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고 앞장서는 일에 두려움이 많은 나는 손이 느리다. 마음이 묶여 있으니 행동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다.
해야 되는 이유를 모르면 더욱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고, 타인에게 한 번 굳혀진 이미지를 깨는 것에는 스스로가 더욱 힘들어하는 편인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비행기 업무 중 Galley(선박이나 비행기의 주방) 업무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근력이 약해 이등석부터 서비스되는 차이나 웨어는 8개 이상 올라가면 팔이 흔들거렸다.
삼등석에서 티팟(Tea Pot)을 처음 들었을 때도 손이 후들거려서 혹여나 뜨거운 물이 넘칠까 팔힘으로도 모자라서 겨드랑이에 팔을 딱 붙이고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서비스했던 기억이 있다. 에고고......
당시에는 커피는 인기가 많았지만 차(녹차)를 원하시는 승객이 별로 없었기에, 누군가 차를 달라고 하면 무게를 덜어내는 기쁨에 얼른 달려가 서비스했을 정도였다.
주니어(후배) 승무원이 차를 서비스한다.
물론 무거워서는 아니고, 업무 효율 때문이다.
그러한 성향에 더해 ‘진급’에 눈이 뜨이지 않아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도 몰랐고, 성격 탓에 선배나 상사들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못해 정보도 부족했고 업무도 그다지 눈에 띄게 잘하지 못했다. 당연히 동료들과의 관계도 그냥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다.
당시에는 신입 교육 이후 국내선 비행을 3개월 정도 하고 바로 국제선 교육을 한 달 받은 이후에 국제선을 탔다.
그리고 입사 약 일 년 후에 이등석 교육을 받는데, 바로 갤리 업무를 위한 교육이다.
이등석인 비즈니스 업무도 처음인데 서비스를 준비하는 업무를 하려니 비행 전 날부터 긴장의 연속이다.
동료들 얘기를 더하면, 비행 전 날은 가족들이 피해 다니고, 남자 친구에게도 비행 끝나고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다 헤어지는 커플이 많을 정도였다.
정말이지 힘든 업무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진급을 못하니 계속해서 갤리 업무를 못 벗어나는 것이다.
당시에는 왕복 갤리 업무를 맡았는데, 현재는 한 번만 하도록 조정되었다. 그만큼 업무 강도가 높다.
긴장한 몸으로 무거운 것을 들고 나르니 착륙 후에는 근육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겨울이면 호텔 내 온풍기를 틀어도 건조함만 더해지지 그리 따듯하지 않아서 몸이 더욱 굳었다.
몇 년 후 이런 성격이지만 나를 세밀하게 보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좋게 평가해주는 상사를 만나 진급을 하게 되었는데, 이등석 대면 서비스를 리드하는 업무를 하다가 다시 일등석 서비스 리드하는 업무로 선발이 되었다. 당시 ‘선발’하는 것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도 많았으나 일등석 승객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이러한 제도도 없어졌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느 주니어의 실수로 이등석에서 고객 불만이 발생하자, 회장님께서 ‘시니어가 갤리 업무를 하도록 하라’는 지시 한마디에 업무 배정 기준이 변경되었고 다시 갤리 업무를 하게 되었다.
헉! 그동안 갤리 업무를 벗어나 한결 마음 편하게 비행하나 했는데, 다시 갤리를 맡으라니...ㅜㅜ
정말이지 너~무 억울하고 짜증이 났다.
게다가 A380 도입으로 비즈니스 좌석 수가 늘어나면서 경력이 오래된 승무원들도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였다.
나 역시 너무 힘들었지만 어찌어찌 적응을 해나갔다.
그동안 나는 수석 셰프들이 준비해준 반 조리된 스테이크를 굽는데 달인이 됐다고나 할까?
(스테이크 얘기하려고 했는데, 경력 썰이 너무 길어 ㅜ)
신입일 때는 피가 나는 고기는 좀 저어 됐었는데, 이제는 미디엄 레어가 맛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힘 상태 rare를 주문하는 사람에는 ‘성격 까칠한 거 아닌지?!’ 하는 편견이 있다.
Rare는 준비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반조리되어 냉동 상태로 실리는 고기를 다시 녹이고 겉만 익히면서 안쪽은 rare 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또 속까지 적당히 따뜻해야 한다는 게 맹점이다.
오랜만에 마트에 가서 호주산 레스토랑용 안심을 사서(‘레스토랑용’이라고 표기된 걸 보니 코로나로 인해 외식 산업이 축소되자 마트로 유통되는 것 같다.) 기분을 내보았다.
오랜만이라 즐겨먹던 미디엄에서 조금 더 구웠다.
그래도 안심이라 부드럽다.
소스는 백설에서 나오는 스테이크 소스인데, 비행기에서 서비스하는 스테이크 소스인 [A1]을 살까 하다가 국산 브랜드를 구매해보았다. A1이 진한 육수에 감칠맛이 더 난다면 백설은 새콤달콤한 맛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