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우리들>로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던 윤가은 감독의 차기작, <우리집>이 8월 22일 개봉한다.
두 장의 포스터가 영화에 대한 많은 걸 말해준다. 세 아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해보겠다며 비장해지다가도, 눈만 마주치면 웃음이 터져버리며 별것 아닌 장난감으로 신나게도 논다.
초등학교 5학년인 하나는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가족여행을 가는 게 '소원'이다. 이혼 위기인 부모님 사이가 여행만 다녀오면 좋아질 거라 믿기 때문이다. 남남보다 못한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으기 위해 틈만 나면 요리를 하고 밥상을 차리는 아이의 작은 손이 참 안쓰러운데, 이 손이 자기보다 어린 유미와 유진을 챙기고 먹일 땐 또 참 듬직해 보인다.
하나가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유미-유진 자매는 어른들의 보살핌 없이 둘이서만 지내고 있다. 부모님은 도배일을 하러 멀리 장기출장을 갔고, 가끔 들여다봐주기로 했다던 삼촌은 약속을 어기기 일쑤인 것 같다. 헌데 두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부재가 아니라, 곧 이사를 가야 한다는 거다. 잦은 이사로 친구 사귀는 게 힘들었던 유미는 더는 이사를 가고 싶지가 않다. 그럼 모처럼 사귄 친구인 하나 언니와도 헤어져야 하니까.
"우리 집은 대체 왜 이럴까?"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푸념하지만, 두 집의 문제는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여름방학 숙제인 '요리책 만들기'를 한 장 한 장 차곡차곡 해나가듯이, 이혼이나 이사도 뭐든 하다 보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나의 주도로 세 아이의 모험 아닌 모험들이 시작되고, 뜨거운 햇빛 아래 아이들은 건강한 작물처럼 쑥쑥 자라난다.
아이들끼리만 의지하며 생활하는 모습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를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 다운 순수한 계획과 실행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만의, 다른 영화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감수성이 느껴지는데, 그건 아이들의 감정에 깊이 이입하는 감독의 시선 때문인 것 같다. <아무도 모른다>가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풍경화 혹은 시사다큐처럼 그려내고, <개훔방>이 만화 같은 캐릭터 플레이의 재미를 줄 때, 윤가은 감독은 (어른과 다르지 않게) 갈등하고, 해결책을 찾고, 생각지 못한 결과에 당황하거나 짜증을 내고, 절망스러운 와중에도 희망을 찾는 순간순간의 마음들에 집중한다.
감독 인터뷰를 보면 본인의 어릴 때의 경험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들 속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 영화'의 캐릭터들보다 좀 더 '나'와 가까운 존재로 보인다. <우리들>을 보며, '맞아, 어릴 때도 참 머릿속이 복잡했었지. 지금 못지않게.' 하고 새삼 깨달으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걸 기억한다. <우리집>을 보고는 어린 시절 어른들의 말과 행동, 기분까지 예민하게 살폈던 순간들이 떠올라 또 새삼스러웠다. 어른이 된 나는 그걸 다 잊어버리고 아이들을 그저 양껏 먹고 실컷 뛰어놀기만 하면 되는 존재로 대했다. 사람은 참 쉽게 잊는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이 소중한 것 같다.
<우리들>의 신선한 리얼리티에 반했던 사람이라면, <우리집>은 너무 동화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주인공 하나를 맡은 김나연 배우의 연기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연기하고 있다'는 티가 난다고 느껴져서, 처음엔 조금 어색하고 불안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곧 아이들의 세상에 빠져들 수 있었고, 긴장과 해소를 오가는 이야기의 흐름이 좋아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이야기를 떠나서도 땀에 젖은 머리카락, 꾸밈없는 웃음소리, 여름 햇볕에 탄 얼굴 때문에 더 말개 보이는 눈동자 같은 것들에도 자주 감동받았다. 그 감동을 많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특별 출연한 <우리들> 배우들의 모습이 반가웠다.
감독의 다음 영화는 혹시 <우리땅>? 흐흐.
(광복절 맞이 드립이었습니다. ^^;)
두 번째 작품도 잘 해냈으니 이젠 첫 영화의 성공에 대한 부담 떨쳐내고, 감독님이 하고 싶은 얘기 또 들려달라고, 기다리겠다고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