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에겐 너무 부담스러운 난임시술비용
난임시술을 받기 시작한 후, 우리 부부는 조금 더 가난해졌다.
나는 일을 완전히 접었고, 유일한 수입원인 남편의 월급은 대출이자를 포함한 우리의 씀씀이에 자로 잰 듯 똑 떨어지는 숫자다. 인공수정 시술을 받는 달엔 생활비를 좀 더 아끼려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이너스 통장에 손을 빌릴 때가 더 많았다. 그리고, 다음 달부턴 인공보다 훨씬 '비싼' 시험관 시술에 들어갈 예정이다.
우리 부부의 경우 인공수정 한 회차의 전 과정에 40~5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시험관 비용은 검색해보니 최소 130~150만원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물론 병원에 따라, 또는 시술 전후 추가적인 처치가 필요한 경우 200, 300만원이 넘어가기도 하는 듯 하다.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을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진 말자... 나는 일단 스스로에게 150만원짜리 청구서를 보내두기로 했다. 최소한으로 잡았는데도 인공 때의 세 배가 넘는 비용이다. 벌써부터 쪼그라드는 나를 느낀다. 이제 곧 봄이고 기분전환으로 꽃무늬 원피스라도 하나 사고 싶지만, 아예 쇼핑몰에 가질 않으면 참을 수 있다. 오랜만에 남편과 마실 나가서 6000원짜리 국밥이라도 한 그릇 때리고 오고 싶지만, 조용히 쌀을 씻는다. 경조사 소식을 들으면 축하하는 마음보단 얼마나 내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이와중에 남편은 한가하게도 해외여행 타령이다. 우린 5년 전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서랍에 넣어둔 여권을 다시 꺼내지 못했다. 나는 비교할 대상이 별로 없지만, 남편은 직장인이다보니, 동료들이 긴 연휴를 이용해 동남아니 남태평양이니 다녀오는 게 은근히 부러웠나 보다. 다시 시술 들어가면, 그래서 임신하고 출산까지 하면 한동안 해외에 나가기 어려울 테니, 시술을 쉬는 이번 달에 확 그냥 다녀와 버리자는 거다.
마침 TV 홈쇼핑에선 동남아 패키지 여행을 광고 중이다. 599,000원, 699,000원, 평소엔 '저 정도면 괜찮네' 생각했던 숫자들에 이젠 눈이 휘둥그레진다.
"둘이 가면 대충 150은 들텐데, 안 돼. 우리 다음달부터 시험관 하면 한 달에 150씩 들어간단 말야."
"그럼 시험관 한 번 더 했다고 치면 되잖아!"
...뭐? 한 번 더 했다고 쳐??? 이 양반이 한 대 ㅊ... 침착하자. 시험관이 몸과 마음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 시술인지 여러 번 설명해 줬건만, 그 교육의 시간들을 깡그리 잊은 듯한 남편의 해맑은 얼굴에 기가 찼다. 하지만 남편의 말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려 버렸다. 한 번에 성공할지, 두 번, 세 번을 해야 할지 그 이상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쓸 돈이 무서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오늘이 너무 가엾지 않은가.
그래, 까짓것, 질러버리자!
우리는 하늘길이 아닌 고속도로를 달려, 동남아가 아닌 동해 바다를 보러 갔다.
그 곳이 고향인 내겐 지구 어느 곳의 바다보다 아름답고 애틋한 동해 바다를.
탁 트인 바다를 보자, 작아지고 작아져 어떤 끈 같은 것으로 꽁꽁 묶여 있는 듯했던 마음이,
친친 감긴 끈을 끊어버리고, 크고 시원한 숨을 들이키는 듯 했다.
숙소는 평소보다 좋은 곳으로 잡았고, 먹고 싶은 건 계산서 생각하지 않고 신나게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2박3일 동안 인공수정 한 회차에 해당하는 비용을, 저 멋진 바다에 쏟아붓고 왔다.
그리고 바다에 빌어보았다. 아직 어떤 신도 들어주지 않은 우리의 소원을.
실은, 소원을 들어줄 건 신도 바다도 난임병원도 아니고, 남편에게 월급을 주는 회사일 지도 모르겠다.
동남아 패키지 여행 말고도, 150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한 번도 사 본 적 없는 브랜드의 핸드백을 살 수도 있다.
한 팩에 3만원이 넘는 한우 꽃등심을 1주일에 한 번, 1년 동안 구워 먹을 수도 있다.
한 달에 3만원씩 보내는 해외아동 정기후원을 4년 넘게 이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욕망과 쾌락과 가치를 잠시 미뤄두고,
우리에겐 제법 큰 액수인 그 돈을 고이 봉투에 넣어, 난임병원이라는 신전에 공손히 바치려 한다.
여행은 끝났고, 이젠 현실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다.
인공수정 시술을 받던 때보다도 더, 아끼고 아끼고 또 아껴야겠지만,
시험관 시술에 쓰는 돈을 너무 아까워하지는 않기를, 스스로와 약속해 본다.
통장은 점점 쪼그라들겠지만, 마음까지 너무 쪼그라들지는 말자고 다짐해본다.
나중에 아이가 부모 속을 썩일 때, "너 갖는다고 돈을 얼마나 썼는데!" 호통 쳐놓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150만원을 우리보다도 훨씬 무겁게 느끼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시술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돌아보니 차 한 대 값을 날렸더라는, 더 심하게는 전셋값을 뺐다는 얘기도 들은 적 있다.
시술비용이 다가 아니다. 나만 해도 평소보다 비싼 영양제를 먹고, 좋다는 식재료를 사는 데에 적지 않은 돈을 쓴다. 한약에 수백만원을 썼다는 이도 봤고, 운동이 필수라고 해서 비싼 개인 pt를 받는다는 이도 있었다. (나는 우연히 대화를 좀 나누게 된 무속인에게서 굿을 해보라는 제안도 받아봤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든다는 수억에 비하면 적은 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쓰지 않아도 됐던 비용들을 우리만 써야 한다는 게, 괜히 억울하고 속상할 때가 많다. 원망할 데도, 털어놓을 데도 없는 속상함이다.
'난임 시술 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다'는 내용의 기사가 종종 나는데, 댓글들을 보면 대부분 '거 좀 지원해줘라. 안 갖는다는 사람들 꼬시는 데 쓸데 없이 돈 쓰지 말고.' 같은, 우리를 응원해주는 내용들이 꽤 많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 말 한마디가 너무나 고맙게 느껴진다.
올해 들어 정부 지원 소득 기준이 조금 높아져서, 이젠 우리 부부도 해당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아슬아슬하게 탈락이다. 오늘은 옷장에서 작년에 입던 봄옷 중에 제일 예쁜 옷을 골라입고, 남편과 마트라도 다녀와야겠다. 꾸준히 먹던 두유도 다 떨어졌고, 남편 먹일 토마토도 사야 한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은 마트들이 세일을 제일 많이 하는 시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