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도 사라지는 것들

제1부. 살아남은 자

by 엘리킴


말했다
몇 번이고
문장을 다듬고
소리를 조심스럽게 눌러 담아


들릴 만큼만
부서지지 않을 만큼만
누군가에게 닿을 만큼만


그러나
돌아온 건 없었다


목소리는 공기를 밀었고

단어는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스스로 꺼졌다


그림자를 향해 말을 걸었고

창문을 향해 불렀고
차가운 그릇을 붙잡고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말하면 남을 줄 알았다
기록이 될 줄 알았고
이름을 부르면
그가 살아 있는 것 같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건
말한 순간부터 사라졌다
소리는 잦아들었고
기억은 고요해졌다
말은 아무것도 붙잡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것이
조금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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