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레이어(layer)를 분석해 지속 가능한 인사이트를 찾자
제가 만난 한 관리자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과거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경험이 그의 자신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사업부에서 과거 방식을 그대로 고수했습니다. 과거에 단기간에 유통 채널을 늘리면서 빠르게 고객 인식에 진입했고 매출 볼륨도 크게 키울 수 있었던 것처럼, 최근 새로 부임한 곳에서도 단기간에 빠르게 유통망을 늘렸습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확장한 대부분의 채널이 적자를 면치 못했고 전략은 처참한 성적표로 돌아왔습니다.
트렌드를 읽는 능력은 상품을 기획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마케팅과 제품으로 풀어내는 능력에서 실제적인 실적은 달라집니다. 그냥 바이럴 하기 좋은 단어를 붙이고 급격하게 뜬 캐릭터를 붙인다고 다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고객들이 저걸 왜 좋아하고 어디서 발생했고 고객이 어떤 루트로 알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반복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트렌드를 상품까지 제대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좋은 기업 이미지를 표방해서 엄청난 비용을 마케팅에 뿌렸지만 대부분은 기업 광고에 비해 과거와 다른 이미지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작은 부분이 고객 인식에 큰 차이를 남겼습니다. 묵묵히 의인상을 계속 시상한 LG, 모델이었던 라파엘 나달이 슬럼프에 있었을 때도 후원을 이어간 KIA의 사례는 기업 광고에 엄청난 비용을 뿌리고 계획 중인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얻어낸 성과입니다. 고객들이 무엇을 좋은 기업으로 생각하느냐를 안다면 단순히 20대 이슈 몇 개를 공감하는 듯한 캠페인 광고를 찍어내는 기업들에 비해 훨씬 공감 가는 홍보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들은 현상을 보는 깊이에서 비롯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상의 표면만 보고 복제하고 변주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왜 그게 성공했는지 프로세스를 보기도 하고 이유를 찾아 반복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파고 들어가서 실행보다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는 사람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현상에서 본질을 찾아 실행까지 옮기는 반복 가능한 성공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 한 샘플이 있습니다. 한 가지 현상, "이런 제품이 나와서 이런 성과가 나왔다"라는 정말 표면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의 리서치를 통해 알 수 있는 수준의 깊이입니다. 제품이 기존과 무엇이 다른지 어떤 게 특징인지, 사람들은 무엇에 열광하는지 정도를 많은 양의 보고서로 옮깁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 만듭니다. 빨리 따라 하고 조금만 우리 브랜드에 맞게 변형하면 나도 성공할 것 같지만 대부분은 아류로 남고 고객의 인지에서도 사라집니다. 편의점에서 새로운 히트 제품이 나올 때 얼마나 많은 아류 제품이 나와 사라지는 줄 아십니까? 컵라면, 핫바, 음료, 과자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많은 제품 카테고리에서 현상만 카피해서 출시하고 곧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 회의 시간에도 깊이 있는 적용 대신 이슈성으로 단어만 차용합니다. "애자일 문화 도입해서 해 봐" 하고 말하고 위에 보고할 때는 "우리도 어디서 쓰는 애자일 방식을 차용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 하고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애자일 방식으로 일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알고 싶어 하지도 도와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몇 개월 지나면 다시 수포로 돌아가고 진정성 있는 친구들만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분석의 깊이가 조금 더, 알아볼 시간이 그나마 더 있는 곳에서는 이 핫한 제품과 서비스가 어떻게 나왔는지 더 파고들어갑니다. 컨설팅 회사를 시키면 기본적으로 나오는 수준 정도입니다. 이번에 나온 원리를 분해합니다. 이번에 나온 이 제품은 누가 주도하는 어떤 팀에서 콘셉트를 만드는 방식부터 시장에 출시하는 과정까지 어떻게 했다더라가 나옵니다. 첫 레이어보다는 자세하기에 더 분석할 것이 없을 정도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런 인재를 스카우트해 오거나 아니면 조직을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 봅니다. 아니면 제품을 기획하는 방식이나 영업하는 방식, 마케팅 채널이나 방법을 바꾸어 봅니다. 표면만 아는 것보다는 방법론이 자세히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패스트 팔로워로서 이런 분석 과정을 수시로 합니다. 하지만 큰 패러다임 변화를 읽지 못하고 몇 번의 반복을 해 보면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도 껍데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질은 그것을 만든 엔진인데 그것은 여기에 없는 것 같은 생각을 하고 늘 꽁무니만 붙잡고 있는 것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번의 성공이 단순히 이 방법을 고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둘러싼 더 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나마 인사이트를 오랜 기간 유지할 눈을 가진 것입니다. 제품이 매년 바뀌는 게 아니라 방식이 매년 어떤 철학 안에서 바뀌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되죠. 실제로 제품 개발 방법이 계속 같을 수는 없습니다. SPA 패션으로 세계 굴지의 매출을 올린 ZARA는 명품 브랜드의 런웨이를 보고 카피하지만 늘 이 방법이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버버리(Burberry)는 SPA 브랜드의 디자인 카피에 질려서 카피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컬렉션을 실제 판매하는 일정에 맞추어 버렸고 컬렉션을 기존 방식이 아닌 온라인이나 공연처럼 바꾼 디자인 하우스도 생겼습니다. Layer 1을 보고 따라 하는 기업은 ZARA의 제품 디자인만 카피하다가 지난 트렌드만 찍어내고 Layer 2를 보고 카피하는 기업은 단순히 빨리 만들기 위해 명품 브랜드 매장 탈의실만 이용하기 바쁩니다. 새로운 방식이라는 것은 그저 큰 틀의 프로그램이 있고 방법론을 주도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ZARA가 새로운 제품 개발 방법을 변화에 맞게 다시 찾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계 핫스폿에 패셔니스타의 착장을 자원을 들여 분석하고 있고 SNS 이미지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방법론이 철학 안에서 자유로우면 대응은 빨라지고 작은 실패를 용인하고 큰 기회를 모색합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기업이 추구하는 철학이 존재할 때 돌릴 수 있습니다. 목적과 방향성이 없는 프로그램은 곧 자신과의 대화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Google의 문화 Apple의 문화, Amazon의 문화를 혁신의 사례로 이야기하는 것은 문화 속에서 지향하는 프로그램의 힌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Core가 없다면 힌트도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지 실무자들마다 생각이 다르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잡아당기면서 일이 진척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가장 많은 다양함을 담을 것인지, 가장 빠르게 제공할 것인지, 무엇에서 세계 제일이 될 것인지 등 분명한 지향점이 있다면 사실 관리자가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생겨나죠. 여기서 카피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자기 메시지, 우리의 역량이 본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 무언가 일부 요소를 카피로 할 수는 있지만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나 다움'이라는 Core가 있어야 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경쟁자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까지 파악할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는 어떤 정체성으로 가야 하는지 안다면 전략은 찰랑찰랑한 현상 수준의 전술을 넘어가게 됩니다.
반복 가능한 인사이트를 찾기 위해 시장을 여기저기 헤매지만 결국 메시지는 나의 것, 방법은 고객의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죠. 나의 메시지가 없거나 내 방법으로 고객 머리에 욱여넣으려고 한다면 성공은 더욱 멀어져 보입니다. 인사이트를 통해 내 메시지, 고객의 방법을 찾는 철학과 프로그램, 이번 시기의 방법과 실체까지 잘 연결된다면 우리는 기획자의 역량도 브랜드도 모두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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