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가까이에서 본 얼굴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말》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이름들

by 엘리킴

나는 눈을 낮추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고개를 숙이기 전까지
이 도시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마주치는 건
바닥에 눌린 신발창 자국,

껌처럼 굳은 검은 말들,
그리고 누군가가 쏟고 간 커피의 부스러진 냄새다.


사람들은 종종 나를 넘는다.
나는 넘겨진다.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아니,
내가 눈을 들지 않기 위해서.


나는 닦는다.
닦는 건 얼룩이지만
닦이지 않는 건 시간이다.


손목은 무뎌지고,
천은 마르지 않는다.
같은 곳을 세 번째 닦을 때쯤
나는 그날의 날씨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바닥은 기억한다.
구겨진 소지품,
흘린 영수증,
두 사람 사이의 거리,
깨진 이어폰.


나는 아무 말 없이 지나친
그들의 대화 조각을 모른 척하며
그들이 흘리고 간 흔적만 지운다.


가끔은 나도 궁금하다.
왜 나는 자꾸 아래를 보고,
왜 그들은 자꾸 위만 볼까.


내가 마주치는 가장 많은 얼굴은
내가 서 있는 방향의 반대에 있다.
바닥 가까이에서만 보이는 얼굴들.
화가 난,
지친,
혹은 그냥 아무 표정도 없는,
그러나 나보다 더 낮게 떨어진 감정들.


나는 그 표정들을 쓸어담는다.

걸레가 닿지 못한 모서리마다
조금씩 나도 남는다.


깨끗해질수록 나는 사라진다.
보이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나는 조용히 다음 칸으로 이동한다.


내가 닦고 있는 건 바닥이 아니라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하루다.










from. 지하철 청소노동자

ChatGPT Image 2025년 7월 22일 오후 07_20_1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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