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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l 25. 2019

스페인 시골마을에서 펼쳐지는 한국식 막장드라마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의 배우들에게 한국드라마 출연을 추천합니다!

8월 1일 개봉하는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을 미리 보았다.

상영관 불이 꺼지기 전 동행한 이와 나눈 대화.

설마 저 '비밀'이란 게 (드라마를 즐겨 보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그러니까 '출생의 비밀'은 아닐 거야, 그치? 납치된 딸이 현남편이 아니라 전남친의 아이라던가 하는. 설마. 응?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마가 진짜였다는 걸 알게 된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비밀을 관객들과 공유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제목의 '누구나'에 관객도 포함된다는 것처럼. 그렇게 비밀의 공유자가 되고 나면,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렐로페 크루즈가 우리네 아침드라마 같은 스토리 속에서 울고 웃는 걸 즐기면 된다. 



결혼 후 아르헨티나로 떠났던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는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스페인 고향 마을을 찾았다. 남편은 바빠서 같이 오지 못했지만, 천방지축 사춘기 딸과 (누나에 비하면) 순둥순둥한 어린 아들은 데려왔다. 꼬장꼬장한 아버지, 정다운 언니와 형부, 남편 없이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된 조카, 결혼식을 앞두고 반짝반짝 빛나는 여동생과 제부, 반갑거나 짠내나는 가족들과의 재회가 이어진다. 소싯적 사귀었다는 걸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파코(하비에르 바르뎀)와도, 아주 쿨하게 재회한다. 파코는 마치 가족처럼 결혼식 준비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결혼식과 피로연은 남미, 아니 남유럽 문화  특유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시끌벅적하고 유쾌하게 치뤄진다. 평범한 결혼식을 했던 나로서는 부럽다는 기분이 들 정도다. 저런 결혼식이라면 신랑신부도 가족들도 평생 잊지 못하겠지 싶다. 그런데 정말, 참석한 사람 모두 평생 잊기 힘들 결혼식이 되고 말았다. 신부의 조카, 그러니까 라우라의 딸 이레네가, 모두가 즐기는 사이 쥐도새도 모르게 납치되어 버린 것이다.   


남편에게 딸의 납치 사실을 알리고 빨리 와달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라우라는 자꾸 파코에게만 의지하고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길게 끌 것 없이 출생의 비밀을 터뜨려 버린다. (이 때 몇몇 남자 관객들이 내는, 탄식과 헛웃음의 중간쯤 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16년 만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파코에게 감정이입한 것인가...) 


영어권 포스터에는, 축제가 끝나고 지옥을 헤매는 두 주인공의 얼굴이 담겨 있다.


이제 관객이 풀어야 할 문제는 '그럼 대체 범인은 누구인가'다. '출생의 비밀을 아는 자 중에 범인이 있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 영화 말미에야 드러나는 범인의 실체는 보는 사람에 따라 시시하거나 지루할 수 있을 것 같다. 범죄스릴러로서의 장르적인 재미가 출중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게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될 것 같은데, 막이 내리고 난 후 이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모든 걸 잃었는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저 아이는 이 일로 인생이 달라지겠지, 저 가족은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시시콜콜 궁금하고 염려되는 기분이 들었던 건, 그 짧은 시간동안 나도 모르게 인물들에게 정이 듬뿍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재밌게 잘 봤다"고 개운하게 영화관을 나서며 바로 잊을 수 있는 이야기와는 다른 결의 매력이 있는 영화였다.  


출생의 비밀을 들은 순간의, 한껏 클로즈업된 하비에르 바르뎀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안쓰러우면서도 웃음이 난다. 한국 가족연속극에 너무너무너무 잘 어울리는 얼굴인 것 같다. 10여년 전 한 아침드라마에서 맹활약했던 김윤석의 얼굴도 떠오르고. 


막장과 작품은 한 끗 차이다. 어쩔 땐 그 차이마저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둘 다 어떤 형태로든 관객들에게 재미를 준다는 면에서는 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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