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Jul 01. 2019

영화 <이케아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의 특별남

발리우드와 헐리우드가 유럽에서 만났을 때

가끔 인도 영화가 땡길 때가 있다.


낙천적이고 장난기 가득한 캐릭터들, 가끔 황당할 때도 있지만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전개, 여행하다 우연히 만난 축제 무대처럼 이국적이면서도 신나는 춤과 노래까지. 두어 시간 아무 생각 없이 실실대며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오락거리. 


7월18일 개봉하는 영화, <이케아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는 그런 인도 영화의 문법을 꼭 닮아 있다. 주인공 캐릭터도 그 역할을 맡은 배우도 인도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의 배경은 절반은 인도, 나머지 반쯤은 유럽의 여러 나라를 오간다. 이야기는 인도 영화에서 흔한 '새옹지마' 스타일로 흘러간다. (<파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그런데 감독은 또 캐나다 출신에 헐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감독이다. (그러고 보면 <파이 이야기> 감독도 중국 출신에 헐리우드에서도 성공한 이안 감독이었다.) 그럼 이 영화는 인도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반쯤은 그렇고, 반쯤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재미는 있냐고? 당연하다. 발리우드식의 활기에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잔기술까지 더해졌으니까. 그런데 웃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개운치 못한 기분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에는 원작 소설이 있다. 작가는 프랑스 사람이다. 국경 담당 경찰로 근무했을 때 만난 밀입국자들의 사연을 토대로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난민과 난민 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등장한다. 하지만 난민 문제를 바라보는 감독만의 시선은 도통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 의식 같은 건 생기기도 전에 증발해 버린다. 포스터에도 주인공과 한동안 동고동락하는 난민 친구들의 얼굴은 없다. 왜일까? 스포를 방지하려고? 아니면 주인공이 난민이 아니어서?


주인공 아자타샤트루('아자'로 불린다)는 가난하지만 난민은 아니다. 하긴, 태어나서부터 난민인 사람은 없다. 



아자는 인도의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최하위 계급 중 하나일 빨래꾼 엄마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빠가 누군지 너무너무 궁금한 것만 빼고는 그럭저럭 엄마와 행복하게 살아왔던 이 소년은, 자기 집이 무지하게 가난하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날 큰 충격에 빠진다. 그 후 아빠 찾기보다는 부자 되기에 올인하기로 한 아자. 돈 벌겠다며 또래 사촌들과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닌다. 엄마 따라 갔던 병원에서 슬쩍해 온 이케아 카달로그를 보며, 돈 벌어서 집 사면 침대는 이걸로, 쇼파는 이 시리즈로... 상상으로 집을 꾸미는 게 아자의 유일한 취미. 그렇게 아자는 이케아 모든 제품의 이름을 외워 버렸고, 별별 사기 기술을 다 습득한 어엿한 사기꾼으로 성장했다. 자주 아팠던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가 간직했던 편지에서 아빠가 프랑스 파리에 있음을 알게 된 아자는, 가짜돈 100유로 한 장 딸랑 들고 파리행 비행기에 오른다. 


파리에 도착한 아자가 아빠의 행적보다 먼저 찾은 건, 평생 꿈에 그려왔던 이케아 매장. 그렇게 오랫동안 품어왔던 짝사랑의 상대가,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다. 매장에서 만난 여자 마리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수작을 거는 방법이 꽤나 귀엽고, 괜찮았다. (첫눈에 반한 사람이 생겼을 때 떠올려서 써먹을만 하다!) 다음날 다시 만날 약속을 받아내는 데에도 성공한다. 그렇게 소년의 성장기에서 국경을 넘은 로맨틱 코미디로 장르가 넘어가는 건가 싶은 순간, 영화 제목대로 '특별난' 여행이 시작된다. 


숙박비가 없어 이케아 옷장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 아자는, 옷장째 트럭에 실려 국경을 넘는데, 하필 이 트럭에 아프리카 난민들이 숨어 있었으니. 아자도 (아마도 피부색 때문에) 이들과 같이 난민 취급을 받게 된다.


위험에 처했다가 기지 또는 기적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그 와중에 (동화 속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아자는 두 명의 은인을 만나게 된다. 



한 명은 (난민 취급을 당할 리 없는) 부와 명예와 유용한 연줄들까지 가진 유럽인. 



또 한 명은 진짜 난민이다. 


유럽인 은인의 도움으로 팔자가 바뀐 아자는 기세등등하게 마리를 만나러 가지만, 인생사 새옹지마,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고. 이 때 전반부에 만났던 난민 친구를 다시 만나 도움을 받고, 깨달음도 얻게 된다. 


우물안 개구리에서 특별한 여행자가 되고, 이어서 난민 아닌 난민이 됐던 아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방황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험한 일들을 겪고도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라'고 말하는 그의 가르침이 조금은 허무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가식이나 판타지라고만 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난민 문제를 스토리 전개의 도구로만 활용한 듯한 느낌은 찜찜함을 남겼지만, 어둡고 심각한 소재를 밝은 톤의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고 싶었을 감독의 진정성을 믿고 싶고, 다음 영화를 기대해보려 한다.   


영어권 나라들에서 쓰였을 이 포스터에서는, 난민 친구 위라지의 얼굴도 볼 수 있다. 


발리우드에 헐리우드에 (유럽에서 유행 중인 듯한) 난민 얘기까지 버무려진 이 영화는 특별나다. 하지만 <파이이야기> 같은 특출함이 있다고 말하기엔 조금 아쉽다. 


<세 얼간이> 같은 순도 100%의 인도 영화도 좋지만, 이렇게 인도 영화의 장점을 살린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가 또 나온다면 다시 한 번 기대를 갖고 극장에 가볼 용의가 있다. 


우리나라 감독이 인도 스타일의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문득 몹시 궁금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칠드런 액트>, 소년 A와 My Lady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