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ummer can change everything!
<보이후드>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었다.
'비포' 시리즈로 유명한 감독은 이 영화를 무려 12년에 걸쳐 찍었고, 6살이었던 주인공은 영화 말미에 성인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나간다.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연출도 훌륭하지만, 한 소년이 켜켜이 자라나는 모습이 고스란히 영화 한 편에 담겨 있다는 것이, 다른 영화가 갖지 못한 어떤 특별한 감동을 준다.
넷플릭스 오리지날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도 비슷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12년까진 아니지만, 세 번의 시즌, (스토리상) 3년이라는 시간만으로도, 아이들이 훌쩍 훌쩍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놀라고 감동 받기에 충분하다.
올여름 공개된 세번째 시즌은 '성장'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시즌이었던 것 같다.
시즌1에서는 까까머리, 시즌2에서 소년 같은 더벅머리였던 일레븐은, 시즌3에서 단발머리 소녀로 돌아왔다.
머리만 자란 것이 아니다. 일레븐과 마이클, 이놈들이 이제 다 컸다고 본격적인 연애질에 흠뻑 빠져있는데...
둘이 붙어있는 꼴을 보는 내 눈은, 방문을 10센치는 열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호퍼 서장의 눈빛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자라는 모습을 볼 때, 어른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나보다.
루카스와 맥스의 연애도 순항 중이고, 심지어 더스틴까지 과학캠프에 가서 여자친구를 만들어왔다.
혼자 아직 소년 티를 못 벗은 윌은, 여자친구 기분 풀어주기에 전전긍긍하느라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서운하다.
시즌1이 <ET>와 같은 순수한 우정을 보여줬고, 시즌2가 가족의 의미에 집중했다면, 시즌3에서는 로맨스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레븐은 비장하게만 사용했었던 자신의 능력을, 자기 속을 긁어놓은 남자친구는 지금 대체 뭘하고 있는지 궁금한, 아주 사소한 (하지만 10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사용하기도 한다. 썸과 쌈을 격렬히 오가던 호퍼와 조이스는 목숨이 달려 있는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또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 결정적인 순간, 더스틴이 여자친구 수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일단 삐진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는 애교를 시전해야만 한다. 이렇게 장르물의 속도로 뜨겁게 달려가던 이야기가 갑자기 (또 자주) 로맨스의 바다에 빠져 열기를 식히고 가는 패턴이 반복되는데, 이건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리즈를 미스테리 스릴러, 액션물로 보는 팬들은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고, 성장물로 보는, 인물들에게 정이 들어서 계속 보는 팬들은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수준이다.
시즌1, 2에서 늘 한방에 문제를 해결하던 일레븐의 능력은, 이번 시즌에선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 대신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그 때 그 때의 위기를 겨우겨우 모면해 나간다. 시즌2에서 사고만 쳤던 더스틴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루카스의 동생 에리카도 (시즌2까지만 해도 세상 꼬맹이였는데!) 제대로 한몫한다. 다음 시즌엔 윌과 루카스도 힘을 더 내줬으면 좋겠다.
더 강력해진 괴물은... 제작진 인터뷰에서도 언급됐던 것 같은데, <터미네이터> 1과 2를 자주 연상시킨다. 괴물을 다시 등장하게 한 원흉인 러시아인들은 다소 희화적으로 그려지는데, 웃기지도 무섭지도 않고 어중간하게 느껴져 아쉬웠다. 다음 시즌엔 더 매력적인 적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조카들을 보면 여름에 유난히 키가 빨리 크는 것 같다. 시즌3의 아이들도 그렇다. 여럿이 힘을 합치는 법을, 자기 한계는 자기가 정한다는 것을,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는 방법을 배운다. 무엇보다, 사랑을 향해 돌진하고, 이별을 겪으며 또 한 뼘 자란다. 시즌2의 밥의 희생만큼이나 슬픈 이별이 시즌3에도 있다. 하지만 이 아저씬 왠지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만 같은데...
결론. 시즌4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개인적으로 시즌3는 시즌1, 2보다는 조금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이만큼 귀여우면서도 멋진,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말랑말랑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시리즈는 흔치 않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