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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an 10. 2019

2. 드라마작가의 자격 (1)

대체 어떤 사람들이 드라마작가가 될까?

“당신은 SKY대학의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류기업의 회장 비서실에서 3년간 근무했다.

일하면서 몸소 겪은 재벌의 맨얼굴은 막장드라마 그 이상이었고, 진짜 리얼한 재벌 드라마를 써보겠다는 꿈을 품고 사직서를 던졌다.


한 번의 유 없이 교육원 최종과정까지 수료하고, 유명 작가의 보조작가로 투입됐다. 그 작품이 시청률 대박을 쳐 동남아 포상휴가를 다녀온 날, 공모전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30대 초반인 당신은 당선자들 중 어린 편이고, 회장 비서 출신다운 수려한 외모, 사회생활 경험에서 얻은 센스와 친화력은 좋은 인상을 남긴다. 당선작 외에도 미리 써뒀던 단막극이 몇 편 더 PD들의 눈에 들어, 당신은 한 해에만 세 편의 단막극을 방송한다. 그리고, 단막극으로 함께 데뷔한 PD와 재벌 소재의 미니시리즈를 준비하게 됐다.

꿈은 딱 3년 만에 이루어졌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날, 아직 회사에 남아 있는 입사 동기들에게 크게 한 턱 쐈다. 곧 그들의 연봉을 뛰어넘을 수 있으리란 예감이 든다...”


어떤가. 내 얘기라고 상상하면 황홀하지 않은가?

아니면, 나랑은 너무 먼 얘기로 느껴져 기가 좀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전공, 나이, 사회생활 경험, 외모와 성격까지,

드라마작가로 데뷔하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해 보이는 조건을 한 번 만들어봤다.

그러니까 위의 케이스는, 가짜다.

실제로는 A부터 Z까지 정말 다양한 조건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드라마작가가 된다.     


- 전공, 그리고 학벌.    


현업 작가들 중에는 문학 관련 학과를 전공한 들이 많다.

김은숙 작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 간 경리로 일하며 돈을 모아 서울예대에 입학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비문학 전공인 나는, 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한 작가들, 지망생들을 부러워했었다. 자기 글에 대한 단단한 심지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작가들을 만나다 보니 엉뚱한 학과를 나온 작가들도 많이 보게 됐다. 음대에서 악기를 전공한 작가도 있다!    


요즘은 아예 영상 콘텐츠 작가를 육성하겠다는 학과들이 여러 대학과 고등학교에까지 신설되는 추세다. 어려서부터 영화나 드라마작가를 꿈꿔왔다면 관련 학과에 진학해 기본기를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생판 관계없는 전공을 공부하면서, 혹은 대학이 아닌 다른 곳에서 청춘을 보내면서, 작가에게 필요한 무기들을 더 많이 얻을 수도 있다.


드라마에 대해서는 수업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 배울 수 있는 것은 교육원에서도 배울 수 있다. 작가로 일하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는 케이스도 있다. 전공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덧붙여, 학벌 얘기를 잠깐 해보자.


교육원 시절, 학벌이 좋으면 작가 되기 유리하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PD들이 대부분 SKY 출신이니 동문과 일하는 걸 더 선호한다나. 어쩌다보니 SKY 출신인 내 경험에 의하면,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이다. 물론 같은 학교 출 PD들을 만나는 일들이 더러 다. 하지만 공감대가 형성될 때는 영화 취향이나 형제의 성격 등 학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분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했을 때였다. 학교 얘기는, “오, 동문이었네?”, “**학번 **동아리면, ***알어?” 정도로 끝났다.


 좋은 사람, 학창 시절 공부 좀 했던 사람이 유리한 부분도 있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오랜 시간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하다는 건 큰 장점이다. 장르물에서 장치를 심고 거두어들이는 등 수학적인 머리가 필요한 작업을 할 때도 좀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공부엔 영 관심이 없어서 다이내믹한 학창 시절을 보냈던 작가들이 훨씬 더 생생한 이야기들을 만들 수도 있다. 내가 PD라면 같은 모범생 말고 좀 다른 타입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을 가진 작가와 일하고 싶을 것 같다. 그러니까, 학벌에도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 나이, 직업, 그리고 경험들.    


교육원을 다닐 때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반에서 가장 어린 축에 들다. 30대가 주축이었고, 40대도 적지 않았다. 기혼에 아이가 여럿인 지망생들도 흔했다. 대학생이나 20대 초중반은 드라마를 쓰기엔 너무 어리다고 면접에서 떨어뜨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금은 교육생들의 평균 연령이 조금 어려진 것으로 안다. 스타 작가들 덕분에 직업의 인지도와 선호도가 높아져, 어려서부터 장래희망으로 삼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리라.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전공하며 동시에 교육원을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시작하는 나이가 어려지니, 20대에 미니시리즈에 데뷔하는 케이스도 이어지고 있다.     


나보다 훨씬 어린 작가들이 데뷔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 샘이 나기보단 초조해진다. 신인작가라고 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게 아닐까. 나이 많은 신인작가들은 다루기 어려워 PD들이 기피한다는데...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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