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말》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이름들
나는 언제부턴가
눈으로 듣는 법을 배웠다.
말이 입을 지나기 전에
표정으로 오는 순간이 있다.
입술이 두 번 접히면 ‘아니야’,
눈꼬리가 들리면 ‘괜찮아’,
손끝이 잠깐 흔들리면
‘지금 말해도 돼’라는 뜻이다.
이해보다 먼저 오는 건 감각이다.
소리는 없지만
모든 게 들린다.
깊은 숨,
멈칫하는 손,
무릎이 조금 더 앞으로 나가는 걸음.
그 안에 담긴 말은
종이보다 얇고
유리보다 잘 부서진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 움직인다.
고개를 끄덕이는 일,
눈을 맞추는 일,
한 번 더 입술을 읽는 일,
그건 모든 대화의 시작이다.
가끔은
상대의 말을 나보다 먼저 이해할 때가 있다.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아도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걸
먼저 느낄 수 있을 때.
그럴 땐 내가 대신 웃는다.
그가 웃을 수 있게.
혹은 내가 먼저 놀란다.
그가 뒤늦게 반응하지 않게.
나는 두 사람의 사이에서
소리 없는 통역을 한다.
말은 너무 빨리 지나가지만
눈빛은 천천히 머문다.
나는 그 머무름을 붙잡고
마음에 번역해둔다.
때론 이 모든 게
너무 조용해서
내 안에 쌓인 말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창밖을 오래 본다.
조용히 바람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나는 오늘의 대화를 마무리한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들을 수 있냐고
나는 그냥 말했다
“눈으로 들으면 돼요”
아무도 다시 묻지 않았다
그건 말보다 더 정확한 대답이었으니까
from. 청각장애 보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