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탈출 경로

제3부. 계획

by 엘리킴


첫 번째는 계단이었다
누가 따라오면 속도를 줄이고
무너지듯 넘어질 준비를 했다
사고처럼 보이게


두 번째는 뒷문
잠금장치를 풀어두었다
이틀 전 새벽
경보음을 꺼두는 법을 확인했다


세 번째는 지하주차장
CCTV 각도를 계산했고
그림자가 닿지 않는 구역에
운전석 문을 열어두었다


네 번째는 화장실 창문
작지만 빠져나갈 수 있다
몸을 숙이고 다리를 먼저 뺀다
양쪽 벽은 맨살로 기어야 한다


다섯 번째는 인파
퇴근길 지하철역
사람들 사이로 섞이기만 하면
그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여섯 번째는 옥상
문은 잠기지 않았다
낙하하지 않는다
다만, 망설이는 이들을 흉내 내기 위한 경로


일곱 번째는 침묵
말하지 않고
돌아서고
지워지는 것
이건 모든 경로가 실패했을 때 선택하는 최후다


나는
일곱 개의 탈출 경로를 준비했다
하지만 하나도 사용하지 않길 바랐다
그가 쓰러진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게 가장 간단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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