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dsight Bias
필자는 학창 시절에는 실패란 것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실상은 실패의 과정 속에 있더라도 실패라기보다는 성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종국에는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니 말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배움이 즐거웠고 성적표를 받으면 만족스러웠다. 당시에는 공부는 하면 되는 것이고 노력하면 되지 않을 일이 없다고 철썩 같이 믿었다. 필자의 가치관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자는 동생이었다. 아무래도 동생인지라 채찍질하듯 생각을 표현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필자가 실패할 수도 있다고 깨달은 때는 입시였다.
대학입시 1년을 앞두고 입시체제가 바뀌었다. 성적도 원인이겠지만 입시 전략이 부재해서 생각지도 못한 전공의 대학엘 들어갔다. 그때 처음 패배감을 맛보았고 진로 고민으로 어찌할 줄 모르다가 2년 후 맘을 잡았다. 열망이 있어도 가질 수 없다는 슬픔을 안 후에는 타인의 노력이나 실패를 판단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여러 도전이 있었다. 실패와 성취를 반복하면서 실패란 것이 크고 작음을 떠나 얼마나 아픈지 체감할 수 있었다.
실패란 자아가 죽는 것과 같다.
스위스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1968년에 <죽음의 순간(On Death and Dying)>이라는 책에서 죽음의 과정이 5단계를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부정(Denial) - 분노(Anger) - 타협(Bargaining) - 우울증(Depression) - 수용(Acceptance). 순차적일 수도 있고 순서가 일부 뒤바뀔 수도 있다. 필자는 실패한 때에도 이와 유사한 감정 상태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즉 실패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필자는 그동안의 프로세스를 복기해서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접근법은 무엇을 손봐야 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지 한참을 고민할 것이다. T의 성향이 강한 필자는 분석에 분석을 더한다.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 싶을 때 문제해결에 대한 논의를 하려 한다. 이때 클라이언트의 부정과 분노의 시간을 주고 얼마간 이후에 연락을 취할 것이다. 클라이언트를 만났을 때 열정적이던 평소 모습과 다르게 굉장히 차분하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후회는 없어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요."
사람이 나타내는 편향의 종류 중 기억편향(memory bias)이 있다.
기억 편향은 기억하는 내용을 변경함으로써 기억의 회상을 훼손하거나 혹은 강화시키는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을 말한다. 그러한 메커니즘에 기반해 다양한 기억편향이 나타나는데 그중 사후결과확신편향(hindsight bias)이란 것이 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예측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말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럴 줄 알았어(knew-it-all-along bias)' 편향이라고도 일컫는다. 가장 많이 언급하는 예로, 시험을 치르고 난 후 이 문제가 출제될 줄 알았는데도 공부를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억편향이라면 그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실패를 애도하는 시간에 그는 기억편향을 이용하여 타협하고 수용하고 있으리라. 그 담담함이 오히려 마음 아프다. 실패를 거듭해 온 덕에 T형인 필자는 F형이 발달하여 준비해 왔던 시나리오를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단지, 그동안의 노고가 많았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속상한 마음에 공감할 것이다. 장차 애도의 시간이 끝난 후 이야기 나눌 때를 희망하리라.