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보다 더 조용한 거실

1부 - 부정: 아무 일도 없었다는 날의 바람

by 엘리킴


TV는 꺼져 있었다.
리모컨은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있었고
컵에는 아직 물이 반쯤 남아 있었다.


그 사람의 슬리퍼는
문가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의 신문은
‘읽는 중’이라는 모양으로 접혀 있었다.


그날,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채
평소처럼 현관을 열고
그 거실을 지나쳤다.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았다.
그가 잠깐 나간 거라 생각했고
혹은, 그냥 다른 방에 있을 거라 믿었다.


거실은 너무 조용해서,
조용하다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정적이 단단히 고여 있었다.


그건 무덤의 정적과는 달랐다.
무덤은 사람이 떠난 곳이었지만
거실은 사람이 막 자리를 비운 곳 같았다.
냄새도, 온기도, 흐름도
모두 그대로였기 때문에
나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방 안에서도,
핸드폰에서도,
부엌에서도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여기가 무덤보다 더 조용한 이유는
죽음이 아직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걸.


죽음은 장례식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소리 없는 거실,
살아 있는 사람의 자리를 흉내 내는 공간,
텅 빈 컵처럼
‘방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다는 흔적’으로
천천히 시작된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그 사람이 보는 프로그램을
무심히 켰고
웃지도, 울지도 않은 채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틀어놨다.


말도 없이 앉아 있다 보니
내가 아니라
방이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무언가가 끝난 거라면
적어도 소리가 났을 텐데
그날 거실은
무엇 하나도 부서지지 않은 채
멈춰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부르면
진짜로 없다는 걸
알아버릴까 봐.






고백: “나는 아직도 그 방의 조용함이, 끝이 아니라 휴식 같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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