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불어오는 방향
데이터 분석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는 고객의 취향을 기반으로 한 결과를 만들 때입니다. 취향이란 것은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의 여지를 줍니다. 프레임 자체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죠.
책을 많이 사는 고객이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을 알고 스토리를 좋아하는 고객이라고 단편적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어떤 책과 어떤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아날로그 감성의 고객부터 만화를 좋아하는 고객, 다큐멘터리 선호 고객 등 다른 취향으로 나눠지게 됩니다. 이 고객이 LP 구매까지 활발하게 이뤄지면 새로 알아낸 정보에 따라 고객을 어떻게 보느냐의 해석은 달라집니다.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무엇이냐에 따라 원점에서 다시 프레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가용할 수 있는 속성을 왕창 넣고 뭔가를 만들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들어가는 인풋을 떠나 나오는 결과를 어떻게 조합하는지는 또 다른 숙제입니다. 협업 필터링 같은 추천 알고리즘은 개인에게 적합한 것을 유통하게는 만들 수 있지만 고객의 취향을 토대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정보는 효과적으로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조업의 상품 기획 부서는 '실태 조사'를 합니다. 고객의 가정에 방문하여 무엇을 쓰는지, 왜 샀는지, 불편함은 없는지 물어보는 것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이 뭘 입고 있는지 확인하고 마트에 가서 유통 담당자에게 필요한 것과 고객이 찾는 것을 확인합니다. 소비재 기업 중심의 이런 실태 조사는 과거의 영광이라는 후광 속에서 아직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데이터에 대한 의심 없는 신뢰는 아무런 전략적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합니다. 몇 년 전에 길을 지나가다 누가 제 손목시계를 보여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시계를 만드는 회사의 디자이너인 것 같았습니다. 시계의 모양과 구입 경위를 몇 번 묻고는 종이에다 쓰고 고맙다고 하고 사라진 기억이 납니다. 나름의 실태 조사 종류인 것 같았는데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고객이 선호하는 아이템을 찾아 나서는 것은 최근의 동향을 알아서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그걸 몇 년 전에 구입했는지, 만족도는 어떤지, 최근에 구매하고 싶은 종류는 어떤 게 있는지 등을 알려고 하지 않고 단순히 물리적이고 계량적으로만 트렌드를 대하고 있습니다. 흐릿한 데이터들로 만든 인사이트는 변화 추세가 느릴 수밖에 없고 재고를 양산하는 결정을 내릴 뿐입니다.
고객은 나름의 가치관을 갖고 가치관이라는 필터 속에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어떤 경로를 통해 얻고 그중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채널을 나름대로 여과하여 소비합니다. 일련의 과정의 민감성 없는 조사는 이런 디테일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트렌드는 그 크기와 속도가 제각각이어서 감으로만 하는 것도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금손 고객'을 따로 분류해두는 것입니다. 흔히 고객 중심의 데이터는 고객의 구매 정보나 기본 정보를 통해 고객 등급을 만들고 프로모션을 하는 형태의 CRM 데이터로 사용합니다. 더 나아가면 어느 고객이 더 수익성이 높은지, 최근 휴면 상태에 들어간 고객은 누구인지 이런 식의 재무적이고 정량적인 접근에 그칩니다. 정 반대의 상품 기획에 관련된 데이터는 어떻습니까? 과거의 실적을 놓고 어떤 유행이 오고 있는지 담당자가 정리하는 것이나 최근 키워드 중에 핫한 게 무엇인지 포탈이나 유명 트렌드 서적을 참고해 정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데이터는 우리 브랜드의 고객을 말한다고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금손 고객을 따로 추출하는 것은 우리 브랜드를 사용하는 선도 고객의 취향을 누구에게 확인할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의 효용은 제조업이나 유통업이나 같습니다.
분석 프레임이 하나일 수는 없습니다. 업태와 업계에서의 포지셔닝에 따라 달라져야 함은 물론입니다. 개인적으로 많이 활용하는 프레임들은 고객 단위로 '구매 상품의 판매율 - 구매량', '구매 상품의 판매율 - 구매시기', '고객의 최근 0기간 구매 상품의 판매율 변화', '구매 상품의 판매율 - 신규 상품' 등입니다.
위에 샘플로 제시한 프레임을 한 번 보기로 하죠. 생산 제품의 모델의 출시 기간과 고객이 구매한 상품의 판매율을 특정 기간을 잘라서 데이터를 만들어 사분면으로 시각화한 내용입니다. 사분면의 기준은 평균일 수도 있고 흔히 말하는 유의 수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이 사분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성격의 기간계에서 데이터를 모아 와야 합니다. 상품의 제조 데이터, 고객의 구매 데이터, 상품의 판매 데이터 등이 필요하겠네요.
이 사분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에 앞서 누구를 대상으로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가입니다. 각 고객군마다 회사에 주는 수익이 현재 기준으로 다를 것입니다. 보통은 B 고객군을 주목합니다. 새로운 상품을 많이 사고 실제로 구매하는 모델이 높은 판매율을 보이는, 브랜드에 맞는 금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규 상품의 출시 개수가 적다면 이렇게 프레임을 구분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이나 음반, 의류, 식품, 화장품, 소비재 등 다품종을 관리하는 제조업이나 유통업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제품 속에서 방향을 찾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고객도 중요합니다. A 고객군은 흔히 말하는 스테디셀러를 선호하는 고객이며 D 고객군이 선호하는 제품이 현재는 판매율이 낮지만 워낙 얼리어답터일 수 있기에 이 고객군은 더욱 세밀하게 나누어서 접근해야 합니다. C 고객군은 이미 검증이 끝난 고객군입니다. 보통 가격에 민감한 고객일 수 있으나 역량이 부족하면 제조 기획에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고객군입니다.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B 혹은 D 고객군 중 경쟁력 있는 고객을 찾아 취향의 상태와 취향이 생성되는 정보 유입의 경로를 찾아내고 이 고객들이 최근 관심을 가지게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실태 조사를 하고 후행적으로 시장에 접근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브랜딩과 데이터 사이에서 적절한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내가 없는 데이터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고 반대는 고질적인 직관에 의존한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사일로에서 꺼내 조합하고 나름의 관점을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실험 비용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지금 필요한 고객을 찾기 위해 차원을 더 넓히고 통계 기법을 써가면서 적절한 의사결정 기준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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