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연말 추천 도서

by 김겨울



국립국악원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일이다.

나는 지루해서 졸렸는데 아이는 새로운 거라 재밌었단다.

나에게 국악은 '지루한 것'이었지만 아이에게는 그냥 '새로운 것'이었다.

클래식이든 국악이든 아이에게는 그냥 '경험'일 뿐이었다. 좋고 싫고의 차이가 아니라 익숙함의 차이인가 싶었다.


좋아하는 것과 소비 방식은 각자의 개성과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은 취향이 얼마나 계급, 자본, 교육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이야기한다.

취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익숙함의 문제이며 어떤 공간과 문화에서 긴장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는 태도는 학습된 결과라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


내가 되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릴 때부터 경험 안 하면 커서 못 즐겨”

이건 ‘그들의 세상을 동경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훈련되고 익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다.


책에서는 이런 걸 문화자본이라고 불렀다.

‘비싼 걸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낯설지 않게 느끼는 능력, 위축되지 않고 공간에 스며드는 감각, 메뉴판, 말투, 분위기 앞에서 긴장하지 않는 태도… 그런 것들.


그들의 세상을 동경하지 않지만 학습의 효과는 정말 부럽다.


이 책은 그 감정을 개인의 무기력이나 부족함으로 보지 않게 만든다. 취향이 사라진 게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는 잠시 밀려나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지금 내 삶에서 취향을 키울 시간과 공간은 정말 없는 걸까? 단순히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을 뿐일까? 계속 곱씹어보게 된다.



책에서는 취향을 드러내는 가장 손쉬운 방식이 ‘소비’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요즘 이유 없이 가슴이 막힌 듯한 답답함을 느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소비를 통해 나를 표현하지 못하고 취향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생긴 감정이다.

내 자본의 총량이 얼마나 되는지 머리로는 이미 가늠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문화적인 인정은 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 욕심과 욕망을 가진 나…


20대 때 주택단지에서 신도시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었다. 창밖으로는 신도시의 랜드마크처럼 보이는 큰 아파트가 보였다. 야경이 정말 예뻤다.

이사 잘했다고 아빠에게 사진을 보냈는데, 아빠는 뷰가 좋다며 언젠가는 저런 집에 살아보는 것도 꿈꿔보라고 했다.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하라는 말도 지금의 내가 부족하다는 뜻도 아닌 “저런 삶도 한 번쯤은 살아볼 수 있다”고 마음속 가능성을 닫지 말라는 그 말이 힘이 되었다.

취향이나 계급, 삶의 방식이 경험을 통해 몸에 새겨지는 것이라면 아예 꿈꾸는 것조차 포기해 버리는 태도는

어쩌면 가장 먼저 닫아버리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나는 쥐뿔도 없지만 경험해보지도 않고 “별로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한다.

가능성을 조롱하는 대신 한 번은 살아보고 판단하는 쪽을 선택하며 살고 싶다.

여전히 확신은 없지만 최소한 “못 해”, “별로야”,“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말하기 전에 한 번은 내 취향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요즘은 정말 이번 생은 망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ㅠ


이 책의 마지막은 <19호실로 가다>라는 책을 소개하며

‘이처럼 취향을 즐기는 장소는 그 사람의 고유한 오리지널리티를 키우고 개인이 회복하는 공간이 된다.’라고 말한다.



<19호실로 가다>는 나의 인생책이다.

나 자신을 얼마나 잘 돌봐야 하는지 절절하게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해답이 없다는 점도 좋았다.


그때 나의 19호실은 그 여행이었는데…



나의 19호실은 어디 있을까?









정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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