
어쨌든 너무하다 싶은 2025년이다.
그래도 다시 시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