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동지를 잃고, 엄마선배를 얻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가 있다.
서툰 살림, 시가 식구들과의 미묘한 불편함, 연애 때와 달라진 남편에 대한 서운함,
비슷한 고민들이 나와 친구에게 들이닥쳤고, 그 고민들을 실컷 나눌 수 있었다.
난임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2년차, 3년차가 되도록 나도 친구도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해 금세 아기를 가진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할 속앓이를
이 친구와는 서로 털어놓고, 위로하고, 격려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끈끈한 전우애를 다지던 나의 난임동기가 어느날 배신을, 아니, 임신을 알려왔다.
시술도 아니고, 자연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카톡이라 다행이었다.
얼굴 보고 얘기했거나 전화통화였다면, 굳어진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를 들켰을 거다.
손가락으로는 호들갑 섞인 축하멘트와 이모티콘을 날리고 있을 때, 가슴속에는 주먹만한 불덩어리 같은 게 올라오고 있었다.
이게 뭐지? 축하하는 마음도 분명 진심인데, 왜 이렇게 당혹스러울 정도로 화가 나는 걸까?
핸드폰을 멀리 치워놓고 곰곰이 생각하니, 오래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상황이 떠올랐다.
다른 매거진에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나는 드라마작가 지망생 시절을 꽤 오래 겪었다.
그 때 같이 공부했던, 희망고문과 좌절의 반복을 함께 견뎌왔던 동기들 중에 누군가 공모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여지없이 그 불덩어리를 만났었다.
불덩어리의 이름은 (이름은 참 예쁜) '샘'이다.
예쁜 외모도 명품백도 해외여행도 화려한 프러포즈 같은 것들도 샘낸 적 없는 무디고 무던한 난데...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취약한 부분들이 있나보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샘내는 나, 속좁은 나, 못난 나를 만났다.
샘이 나서 화가 나고, 100% 축하해주지 못해 친구한테 미안하고, 왜 미안해하기까지 해야 하는지 또 화가 나고, 그렇게 하루종일 불덩이를 끌어안고 싸워야 했다.
임신 초기에는 조심해야 한다니까, 친구와의 만남을 미뤘다. 안정기가 됐을 때는 내 마음도 어느정도 안정됐고, 종종 친구를 만나 임부복 쇼핑도 같이 하고, 어설프지만 만삭사진도 찍어주고 그랬다. 남은 배란테스트기며 엽산이며 챙겨주고, 성공의 팁도 알려주고, 내겐 너무 들뜬 모습을 안 보이려 애쓰는 듯한 친구에게 고마웠다. 태동 느껴보라며 갑자기 내 손을 자기 배에 갖다댔을 땐 (말은 못했지만) 놀랐고, 싫은 기분이 들었다. 육아에 대해 미리부터 너무 겁을 내는 모습을 볼 땐 괜히 얄밉기도 했다. 그래도 씩씩하게 출산을 준비하는 친구를 보며, 이제 시샘은 거의 사라졌고 진심으로 순산을,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친구가 아기를 품고 있던 아홉달 동안, 난 아홉 번의 자연임신을 시도했고 모두 실패했다. 우리 부부가 긴 고민 끝에, 2년 만에 난임병원의 문턱을 다시 넘었던 그 달에, 친구는 무사히 예쁘고 건강한 아기를 만났다. 병원에서 갓난아기를 보는 일이 처음은 아니어서 큰 감흥은 없었다. 그래도 아기가 너무 예쁘다고,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들 중에 최고로 이쁘다고 말해주었다. 친구는 한동안 지방에 있는 친정집에서 몸조리를 한다고 했다. 출산선물로 아기침대...는 못 해주고, 어른이불보다 비싼 아기이불을 사서 친구 친정집으로 보냈다.
만삭이 될 때까지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만났던 친구를 몇 달째 만나지 못했다.
허전하고 그리웠지만, 시술을 받기 시작해서 친구를 만나러 지방까지 가기가 쉽지 않았다.
얼마전, 친구가 자기 집으로 컴백했다. 아기가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운다고 해서,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보고 싶은 건 친구지만, 궁금한 건 아기였다.
이제 100일을 넘긴 아기는 붉은 얼굴이 하얗게 예뻐졌을테고, 눈을 맞추고 웃어줄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도 샘냈던 그 아기를 보면, 이젠 어떤 기분이 들까?
아기는 유난히 내게 웃는 얼굴을 많이 보여주었다. 친구와 내가 체격도 분위기도 꽤 비슷해서, 그러니까 엄마와 닮은 사람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아기는 친구 말과는 달리 순둥이였고, 친구는 사람들 많을 때만 순하고 둘이 있을 땐 떼쟁이라며 억울해했다. 순둥이면 어떻고 떼쟁이면 어때. 이렇게 귀한 아긴데. 이렇게 예쁘게 웃는데. 친구도 몸은 바쁘지만 얼굴은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이젠 '내가 갖지 못한 아기'가 아니라,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는 아기'가 보였다. 아기에게 고마웠다.
시술에 여러 번 실패하고 몸도 마음도 지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정말 아기를 원하는 건 맞나, 혼란스러운 날들이었다. 친구의 아기를, 친구와 아기를, 엄마와 아기라는 실체를 보고 오니, 혼란스러움이 조금은 씻겨졌다. 막연하기만 했던 바램이, 내가 원하는 풍경이 거기 있었다.
신생아용품 다 물려주겠다고 친구가 약속했다. 히히.
물려주면 고맙고 안 줘도 괜찮다. 그저 우리 아기도 너무 늦지 않게 와서, 친구 아기와 형제처럼 자라면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