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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Jan 25. 2019

직장인의 글쓰기

회사원이 일기를 쓰면서 벌어지기 시작한 일들

저는 11년 차 직장인입니다. 그리고 책 한 권을 낸 작가입니다. 제 브런치를 예전부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근래 몇 년이 안됩니다. 아직 만으로 3년이 채 안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글을 쓸 시간과 힘이 없었습니다. 평일에 집에 오면 밤 11시가 되는 게 대다수였고 이런 삶에서 짬을 내어 생산활동을 더 한다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글 쓰기는 어릴 때 억지로 쓴 일기나 취업을 하면서 쓴 자기소개서 정도가 인생의 글쓰기로 기억나는 정도였죠. 대부분 그렇듯요.



그런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바빴을 때였습니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어느 선진국의 이야기인 것처럼 주당 80시간을 가뿐하게 넘는 업무량을 할 때였죠.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을 통틀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장 힘든 시간이었던 이때를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까, 힘들면서 내게 남는 것은 뭘까에 대해 남기고자 한 게 글쓰기의 동기였습니다.



처음에는 평일에 집에 와서 무모하게 글을 썼습니다. 워드 파일에 몇 단락씩 쓴 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새벽이 되고 다음 날 회사에서 피로는 말할 필요도 없는 수준이 되었죠. 그래서 주말에 왕창 쓰는 것으로 비중을 조정했습니다. 평일은 며칠만 쓰고 주로 주말에 힘을 모아 현재를 남겼습니다. 후배에게 남겨주고 싶은 업무나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였습니다. 나는 전임자처럼 사라져도 누군가가 이 일을 또 반복해서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 같았거든요. 처음에 워드로 혼자 쓰다가 너무 회사 비판적인 내용이 많아 회사에서 이걸 나누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범용적으로 담담하게 쓰고 많이 쓰기 시작하는 브런치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https://brunch.co.kr/@lunarshore/44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글입니다]






직장인은 글을 쓰는 게 좋습니다. 글을 쓰면 자기 정리가 됩니다. 뭘 했는지, 뭘 잘하는지, 다음에 다시 하면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지 정리가 됩니다. 그래서 일기처럼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날그날의 회사 일을 몇 줄로 간단하게 쓰는 겁니다. 브런치에 올린 글들도 그 파편들을 모아 몇 개씩 엮어서 하나의 글을 만드는 식입니다. 매일이 힘든 건 당연합니다. 가끔 써도 됩니다. 저도 일주일씩 안 쓰다가 회사에 뭔가 일이 터지면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한 번에 올린 적도 많습니다. 글쓰기는 직장인 자신을 위한 수단이 됩니다.



모인 글은 매뉴얼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경력 기술서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글에 은연중에 묻어나는 언어를 통해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부지 중에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리어의 갈래길은 여러 모양으로 있습니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적어 막상 뭔가로 나가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죠. 이때 축적된 글쓰기 내용은 자신의 지향점을 스스로 알려줍니다.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이 많을수록 이 내용은 더 구체적으로 잡히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꼭 갖춰서 쓸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 수단, 내용을 격을 잡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 레퍼런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보고서가 아니기에 레퍼런스보다는 글쓴이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배제된 시장에 대한 개황과 이론 기술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나만의 글쓰기는 직장인 개인의 인생이 녹아져야 고유한 내용이 됩니다. 그게 내 사진이고 내 이력이고 내 철학이니까요. 다소 근거가 부족해도 일단 생각을 쓰십시오. 만약 글을 토대로 돈 받는 콘텐츠를 만든다면 사례는 그때 가서 더 붙여도 문제없습니다. 어차피 글쓰기의 목적은 일에 대한 나의 생각 정리니까요.



정리된 생각이 늘어날수록 업무 철학이 생깁니다. 전에는 윗사람을 따라 하고 회사 가치관만을 생각한 내가 경험을 통한 나만의 관점을 잡고 일을 볼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을 거치며 정반합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일어납니다. 기존 업무에 대한 정리, 기존 업무에서 생긴 돌아볼 내용들, 새로운 대안이라고 스스로 찾은 방식들을 정리하면서 자신만의 일을 바라보는 눈이 자랍니다. 어떤 것은 자율성이기도 하고 속도일 수도 있고 정보의 원천과 공유, 신시장에 대한 프레임, 기업 문화일 수도 있습니다. 정리된 생각은 개인을 '회사원'에서 '직업인'으로 정체성을 변화시키게 만듭니다. 거기서 혁신적인 생각을 주저 없이 정리하고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글쓰기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영상으로 남겨도 되고 누구와 나누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축적과 활용입니다. 저는 글쓰기가 상대적으로 좋아 이것을 택했을 뿐입니다. 회사 일에 대한 생각만 따로 정리하는 것은 어떤 수단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책을 쓸 생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목표가 크면 쉽고 재미있고 솔직하게 글쓰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매일 자신만의 생각을 쓰다 보면 몇 가지 주제들로 내용들이 모이는 게 보이고 그것을 정리해서 일관된 톤으로 정리하면 장문의 글이 되면서 책이 되기도 합니다. 저도 책을 내기 전에는 책을 쓸 생각으로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쓸 때 어려운 시간이 있었지만요. 일단 쓰고 꾸준히 모이면 그때 다음 스텝을 생각해 봐도 늦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맞는 일인가 하는 것이죠. 곧 쓰고 재미없으면 다른 수단을 택하면 됩니다.



이왕 글을 쓰려면 브런치나 포스트 같은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수단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생각을 공유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자신이 변화되기도 합니다. 업무에 대한 업계 표준에 대한 의견이나 다른 분야에서 활용되는 사례를 나누는 것은 단순한 공감 이상의 힘을 글쓴이에게 줍니다. 큰 회사에서 갓 오픈한 글쓰기 솔루션이면 더 추천합니다. 글이 알려지는 기회가 더 많을 수 있을 테니까요.



글은 자기만족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자신이 만족하는 대로 써야 합니다. 모범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어른의 일기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일에 대해 자신의 방식대로 남겨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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