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에서 찾은 글 2021. 09. 03
어렸을 적 기억 중에 어떤 상황에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깨달았던(어떤 영감이 스쳤던) 찰나의 순간이 있습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기 전 순간 뇌 속에 기억이 입력이 되듯이요. 어떨 땐 그 향기까지도 기억이 나는 그런 경험이요.
아이가 반복해서 나비 공원에 가는 이유는 무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이 뇌에 굉장한 행복감을 주니 반복해서 새기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확실히 영혼의 깨달음은 언어로는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때로는 어린이의 순수한 표현에 놀라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동화?) 퉁실이와 나비의 대화는 인생의 목표를 향한 속도(목적 달성)와 방향(가치) 대해 말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넘어 나비의 부활은 '때'에 대해 말하기도 합니다. 때는 거스를 수 없는 신의 섭리이죠. 때는 다른 말로 ‘신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애벌레에서 바로 나비가 될 수 없고,
또 정해진 시간, 즉 때를 정확하게 지켜 변화를 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삼아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시고 가르치심을 느낍니다.
유럽의 성당 예배당 난간 틈틈이 글을 배우지 못한 서민에게도 말씀(죄의 항목)을 가르치기 위해 그림을 활용했던 것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나비의 가장 큰 특징은 '변화'일 것입니다.
육신이 죽지 않고 부활할 것을 상징하는 데에, 계란과 나비가 가장 많이 사용되죠.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상징'입니다.
계란이 알을 깨고 병아리로 부화하듯이
육신의 일생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을 만드는 것입니다.
육과 영혼의 세계는 엄연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를 영혼의 세계를 간접경험(성경, 책, 꿈 등)하는 자는 절대적으로 이해하고 믿지만, 그렇지 못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저는 이것이 생각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감각을 깨워 절대자를 찾으면 느껴지고, 찾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영혼의 세계니까요.
마치 전파가 맞아야 통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자폐가 있어도 자연을 책 삼아 큰 배움을 할 줄 아는 아이인 것 같아요. 사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