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한국 직장인
작년에 책 [회사언어 번역기]를 출간하고 나서 출판사에 미안한 게 있습니다. 출간 이후 홍보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입니다. 요즘은 출간 이후 당연한 절차가 되어 버린 언론 인터뷰나 저자 강의, 팬 미팅 모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한 것도, 홍보 관련 제의가 없어서 안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국내 메이저 신문사 인터뷰, 최대 직능 교육 기관 강의 제의, 팟캐스트 출연 등 여러 건의 홍보할 수 있는 제의를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설 수 없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공개되는 게 부담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현역 직장인이 회사 이야기를 기반으로 경영에 대해 다룬다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언론 자체에 거론되는 걸 병적으로 꺼려하는 보수적인 기업에서 회사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는 것 자체가 내부자의 고발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유명해지는 것에 대한 반감도 있습니다. '개인보다 조직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은 누구의 이름이 유명해지는 것을 극도로 혐오합니다. 대외활동을 하는 것 자체를 불순한 의도로 보는 시각이 젊은 중간관리층에서조차 만연해있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에 글을 쓰고 책을 썼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높은 임원으로 회사에 있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직장인에게 대외활동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면 되었습니다. 메시지를 나누는 것, 메시지를 통해 지금의 기업을 이후에 다시 만들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오늘도 강의 제안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중하게 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글로 쓰는 것은 가능합니다. 메시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안 주시는 것 자체는 너무나 감사하고 분에 넘치는 행복입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개인이 유명해지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도 갖지 않도록 살아왔습니다. 왜 한국의 월급쟁이는 스타가 없는 걸까요? 정치로 인해 높아진 직급이 신뢰로 남고 실력과 경력은 왜 직함에 비해 저평가받을까요? 할 수 있는 자기계발을 조직 밖으로 사회로 발산하는 것이 나쁜 것일까요? 제한된 꿈이 제한된 준비를 만듭니다. 길들여지는 것이죠.
저도 언젠가는 지금의 직장도 월급쟁이도 그만둘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몇 자라도 졸필이라도 메시지를 더 남길 수밖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