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기술서를 수정하기 전에
새해를 시작하면서 지난 몇 년간의 커리어를 다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해 동안 경력으로 쓸만한 것이 무엇이 추가되었는지 정리하면서 경력 기술서를 최종 수정하는 것으로 마감 짓는 일련의 시간이었습니다.
보통 저 정도 연차의 경력자가 되면 나름의 방법으로 커리어 피드백을 합니다. 커리어 피드백은 과거의 정리부터 미래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주기적으로 월에 한 번 할 수도 있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마치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의 경력도 전체 경력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쓰임이 달리 보이고 포장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새로운 회귀식을 그리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다시 정리하고 미래의 지향점을 살짝 이동하는 것이 이런 과정에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비슷한 직무지만 엄연히 다른 직무로 직무의 방향이 바뀌는 경우도 저처럼 벌어집니다. 또 다음 스텝을 위해 어떤 기술을 준비해야 하는지 기업의 경영계획처럼 연구해야 할 지식, 준비해야 할 역량도 정리가 됩니다. 준비 과정에 개인의 시간과 재무적 변화가 따르지만 그것까지 함께 다루기에는 커리어 피드백의 범위가 너무 방대해지죠.
새해를 맞아 제가 하는 커리어 피드백의 과정을 공유합니다.
저는 프랭클린 플래너를 씁니다. 처음에는 쓰고 싶어서 쓴 것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쓰다 보니 몸에 배여서 생산성이 좋아 계속 씁니다. 굳이 프랭클린 플래너가 아니더라도 보통 연 목표, 월간 일정, 일간 일정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는 많습니다. 저는 월간 일정에는 계획을 쓰고 일간 일정에는 실제 한 일만 적습니다. 월간 일정에 있는 계획 중 실제 한 일은 했는지 안 했는지, 변경되었으면 언제 했는지 표기를 별도로 합니다.
과거 기록을 볼 때는 일간 일정은 다 볼 수도 없고 봐도 너무 낱개여서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냥 추억 소환 정도죠. 일간 일정을 정리한 페이지들은 창고에 보관만 합니다. 월간 일정은 지난 몇 년을 따로 모아 종종 보면서 커리어 피드백 과정에 활용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에 월간으로 중요한 일을 만들어서 시도는 했는가에 대한 여부입니다. 시도를 했는데 계속 안된 것이나 아예 시도조차 못한 일이면 이것을 계속하려 하는 게 맞는지 따져 봐야 합니다. 무의미한 계획을 또 붙잡을 수는 없으니까요.
과거 기록을 통해 마치 구직 시장에서 자기소개서를 준비할 때 모든 과거의 일들을 다 꺼내는 것처럼 했던 일들을 하나씩 되새겨 봅니다. 피드백이니만큼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다르게 할지 생각해 보는 거죠. 더 나은 주제,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합니다. 평소에 이 생각을 하고 있다면 몇 초 걸리지도 않는 작업입니다.
낱개의 기록을 통해 경력 기술서에 쓸 한 줄을 생각합니다. 정리된 결과물, 그것으로 변화시킨 실적을 숫자로 정리하는 것이죠. 실물이 있다면 백업을 하고 데이터는 사라지기 전에 집계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지나간 일도 다시 보는 겁니다. 지나간 실적도 다른 의미로 실적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직전까지의 과거를 커리어 시작부터 하나의 실에 꿰어서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합니다. 커리어의 연결성은 스스로 짓는 것이지만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경력 단절은 설득시킬 수 없는 길을 지그재그로 걸어갈 때 생기므로 한 일과 그 결과, 그리고 그다음 스텝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결과뿐 아니라 결과가 있게 한 고유의 스킬 셋이 무엇인지 정리합니다. 성과와 별개로 역량을 정리해서 내가 이것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못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리하며 나의 적성을 귀납적으로 찾아갑니다. 잘한 일은 경력 기술서에 쓰고 성과로는 실패했지만 역량으로는 새로운 것이 생긴 일은 후순위지만 기록에서 누락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과거에도 커리어의 과정과 최종 목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이 정리된 것이 있다면 지난 피드백 기간 사이 지향점이 변했는지 다시 봅니다. 앞서 말씀드린 회귀식을 도출하는 과정 같은 것이죠. 과거의 패턴이 변해 미래의 예측값이 달라졌는지 보는 것이죠. 회귀식을 도출하는 알고리즘 같은 나의 역량이 달라졌는지가 성과와 함께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과거에는 기획을 했지만 기획 중에서도 보다 더 재무적인 쪽으로 보다 더 영업으로, 혹은 데이터 분석과 같은 쪽으로 커리어는 더 뾰족해지고 소위 말하는 전문가가 되는 게 보편적인 커리어 과정입니다. CEO도 모든 분야의 CEO는 아니죠. 시장에서 인재에 대한 수요가 변하므로 커리어의 과정과 목표도 변할 수 있습니다. 사양 직무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스킬 셋의 추가가 다른 직무로 스스로를 몰고 갈 수도 있습니다. 이 흐름을 인지하고 내가 가는 길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상황을 늘 살펴봐야 그냥 회사 사람으로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냥 회사 사람이 되어 돈만 잘 벌어도 상관없는 일이 많지만요.
목표의 변동 여부에 따라 다시 내용을 수정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커리어의 목표는 잘 변하지 않겠지만 거쳐가야 할 과정, 준비해야 할 역량은 조금씩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나의 성격과 커뮤니케이션 방법까지 살펴볼 수 있다면 최고의 피드백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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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지금 바로 배울 기회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를 가서 얼마를 쓰고 뭘 배울지 혹은 누구를 언제 만나 무엇을 듣고 정리할지 먼저 정하고 지갑을 열고 연락을 하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보통 이런 행위가 부족해서 좋은 의도로만 남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돈 내고 배우지 않아도 일을 새롭게 모색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새해에 조직 내외부에서 하는 일 중에 참여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만들 아이템이 있다면 정리해 둡니다. 먼저 지원합니다. 보통은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기피하는 성향의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관심 분야가 새로 시작한다면 먼저 지원하는 사람에게 기회는 열릴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과거의 스토리를 미리 정리해 두면 타당한 이유로 합류할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
커리어의 과정이 꼭 하나의 길일 수는 없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는 고유명사는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 그 고유명사들을 수시로 정리하는 노력이 있어야 급하게 커리어 손절매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막혀도 늘 봐 둔 다른 쪽의 문이 열리면 거기로도 갈 수 있는 준비가 마치 투자처럼 필요합니다. 긴급 상황이면 급하게 자리를 옮길 수도 있지만 미리 생각해 둔 곳이 있고 평소에 직무 기술서를 보고 필요한 경력과 지식을 준비해 둔다면 구체적인 경로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커리어 피드백은 과거 정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피드백을 통해 내가 얻는 미래 실익이 있고 더 높은 기준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지식 노동자의 목표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고 그 목표 수준에 따라 성취 결과가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시간 대비로 결과가 나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높은 자유도로 커리어를 잡아나가야 합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기기 전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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