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시부모님에게 알려버렸다. 내 동의 없이.
처음 진행하고 있는 시험관 시술.
생리 3일차부터 6일 동안 과배란 주사를 맞은 후, 난자가 몇 개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는 날이 오늘이었다.
과배란에 들어가기 전, 10개에서 15개를 키우는 게 목표라고 했던 선생님. 그럼 10개는 넘었으면 좋겠는데... 어쩐지 승부욕 비슷한 감정이 올라오는 게 스스로 어이없게 느껴졌다.
주사 용량은 인공수정 때의 4.5배. 여기 저기서 주워들은 부작용들을 떠올리며 겁이 나 떨었지만, 다행히 두통과 피로감, 골반의 통증 외엔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다행인 게 맞나? 난임 시술을 받으면서는 이 정도 고통은 참아 마땅한가? 나의 불편함과 통증, 고통에 너무 무감각해진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날짜가 지날수록 두통은 가벼워졌고 골반 통증은 심해졌다. 운동이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체력이 딸려 일주일 동안 제대로 운동을 한 날이 없다. 그저 시도때도 없이 욱신대는 골반을 부여잡고, 평소보다 열 배는 고생하고 있을 난소들을 도닥였다. 내가 미안해. 조금만 힘내자. 해외직구로 산, 난자 질 개선에 좋다는 영양제에는 'egg quality'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난자가 영어로 에그였구나... 열 개의 달걀을 품고 꼼짝없이 앉아있는, 닭이 된 기분이다. 흐흐.
그래서 오늘의 시험 (초음파 검사) 결과는?
다행히, 욕심대로 10개가 조금 넘는 난자들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일단 1차 시험은 통과다!
오래 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던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턱걸이로 합격했을 때의 짜릿함이 떠오른다.
그럼 채취는 기능, 이식은 도로주행 쯤 될까...
아직 갈길이 멀지만,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아무도 모르지만, 오늘은 안도하는 기분을 즐기자.
기쁜 소식을 남편에게 톡으로 알린다. 바로 전화가 온다. 잘됐네, 고생했다, 얼른 들어가 쉬라는 말에, 긴장해 딱딱했던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집에 가는 길에 만난 엄마에게는 자랑스런 성적표를 들이밀...진 못하고 그냥, 잘 진행되고 있대, 하고 만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쩐지 쑥스럽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채취 때마다 난자 몇 개 나왔냐고 물어본다'던 누군가의 얘기를 떠올린다. 으... 상상만 해도 식은땀난다. 모든 시어머니가 그토록 무감각, 무배려는 아니겠지만, 작은 관심과 간섭조차 불편할 것 같아 나는 시부모님에게 시술을 알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남편이 알려버렸다. 내 동의 없이. 그것도 내가 없는 자리에서.
지난 달, 시댁 식구들이 우리 부부의 난임시술을 몰라서, 몹시 불편하고 부당한 설 명절을 보냈다고 썼다.
https://brunch.co.kr/@lunar611/26
이왕 욕 먹은 거 끝까지 말하지 말아야지, 이왕 욕 먹을 거, 안 가도 되는 모임에는 가지 말아야지 다짐했다고도 썼다.
이달 초 시가 쪽 친척의 행사가 있었고, 다짐했던 대로 남편만 보내기로 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마음이 불편할 줄 알았는데, 왠걸, 몸도 마음도 가벼운 게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게. 기분이 너무 좋더라니... 행사에서 돌아온 남편이, 어디 도시락 폭탄이라도 던지고 온 투사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나, 다 얘기해버렸어!"
아이고...
한 달 만에 만난 시어머니가 명절 때 서운했단 얘길 또 꺼내셨단다. 욱하는 마음에, 난임시술 받고 있어서, 힘들어서 일찍 가지 못했던 거라고 말해버렸단다. 시어머닌 잠시 미안하고 난감한 기색이시더니,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엄청 나무라시더란다. 부당하게 욕 먹는 게 억울해 진실을 폭로한 남편은, 일찍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욕을 먹은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욕을 먹어야 했다. 내가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지 않았냐, 이제 서로 더 불편해질 거다, 그 자리에 있었던 친척들도 (남편 말로는 못 들었을 거라지만...) 들었을 수 있지 않냐, 무엇보다, 내가,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어떻게 그 얘길 꺼낼 수가 있냐아아아아아!
그렇다. 내가 당사자다. 물론 남편도 참여하고, 부부의 공동의 목표를 위해 진행하는 일이지만, 회차마다 받는 시술 동의서를 봐도 내가 '시술 대상자', 남편은 '해당 배우자'다. 가족도 친구도 남편마저도, 난임시술을 받는 당사자가 원하지 않거나 모르는 상황에서는 "OO이가 난임시술을 받고 있어."라고 누군가에게 쉽게 말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주 먼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동성애자가 커밍아웃을 당한다는 게 혹시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만큼 난감하고, 화가 났고, 필요 이상으로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왕 벌어진 일, 자꾸 곱씹으며 괴로워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을 미워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폭로사건'의 긍정적인 면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병원에서 진행하는 집단상담을 받으며, '생각 전환하기' 연습을 하고 있고, 제법 도움을 받고 있다. 상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써보려 한다.)
