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끝났지만 장르는 남았다

2부 – 기억은 가끔 나를 안고 울었다

by 엘리킴


우리는 끝났지만
장르는 남았어.


우리의 시작은 로맨스였고
중간엔 약간의 코미디,
후반부엔 서스펜스 같은 긴장감도 있었지.


그리고 마지막은
누가 먼저였는지도 모를
조용한 퇴장이었어.


엔딩 크레딧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사라졌는데


희한하게도
그때 우리가 살았던 장르는
아직도 내 일상 곳곳에서
재생되고 있어.


우리 처음 갔던 영화관 앞을 지날 때마다
그날의 장면이 다시 틀어지고,


익숙한 드라마 배경음이
문득 카페에서 흘러나오면
우리 대사가 떠올라.


누가 쓰지도 않았는데
우리 이야기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계속 연재 중이야.


‘재회’가 있을까
‘에필로그’가 필요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한 채
한 페이지에 멈춰 있어.


너는 새 장르를 시작했겠지.
다른 인물과,
다른 배경으로.


하지만 나는
네가 던졌던 대사 하나,
그때 웃으며 하던 말투 하나에
계속 되감기하고 있어.


어느 날은 드라마처럼 감성에 젖고
어느 날은 다큐처럼
너를 분석하다가
결국은
멜로 영화처럼 울게 되더라.


진짜 끝난 건
관계였을 뿐


이 감정은
아직
이야기 중이었거든.


우리는 끝났지만
그 장르가 내 안에서
지워지지 않아서,


지금도 가끔
그 장르의 조명을 켜고
너 없는 무대에서
혼자 연기하곤 해.


이건 연애가 아니라
기억의 영화.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내 안에선
아직도 너와 함께인
그 장르가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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