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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Mar 20. 2019

직장인의 공부

강화도와 마포를 매일 오가는 할머니를 만나며

더 배우지 않고 과거의 것을 써먹기만 하는 '글라이딩(gliding)'으로 버틸 회사는 이제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에 금융과 IT 정도가 늘 공부해야만 하는 산업으로 인식되었다면 지금은 엔지니어부터 영업까지 산업을 가리지 않고 배우지 않으면 낙오되기 쉬운 무한 경쟁사회, 무한 학습사회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주변에도 배워야 한다는 중압감에 배움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괴로운 동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다고 배우지 않으면 몇 년, 몇 달만에 새로운 기술이 과거를 집어삼킬 게 눈에 보입니다. 이미 누릴 기득권을 다 누린 어르신들을 빼면 대부분 이 명제 앞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저도 새로운 학습에 너무 시달리고 있습니다. 누가 배우라고 등 떠밀지는 않지만 업계 사람들이나 후배들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긴장됩니다. 웃픈 것은 선배들은 많이들 놀고 계신다는 것이죠. 이미 커리어의 동기부여를 잃어버린 채 현실적인 실속 버튼을 눌러 버렸네요.



그러던 차에 퇴근길 버스에서 모르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흰머리가 성성한, 저희 부모님 뻘보다 더 되어 보이는 할머니는 광역버스에서 제게 선뜻 말을 건네셨습니다. 처음에는 버스에서 흔히 말 거는, 제가 편견을 갖고 있는 타입의 어른인 줄 알았지만 젊잖은 할머니는 버스 모니터에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극히 차분하게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은 드문 일이지만, '인정(人情)'이란 단어가 효력이 컸을 때는 흔한 일이었기에 어릴 때 추억도 생각나고 해서 기꺼이 말 벗이 되어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이어 내어놓는 말들에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팔순이 다 된 연세에 중학교 공부를 하러 매일 댁인 강화도에서 학교가 있는 마포까지 이 광역버스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정인 저도 힘에 버거운 장거리 버스를 저보다 훨씬 멀리 타고 다니신다니 학업의 열정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리고선 가방을 열어 주섬주섬 노트 필기한 것 등을 보여주시는데 영어 단어와 뜻을 노트에 가지런히 쓰신 것을 보고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배우는 게 좋아. 집에 영감하고 둘이 주저앉아 있는 게 싫더라고. 영감이 밥 차려달라고 공부 가는 거 반대하지만 그래도 나는 배우는 게 좋아서 나가기로 했어. 버스타는 거 한 네 달은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일년 정도 지나니까 그래도 할만 하더라고. 이 나이에 배워 뭐 할까 싶지만은 어릴 때 못 배운 걸 지금이라도 해보고 싶어."



50년대 중반에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인생의 굴곡에 학업을 더 잇지 못한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둘이 사는 집에서 와이파이로 연결해 휴대폰으로 요즘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배운 게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중학교 졸업이 쉽지 않겠다고 다소 피곤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지만, 같은 학교를 다니는 주변 친구분들이 대학교 가는 게 꿈이고 누구는 심리학을 하는 게 목표고 주변에 있는 대학교에서 재미있는 전공 과정이 있는 것도 술술 알려주실 땐 눈에 확신이 차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배우는 게 뭘까', '인생이 결국 뭘까'에 대한 생각을 혼자 많이 했습니다. 20대 취직할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30대 중후반을 넘어가며 보이고, 또 지금 보이지 않던 게 50대가 되면 보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할머니의 순수한 기쁨이 제게도 밀려오는 거 같았습니다. 그저 알아가는 게 즐거운 어린아이처럼, 그저 새로운 도전이 신나는 것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지친 자신을 보면서 뭔가 깨달음 같은 게 생겼죠.



여러분도 별 것 아닌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양한 생각들이 드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겐 아직 피로한 현실이겠지만 더 멀리 본다면 이 시간이 어떻게 기억될까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내일은 이런 순수한 앎의 기쁨이 동기부여의 엔진이 되길 바라봅니다. 오늘은 딱딱 떨어지는 내용이 아닌 제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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