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말》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이름들
손이 먼저 깨어난다.
눈보다, 허리보다
오늘도 손이 먼저 일을 시작한다.
다 쓰지 않은 광고지를
눈앞으로 가져와 접는다.
모서리를 맞춰 쌓는 게 습관이라
어떤 날은 나도 종이처럼 네모지고 싶어진다.
카트는 소리 없이 끌려가지만
사람들은 꼭 소리를 낸다.
"위험해요!"
"거기 지나가면 안 돼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더 조용히 골목으로 방향을 튼다.
바람이 불면
내가 끄는 것들이 아니라
내가 끌려가는 느낌이 든다.
덜컹, 툭, 딸깍—
모퉁이마다 내 삶은 접힌다.
무게는 가볍다.
진짜로.
페트병, 박스, 찢긴 전단지.
무거운 건 그걸 모은 내 등이 아니라,
그걸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언젠가 한 아이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종이 줍는 사람이에요?"
나는 웃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이를 줍지 않는다.
종이로부터 사람을 모은다.
이 사람은 누구의 생수였고,
저건 누군가의 택배였으며,
이 박스는 오래된 냉장고였을 것이다.
나는 사라진 소비의 껍데기를
새벽마다 수습한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대부분
나를 못 본다.
보아도 지나친다.
내게는 “죄송합니다” 대신
사뿐한 발소리가 인사다.
가끔은 내 손에 밴 종이 냄새를 맡고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안다.
죽지 않은 삶은,
쓰레기처럼 가끔 무시되고
가끔만 분류된다.
하지만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박스가 휘고, 비닐이 날려도
나는 내 중심을 놓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끝내는 건
등이 아니라 손이다.
손이 다 닿았을 때,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누구도 날 불러주진 않지만
나도 버려지지 않기 위해
버려진 것들을 모은다.
from. 폐지 수집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