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말》 사라진 몸, 남겨진 하루
책상 위에는 늘 종이가 있다.
펼치지도, 접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있는
하얀 얼굴들.
무언가를 적으려다가
멈춘 손,
다 적고도
보내지 못한 마음.
글자가 너무 선명하면
내가 더 흐릿해지고
경험이 너무 적으면
내 시간이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이름부터 다시 쓴다.
혹시, 이 이름이라면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붙지 않은 것들은
붙잡지 않는다지만
붙들리지 못한 이름은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삭제하고, 다시 쓰고,
그마저도 저장하지 못하고
창을 닫는다.
이력서는 종이가 아니라
나의 반복이었다.
가짜 자신감, 애매한 특기,
누군가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거짓의 말들.
나를 증명하는 서류는
점점 나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이력서를 찢지 못했다.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없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책상 앞에 앉아,
하얀 종이를 바라본다.
언젠가 이 종이에
나를 써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적지 못한 말들을
마음 안에서 다시 되뇐다.
쓰지 못한 오늘이
또 하루 더 늘어나고 있다.
from. 실직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