이제 모임에 빠지려고 거짓말을 지어낼 필요는 없겠다, 경제적으로 빠듯해진 것도 계속 어필해서 가족모임마다 얼렁뚱땅 쓰게 되는 비용들을 줄여야지, 어쩌면 시댁에만 가면 과음하는 남편의 버릇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긍정 효과는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에서부터 시작됐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별 용건 없이 전화를 걸어오던 시어머니가, 몇 주째 전화를 하지 않으시는 거다! 하고픈 말은 많은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어려우셨던 게 아닌가 짐작해 본다. 시어머니가 나를 어려워할수록, 죄송하지만 어쩐지 나는 편해진다.
지난주, 폭로사건 이후 처음 시부모님을 만나 외식을 했을 땐, 시아버지가 오랜만에 계산을 하셨고 (오!) 시어머니는 남편이 술잔을 들 때마다 나보다 더 엄하게 잔소리를 해주셨다. (오예!) 힘들 땐 가족모임에도 안 와도 된단다. 남편 혼자 오란다. 잠깐. 아내가 힘들면 남편이 옆에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자. 혹시 시누이에게 얘기하셨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하시는데,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무래도 얘기하신 거 같다... 에이, 이것도 나중에 시누이네를 만날 때가 되면, 그 때 생각하자. 아니, 먼저 아는 척 하지 않으면, 나도 그냥 모른 척 하자.
결론적으로, 시부모님이 알게 된 후 그 때문에 크게 불편하거나 불쾌해졌던 상황은 아직까진 없었다. 남편이 시부모님에게, 내게는 시술 진행에 대해 더 묻지 말아달라고 당부한 덕분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괜찮잖아... 닥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나쁜 쪽으로만 상상하는 버릇을 고치는 데에, 이번 일이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언젠간 아시게 될텐데, 하고 나를 괴롭혔던, 먼 훗날 해야 할 숙제를, 어쩌다 보니 미리 해치워버린 기분도 든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더 가벼워지자. 쓸데없는 상념들은 하나씩, 하나씩 벗어버리자. 꽃샘추위가 조금 남아있는 듯 하지만, 분명한 건 봄은 오고 꽃은 핀다는 거다. 이제 무거운 겨울외투는 그만 벗어버려야겠다.
"난임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시나요? (3)"
며칠 전엔 병원 홍보팀에서 전화가 왔다. 모 방송국에서 다큐를 찍는데 진료 영상과 환자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모자이크는 확실하게 해준다고 했다고, 응해주면 시술비를 어느 정도 감면해줄 수 있다고 했다. 남편과 상의해 보겠다며, 다음날 다시 통화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맞다. 시술비 감면에서 혹했다. 하지만 뭔지 모를 불편한 감정이 혹하는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몇 년 전 까페에서 회의를 하다, 인테리어가 특이한 까페를 취재하던 촬영팀의 부탁을 받아 짧은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다. 좀 쑥스럽긴 했지만, 시간에 쫓기는 촬영팀의 간곡한 표정에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고, 아침방송이라기에 지인들이 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먼 곳에 살면서 연락이 뜸해졌던 아빠 친구분이 이 방송을 봤고, 친구 딸을 알아본 그 분이 십여 년 만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이건가? 모자이크를 해도 누군가는 알아볼 것 같다는 게 마음이 불편한 이유인가?
그날 밤, 채널을 돌리다 어느 시사프로그램을 보고, 이유를 알게 됐다. TV 속엔 '확실한 모자이크' 뒤에 숨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기 전과 13범이 있었다. 나는 모자이크가 확실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한 게 아니라, 모자이크 처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던 거다. "인터뷰 같은 거 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해, 해!" 해맑은 얼굴로 부추기던 남편도, 내 설명을 듣고는 바로 납득했다.
물론 죄 지은 사람만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건 아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인터뷰를 할 수 있다. 공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모자이크 뒤에 서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난임 시술을 받는다는 이유로 모자이크 처리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어떤 공익적인 목적이 있다 해도, 얼굴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나의 난임에 대해 얘기할 자신도 아직은 없다.
다음날 다시 홍보팀의 전화가 왔을 때, 눈물을 머금고 거절을 말했다.
그리고 여기,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난임을 알리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는) 얼마나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일인지에 대해 쓴다.
아이러니한가?
"난임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시나요? (4)"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열에 한두 분은 고맙다는 인사에 이어, 뜬금없이 본인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중 반은 자식 얘기고, 반은 어디가 아프단 얘기다. 자식들에겐 부담 줄까봐 아프단 말도 맘껏 못하는건 아닌지... 아프면 누구든 붙잡고 아프다고 말하고 싶은 게 사람인가 보다. 속으로만 삭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다 속에도 병이 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 병 안 나려고, 여기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긴 수다를 떨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때론 넘치고 때론 모자란 내 넋두리를 들어줘서 고맙단 말을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 이곳이, 여러분이 나의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